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태백산 산행기 5 - 반복되는 길이란 없다.

dreamykima 2008. 6. 17. 08:55

날 짜 : 2008년 6월 13~14일 무박산행

          with 고라니 아빠 너구리님, 고라니, 고라니 동생. (어쩌다 보니 고라니 가족의 태백산 guide가 되었네~ㅋㅋ)

 

코 스 : 유일사매표소 - 쉼터 - 망경사 갈림길 - 장군봉 - 천제단 - 문수봉 - 당골

 

교 통 : 청량리 -> 태백역 22:40 무궁화호 15,400원(회원가) - 03:10분 태백역 착(10분 연착)
          태백역 -> 유일사 매표소 : 택시 13,000원 / 새벽 4시 이전엔 15,000원, 이후엔 12,000~13,000원 심야시간 할증때문임.
          당골 -> 터미널 : 택시 6,000원 / 시내버스도 1,100원/1인 이므로 사람이 많을때는 택시가 편리
          태백역 -> 청량리역 12:16 무궁화호 15,400원  - 16:54분 청량리 착.

 

식 사 : 아침 식사 (양지기사식당이 추어탕집으로 변신) - 황태해장국 5,000원
          점심은 당골에서 산채비빔밥 7,000원 (비빔밥보다 함께 주는 된장찌개가 맛났다.) & 소주

 

태백역 앞에 있던 한솔식당도, 양지기사식당도 사라지고, 이제 새벽에 태백에 도착하면 밥 먹을 걱정을 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양지식당 자리에 새로 생긴 추어탕집에서 황태해장국을 먹었는데 경희와 내 입맛엔 너무 짜기만 하고 맛은 그저 그랬다.

그나마 24시간 문을 연다니 밥 먹을 곳이 있어 다행이련가~

택시기사님께 새로운 해장국집을 알아두긴 했는데 과연 가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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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신군

 

1. 태백, 그 길의 유혹.

 

버디와 나에겐 연례행사같은 태백산행.
해마다 드는 길. 무에 그리 새로운게 있을까 싶다가도 해마다 그리고 철마다 눈에 선하여 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길이 되었다.
올해는 철쭉도 없다 하지만 하얀 자작나무 숲길이 우릴 유혹하고 있었다.

 

둘이서 시간 날때마다 열심히 클릭을 한 덕에 겨우 구한 기차표 4장.
돌아오는 기차 시각이 12시 54분에서 16분으로 빨라져 조금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없이 꼭 맞는 시각이었다.

 

금요일 퇴근 후, 시장을 간단히 봐서 분주히 움직인다.
산에서 먹을 간식꺼리를 만들고, 주섬 주섬 배낭을 챙기니 시간은 금새 9시를 넘어 출발 할 시간.
결국 급하게 나오다 디카를 두고 나왔다.

 

목베개와 허리를 받치는 쿠션용 에어 베개, 수면안대, 메모리폼 귀마개 그리고 커다란 담요 한 장.
주섬 주섬 꺼내어 펼쳐드는 나를 보고 토리님이 옆에서 웃는다.
그러나, 얼마나 유용한지 써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꺼다.

 

언뜻 언뜻 정차역을 알리는 방송이 잠결에 들려왔지만 생각보다 잠을 좀 잘 수 있었다.
사북을 지나면서 몽롱하던 잠이 완전히 달아난다.

 

카지노가 들어서고 사북은 이전의 음울함을 벗어버리고 밤에도 밝은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정차역을 지나고 나면 강원도 깊은 산골답게 민가의 불빛하나 보이지 않고 칠흑같은 어둠만이 기차를 따라온다.
고한을 지나고 언뜻 '제일 높은 역'이라는 글자들이 스쳐간다. 추전역이다.

 

추전을 지나면 태백이다.
기차가 연착하여 3시 10분경 내렸는데 초롱한 별님은 간데 없고, 는개같은 비가 흩뿌리고 있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모두들 관심이 없다.
다만, 별빛이 스러지면서 먼데서부터 오는 감람빛 새벽을 볼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2. 새벽 숲의 고요함.

 

4시 50분.
굳게 문이 닫힌 유일사 매표소를 통과한다.

태백산을 그리 다니면서 매표소 문이 닫혀있긴 처음이다. 철쭉이 피기도 전에 얼어버렸다더니 산객이 없긴 없나보다.

 
구름이 산 위로 올라가고 있어 우리가 장군봉에 설 즈음이면 구름이 걷히겠거니 했었는데
예상은 빗나가고 문수봉을 돌아 5부 능선쯤에 내려서서야 구름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안개가 비로 변하지 않아 우의가 필요없었다는 것.

 

철쭉이 없다고 이렇게 산객이 없나 싶다.
중간에 만난 한 무리의 사람들은 등산객이 아닌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얼마전, 천제단이 특정 종교인들에 의해 훼손되어 한바탕 난리를 피우더니 그 여파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들락이는 것 같았다.
우리가 천제단에 도착했을때에도 비박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기도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너무도 익숙한 길을 오른다.
때로는 흰 눈발속에 램프빛에 의지하여 걸었던 길.
때로는 숲의 나뭇가지 사이로 새벽의 첫 햇살이 스며드는 걸 보며 걸었던 길.
오늘 같은 날엔 스멀 스멀 유령처럼 피어오르는 산 안개속을 유영하듯 걷는다.

 

왼쪽 숲이 휑하여 보니 간벌을 했는데 어쩐지 너무 많이 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휑했다.

 

초반에 많이 힘들어하는 나는 셋을 앞서 보내고 천천히 걸음을 뗀다.

땀이 쏟아져 내렸다.
그 땀 속에 묵은 체증처럼 내 안에 남았던 무언가가 빠져 나간다.
며칠 전, 유쾌하지 않은 일들부터 이런 저런 걱정에 허우적거리던 시간들이...
새벽 숲은 내 안의 나쁜 기운들을 모두 받아주고도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고요하게 나를 감싸안을뿐이다.

 

맹렬한 속도로 뛰는 내 심장박동이 나를 울린다.
나는 살아있다. 온전하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찾지 못할 때,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일 때 산에 들곤 했다.
그런 나를 산은 아무런 조건없이 보듬어주고 토닥여주었다.

나는 그 치유의 과정을 통해 나를 순화시킬 수 있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얻었다.

 

3. 반복되는 길이란 없다.

 

수만 번 오갔을 집앞 골목길도 같은 길이되 철마다 다른 길이며, 내 삶의 나이에 따라 다른 길이며,

내 기분의 희로애락에 따라 다른 길이다.

 

 <소희에게 정말 귀한 꽃을 보여주겠노라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금강애기나리가 한 곳에 몇 송이 남아 있었다.>

 

 

 

 <우리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자작나무 숲길>

     

 <문수봉>

 

 <문수봉에서 당골로 하산하는 길에 있는 주목> 

 

유일사에서 장군봉에 이르는 길,
장군봉에서 천제단에 이르는 능선 길,
천제단에서 문수봉으로 가는 자작나무 숲길,
문수봉에서 당골로 내려서는 원시림같은 숲길.

 

내겐 너무도 익숙한 길들이지만, 항상 다른 길들이기도 하다.
 
새벽 숲에 들어 행복하였다.
태백, 그 길에 설 수 있어서 행복하였다.
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였다.

 

<오래도록 나의 좋은 도반이 되어주었던 세레또레 28리터 배낭과 이별하였다.

  그 동안 이곳 저곳이 아프다며 울상인데도 어디 안간데없이 끌고 다녔는데 그만 그 녀석을 놓아주었다.

  정이 많이 들어서 선뜻 놓아줄 수 없어 그리하였던건데...

  새로이 나랑 만난 녀석은 몽벨 몽블랑 28리터...이번 태백에 처음 동행하였는데 녀석이 썩 맘에 든다.

  오래도록 나와 함께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