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10]백운에서 충주호리조트까지 25km
날 짜 :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 with 걷기모임 회원 5명
매년 찾아다니던 민둥산으로 억새를 보러간지 오래다.
발구덕 마을이 어찌 변했는지도 궁금하고, 새 집 짓고 커다란 개와 함께 사시는 할머니도 궁금하고...
움푹꺼진 구덩이들이 얼마나 더 꺼졌는지도 궁금하다.
오랜만에 그 풍광들을 떠올리며 기차표를 사두고 설렜다.
갑자기 나랑 함께 주말도보를 가고싶다는 전화가 왔다.
어찌할까 망설인다.
민둥산의 억새를 보고싶은데...아무래도 새벽 기차를 타야하는 산행은 여럿이 가기엔 좀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든다.
급하게 계획을 변경하여 코스를 잡아본다.
임도만으로는 심심하고....원서천과 제천천변을 에두르며 마을과 마을을 잇고 충주호를 끼고 도는 그 길의 가을이 보고 싶다.
아직 단풍은 저만치서 오고 있는 중이지만 이미 가을은 저렇듯 맑은 물속에도 한가득이다.
벌써 벼베기가 끝난 논도 여럿 보이고...
작고 낡은 다리가 새롭게 공사중이고 길은 아스팔트를 위해 넓혀지고 있었다.
이곳도 서서히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헛갈린탓(?)에 분교로 바로 가는 길을 놓치고 이렇듯 마을로 들어서 한바퀴 에둘러 간다.
덕분에 더 좋은 길을 만나는 행운을...
한바퀴 돌았을뿐 이 길 끝에 분교가 있다.
예전과는 달리 여전히 방치되어 있는 곳.
10여년 전, 노랗게 은행잎 날리던 날에 우리들의 추억이 서린곳이다.
가운데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베어져 버려 안타깝고 쓸쓸해진 곳.
임도로 돌아서갈까~ 이 길로 계속 갈까~ 고민했지만 든든한 사람들 있어 긴장된 속내를 숨기고 계속 진행하였다.
아~ 가을~
예전엔 4륜 구동으로 넘어다닌 길이었지만 이제는 웬만한 4륜구동들도 넘어가지 못하는 길이 되었다.
길이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맘속으로 긴장하고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무서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잠깐 사이였지만 임도로 돌아갈껄~하는 마음이 수백번도 더 들었다.
하지만 든든한 동행이 있었고, 다행히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 잘 헤쳐나갔다.
감사했다.
후유~ 무사히 빠져나왔다.
예전에 왔을때는 무사히 지나왔었는데...
단풍은 아직이었지만 가을은 이미 우리 발아래서 뒹굴고 있었다.
길들이 군데 군데 확장되고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자꾸 자꾸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몇 번이나 오게 될지...
푸짐했던 점심.
마을 끝집에 있는 정자에서 상까지 펴 놓고 근사한 점심을 먹었다.
오래전 인연을 얘기하며 주인아주머니 아저씨께 인사를 드렸다.
두 분이 그 때의 나를 기억하시지는 못하지만 시기는 기억하셨다.
7년전이라 했다.
그 덕에 따뜻한 물까지 얻어다 커피까지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든든하게 속도 채웠으니 힘을 내어 첫 번째 고개를 넘어가본다.
짧은 고개라 금새 넘어간다.
제천천과 충북선 철로가 내려다 보인다.
두 번째 고개는 약간 더 길고 높다.
이 길 끝에서 충주호를 끼고 도는 길이 시작된다.
가을 가뭄탓인지 충주호는 녹조가 너무 심했다.
아, 가을의 강가에 가보았는지,
해는 지고 억새들이 바람에 하얗게 나부끼는 가을 강가에 가보았는지,
해맑은 햇살속에 마른 풀잎들이 사각이는 가을 강가에 서서 저무는 물을 보았는지, - 김용택-
작은 동네 어귀인데 누군가 꽃 길을 만들어 눈이 즐겁다.
마을을 벗어나면 6.8km의 아름다운 임도가 시작된다.
겸손하게 뻗은 길 위에서 나도 그러하고자 다짐해본다.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부유하다고 하는데...
풍족함속에서도 삶이 빈한하여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이들에게는
이런 길을 권해주고 싶어진다.
제법 긴 거리를 걸어와 힘들법도 한데 길이 너무 좋아 힘들지 않다고들 하니 나 또한 즐겁다.
어느 해 겨울, 오지여행을 왔다가 이 길을 넘어 매운탕을 먹으러 갔었다.
서쪽으로 해가 기울면서 부드러운 햇살을 품어낸다.
석양빛에 모든 것이 아름답다.
저벅 저벅 가을 석양빛속으로 들어간다.
그대! 해거름 들길에 서 보았는가~
ㅎㅎ
원래는 더 가까히 잡았는데 셔터 누르는순간 모델이 움직였다.
해저무는 호숫가에 저 건너 인등산이 시커먼 제 그림자를 잡고 잔잔히 내려 앉는다.
아침 9시 30분에 걷기 시작한 길이 저녁 5시 30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