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삼악산 등선봉 산행기 - 강촌대교에서 등선폭포까지...

dreamykima 2007. 5. 23. 08:05

날 짜 : 2007년 5월 19일 토요일 / 나홀로
교 통 : 청량리역 -> 강촌역 (오전 7시 55분 - 4,600원)
          강촌버스터미널 -> 동서울터미널 (오후 3시 25분 - 6,800원)

 

버디가 일요일에 산에 안가느냐 묻는다.
근교에 가벼운 산행을 하고 돌아오면 일요일엔 오랜만에 버디와 함께 북한산이나 도봉산의
어느 능선쯤을 걸을 수 있겠다 싶다.

 

어디로 갈까 하다 기차표를 검색해본다.
다행히 강촌 가는 좌석이 한 장 남아 있었다.
전날에 비가 왔으므로 강이 보이는 산 능선은 전망이 탁 트여 시원스러울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가며 보이는 풍경들은 참으로 예뻤을것이다.
피곤함에 모르고 쿨쿨 잤다. ^^
벌써 들판에 모내기가 되어 있는 논도 있었고 모판들이 곳곳에 모내기를 기다리며 놓여 있었다.
계절은 벌써 봄을 지나 여름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강촌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기차에서 내린 많은 등산객들이 등선폭포를 향하거나 의암댐쪽으로 향한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등선봉으로 코스를 잡는다.
언젠가 등선봉 코스가 암릉이 멋지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고,
사람 적은 등로에 서면 혹여 날 기다리는 들꽃 한송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강촌대교를 건너 육교를 넘어가 오른쪽으로 육교를 끼고 돌면 바로 입산통제 입간판이 서 있는 뒤로
초입부터 가파른 등로가 시작된다.
시작지점에서 작은 봉우리에 닿기까지 지그재그로 나 있는 급경사 등로를 오르게 되는데

날이 그다지 덥지 않았는데도 땀깨나 흘렸다.

 

 

10여분 오르면서부터 둥글레가 지천이다.
산객이 전혀 없고 빽빽한 나무 숲으로 인해 어둡고 적막한 숲이지만 둥글레를 만나면서부터

숲은 환해지기 시작했다.

 

첫번째 작은 봉우리에서 뒤따라오는 여성 산객 두 분을 만났다.
이 산이 꽤 깊다며 혼자서 왔느냐 물으신다.
해찰하느라 그분들을 앞서 보내고 홀로 걸으며 나도 솔직히 그리 산이 깊은줄은 몰랐다. ^^
지금 생각하니 그 깊은 산을 혼자서 걸으며 초행길에 겁도없이 바위 암릉을 혼자서 탄 생각을 하면

약간 오싹하다.

 

 

등로 표지기인 리본이 저쪽으로 달려 있기에 힘들어 저 직벽을 넘어 왔더니만

우측으로 편한 우회로가 있었다.

살떨리는걸 조심 조심 내려왔건만....쩝~

 

 

발 아래로 북한강이 흐르고 강에 닿느라 납작 엎드린 산들이 보인다.

 

 

암릉 사이로 저 너머 산 능선들을 엿본다. 

 

 

어쩌자고 저 빨갛고 노란 표지기들은 이런곳에 달려있는지...

우회로를 찾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기어 올라가본다.

전날 내린비로 약간 미끄러운 듯 했지만 그 동안 릿지산행을 다니며 다져놓은 실력(?^^)인지

거뜬히 올라서게 되었다.

 

 

첩첩산중이라더니...한 봉우리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저 바위 봉우리도 올라서야 하는가 고민하다가 오른쪽으로 난 우회로를 찾아 멀찌감치 우회했다.

 

저 암릉으로도 등산표지기가 있는걸 보면 저리로도 다니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여럿 있었으면 나도 충분히 도전해볼만했지만 오늘은 혼자라 자중 또 자중했다. ^^

 

 

아~ 탁 트인 전망. 시원타~~!

 

 

고사목이 되어버린 나무 한그루.

죽어서도 꿋꿋히 제자리를 지키며 멋진 모습으로 서 있는양이 인상적이었다.

 

 

 

비 개인 후의 청명함이 보이는가.

맑은 풍경들 위로 느릿 느릿 연두빛 봄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앞서간 산객들이 산이 꽤 깊어 근처에 사는 자신들도 혼자는 잘 안온다는 말을 했는데

정말 산이 깊은 것 같다.

위험한 암릉구간을 지나 겨우 등선봉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둥글레가 지천이라 그나마 많은 위안이 되었다.

산객도 없는 적막한 봉우리에서 얼굴 증명사진 한 장도 못찍고 나를 따라 이곳 저곳을 누비는

내 배낭 사진만 한 장 찰~칵. ^^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팔다리를 움직이는 신체의 동작만은 아닐터이다.
걷는다는 것은 머리를 하얗게 비워내는 일이다.
묵은것을 털어버리고 새로움을 채울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비 개인 봄숲의 아름다움을 아는가.
나 혼자 오도커니 이곳에 서 있다는것은 엄청난 호사이자 엄청난 낭비란 생각이 든다.
홀로 즐기기엔 이 숲이 너무 화사하지 않는가 말이다.

 

구름이 걷히는지 연두빛 참나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든다.

발 아래 축축한 낙엽위로도 햇살이 비추인다.


나는 봄 숲으로 깊이 깊이 들어간다.

 

 

저런 낭떠러지 절벽에 몸을 �고 사는 소나무 한 그루.

그래. 생명은...삶은... 저러한 곳에서도 살아낼만한 가치가 있는것이다.

 

 

이곳이 산성터였음을 알려주는 길.

그 옛날 궁예와 왕건이 싸운 곳이라 한다.

 

 

능선을 걸어 흥국사를 지나 등선폭포쪽으로 내려갈 요량이었으나 어쩌다보니 흥국사를 왼편에 두고

하산하게 되었다.

윗 사진 가운데 있는 계곡이 흥국사와 등선폭포를 잇는 계곡이다.

 

 

갈때의 오르막과 올때의 내리막은 정확히 길 위에서 비긴다고 하지 않던가.

해발 692m의 봉우리를 급하게 올랐으니 역시나 내려올때도 급하게 내리게 되어 있다.

위험한 바위 구간의 하산길.

바위도 바위지만 너무도 급경사길에 전날 내린비로 젖어있는 등로에서

두 번이나 넘어졌다.

덕분에 오늘까지도 정강이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더 다치지 않은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하산하고 보니 흥국사에서 등선폭포쪽으로 내려가는 길과 만나더라.

원래는 흥국사까지 가서 하산할 예정이었는데 갈림길을 미처 보지 못하고 앞으로 전진만 한 것 같다.

아쉽다. 고생을 덜했을터인데...

흥국사 구간은 내가 하산한 길보다 덜 급경사였을 듯 하던데...

 

 

주왕산의 협곡과 닮은 계곡의 모습.

 

 

등선폭포는 한 개가 아니라 여러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하나만 담아왔다.

오른쪽 사진은 왼쪽 사진에서 위에 보이는 구름다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저 아래 서 있는 사람의 키를 가늠한다면 꽤 높음을 알 수 있다.

 

길은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 겸손을 지녔지만 또한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는 고고함을 지닌다고 했다.
걷고자 하는이에게 길은 언제나 열려있는거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등선봉을 초행길에 혼자서 걷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무사히 다녀왔으니 망정이지 생각하면 약간 오싹하다.

서울 근교 가까운 봉우리이므로 그리 사람이 없을꺼라는 생각은 못했다. ^^

일요일 만난 친구에게 산행 이야기를 해 주었다가 야단만 된통 맞았다.

 

 

등선폭포를 나와 북한강변을 따라 강촌역까지 걷는 길엔

엉겅퀴, 지칭개, 벼룩이자리, 애기똥풀, 금낭화 등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해찰하며 한들 한들 걷는 길이 참 좋았다.

 

기차표는 이미 매진이고 강촌교 바로 옆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3시 25분 춘천과 동서울을 오가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암릉에서 혼자 낑낑대느라 힘들었다.

일요일 산행은 포기하고 오랜만에 친구랑 상암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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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보너스 사진.^^

 

북한강변을 걷다가 만났다.

같은 나비가 날개를 펼쳤을때와 접었을때의 모습이다.

 

너무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는데 내가 다가가니 선뜻 날아가지도 못하고 파르르 날개를 떨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 내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것으로 보였는지

저렇듯 날개를 활짝 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