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100101]태백산 산행기 9 - 천제단에서 2010년 첫 해를 맞다.

dreamykima 2010. 1. 6. 14:39

날 짜 : 2009.12.31~2010.1.1.

코 스 : 당골 - 망경사 - 천제단 - 망경사 - 당골 회귀

 

1.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매년 1월 첫주에는 태백산에 들곤 했다.
늦은 밤기차를 타고 새벽 3시경에 태백역에 내려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하고는 유일사로 이동하여 태백산에 오르곤 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일상처럼 반복해야 하는 일.
누가 꼭 그리 해야한다고 강제하진 않았지만 웬지 새 해 첫 산행은 태백으로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월 첫 주가 연휴인걸 깜박하고 있다가 기차표를 클릭한 순간엔 이미 청량리발 태백행 마지막 기차의 좌석표는 없었다.
그게 아마 11월 7일쯤이었지~
다들 부지런도 하다.

 

그 후로, 거의 두어달을 좌석표를 구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결국 12/31일 오후까지도 구하지 못했다.

 

후배와 나는 익숙함을 버리고 변화를 시도 해 보기로 했다.
익숙한 기차를 버리고 버스를 타는 일이다.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버스를 타고 태백까지 가본적이 없었다.
그 동안은, 해돋이와 겨울 스키를 즐기러 가는 인파로 강원도로 향하는 도로들이 주차장 아닌 주차장이 되는 상황을 많이 봐온터라

버스를 탈 생각이 전혀 없었고, 이번처럼 기차표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늦은 밤 11:02분 태백행 버스를 탔다.
태백까지 미처 가지도 못하고 길 위에서 2010년의 첫 해를 맞이한다해도 일단은 시도 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 원하던걸 얻을 수 있었다.

 

변화는 두렵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2. 달빛을 가만 가만 밟으며, 별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산을 오르다.

 

태백에 도착한게 이른 새벽 2시 40분.

태백에 미리 와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지인과,

봉화의 어느 펜션에 묵고 있다가 그 새벽 태백으로 날아온 지인들과 더불어 후배와 둘이 나선 길에 10명의 동행이 생겼다.

 

산행에 익숙치 않은 지인들은 보다 쉬운 코스인 유일사코스로 천제단에 오르려 하였으나,
내 의견에 따라 당골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하였다.

 

상대적으로 초보코스인 유일사쪽은 새 해 첫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많이 붐벼 좁은 등로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할 수 있고,
곧바로 능선으로 올라서는 등로에서 산행에 익숙치 않은 지인들이 그 새벽의 추위를 견뎌낼 것 같지가 않았고,

당골코스는 유일사코스보다는 약간 힘든 길이지만, 비교적 한산할뿐더러 정상에 오를때까지 바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장군봉에서 천제단에 이르는 그 능선의 추위속에서 몇 십분을 견뎌야 하는 일은 겨울산을 즐기는 나로서도 썩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당골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산행을 시작한게 새벽 4시 40분이었다.

 

엊그제가 보름이었던가~
한귀퉁이 살짝 이지러진 달이 희고 흰 나목들 사이로 빛났다.

새 해에는 저 달처럼 밤마다 둥그러지는 마음이 되고 싶다.


달빛을 가만 가만 밟으며, 벌써 서쪽으로 흐른 별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산을 오른다.

 

일행들끼리 흩어지지 않도록 애를 썼으나, 사람이 많고 시야가 어두워 소용없었다.
또한, 천천히 올라야 한다는 내 소리는 바람소리에 묻혔는지...무에들 그리 바쁜지...
일찍 올라가봐야 차거운 바람속에 서 있는 것 말고는 할일이 없는데 말이다.

 

하긴,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있게 하는법'이라 했다.
인내를 가진 사람만이 무엇인가 손에 넣을 수 있다고...

 

길이 멀다하여 거리가 줄어들길 바랄 수 없는것처럼, 우리는 그저 자연에 순응하며 견뎌낼뿐이다.

 

나는 이 혹독한 추위속에 내 안의 허름한 욕망들이 훨~훨~ 날아가버리길 기도한다.

 


3. 돌발상황에 처하다. 망경사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자비에 감사를...

 

망경사를 500여m쯤 앞두고 갑자기 오른쪽 발가락들에 피가 돌지 않는 느낌이 든다.
불편하고 추웠지만 등산화 끈을 풀고 버프로 다시 한 번 발을 감싼다.


뛰기도 하고 꾹 꾹 밟기도 하고 여러가지 시도를 하였으나, 여전히 피가 돌지 않는 느낌이고 발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하산해야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해본다.

내 걸음으로 1시간이면 하산을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 시간조차 너무 길다.


망경사에 가서 도움을 청하기로 하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떼었다.

망경사에 도착하자 마자 보살님들께 도움을 요청하였다.
다행히 따뜻한 방안에서 양말을 벗고 열심히 주무른덕에 5분여가 지나자 다시 혈액이 돌고 발이 따뜻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상태로 몇 십분만 더 지체하였어도 동상에 걸렸을 것이다.

겨울산을 그리 숱하게 다니면서 한 번도 이런 상황을 맞아본적 없어서 많이 당황했다.

왜 그랬는지 아직 이유를 모르겠다.

 

따뜻하게 맞아주신 보살님들 성불하소서~

 


4. 태백산 천제단에서 2010년 첫 해를 맞다.

 

한기가 쉬이 풀리지 않으면 여기서 쉬다가 사람들이 일출을 보러 오르는 시각에 일출은 포기하고 
망경사 부처님께 108배나 올리고 있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십여분 이상 따스한 방안에서 쉬다보니 금새 한기가 가신다.
미리 확인하고 온 일출 시각이 7시 38분경.

시계를 보니 7시 20분이다.
예까지 왔으니 이왕이면 천제단에 올라 일출을 보자~는 욕심이 생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데 난 아직 멀었나보다~

108배를 올리면서도 끝없이 무언가 갈구하고 있는 나의 욕심들...

버리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질텐데~

 

망경사를 나와 천천히 천제단에 오른다.
이미 올라갔을 일행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많아 찾을 생각도 못한다.

 

이미 먼데서부터 빛들이 일렁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빈 겨울산의 봉우리들이 붉은 빛에 어리고 있었다.

 

천제단 가까이에 다달았을 때, 저 멀리 지평선처럼 드리운 구름속에서 삐죽 붉은 해가 솟는다.


글쎄~ 그 광경을 어찌 표현해야할까~

 

붉고 둥근 2010년의 첫 해가 검붉은 백두대간의 능선위로 떠올랐다.

 

대가없이 바로 찾아지는 것은 기쁨이 아니고, 고통없이 찾아질 수 있는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시인은 말했었지~

 

여기에 계신 모든 님들~ 복 받으시라~

 

건너편 서쪽 하늘에는 아직 미처 스러지지 못한 하얀 새벽달이 걸려 있었다.

 

망경사 부처님께 가만 가만 108배를 올리고 산을 내려왔다.
하얀 입김이 나오는 대웅전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절을 하느라 평소보다 10여분이 더 걸렸다.

그래도 남들처럼 모자쓰고 장갑끼고 절을 할 수는 없었다.

 

108배를 하는 동안 앞서 내려간 일행들을 따라잡으려 거의 날듯이 당골광장으로 내려섰다.

다행히 10여분만 늦었다.

 

다들 산행에 익숙치 않음에도 무탈하게 내려와서 참 좋았다.

모두들 힘은 들었겠으나, 오늘의 산행과 2010년 첫 해의 잔상은 가슴속에 오래 오래 남을 것이다.

게다가 태백산의 기운을 듬뿍 받고 왔으니 모두들 복 많이 받을게 틀림이 없다.

 

 

(사진을 열심히 찍었으나, 붐비는 천제단에서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어느 분이 주운걸 후배가 봤다는데(후배는 그게 내 카메라인줄 모르고) 찾지 못했다.

선물받은 카메라여서 더욱 아쉽고, 선물을 준 사람에게 너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