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길에 서다

[100102]다시 찾은 봉화의 오지마을

dreamykima 2010. 1. 14. 08:37

날 짜 : 2010년 1월 2일 / with 지인들

 

1. 변해가는 것들에 대한 쓸쓸함을 토로함.

 

1일 아침 망경사 부처님께 108배를 올리고 일행들을 따라잡느라 날듯이 당골광장으로 내려오니 9시 40분쯤 되었다.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던 식당에서 따뜻한 국물로 한기와 허기를 없애고는 31번 국도를 타고 봉화로 이동한다.

들어가는 입구의 나무숲이 좋은 청옥산 자연휴양림에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공사중이었다.

 

31일 밤에 지인들이 묵었던 통나무 펜션이 있는 봉화의 어느 계곡은 내가 예전 자주 다니던 곳인데 

이제는 예전의 정취가 많이 사라졌다.

전기가 들어온지도 2~3년밖에 안 된 곳인데 벌써 그리 변하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말로는 수해 때문이라 하지만 그 수해조차 우리네가 자초한 일이 아니던가.

작은 사방댐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방댐이 터지면서 큰 물난리가 났었다는 소릴 들었다.

 

2008년 가을에 갔었는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그 좋은 계곡을 모두 콘크리트로 발라놓아 얼마나 황량하던지...

6km 정도로 남아있던 비포장길도 이미 반쯤은 하얀 콘크리트로 덮여있었다.

가을이 오면 항상 그 곳이 생각나겠지만, 다시 가고 싶을지는 미지수다.

 

모든 변해가는 것들이 나를 쓸쓸하게 한다. 

 

내 쓸쓸함과는 상관없이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펜션은 꽤나 친환경적으로 지으려 노력을 많이 한 듯 보였다.

내부를 살펴보니 창문이 크고 천장이 높은 통나무집이다.

 

나는 너른 창문으로 햇살이 따스하고 깊숙하게 들어오는 집이 참 좋다.

 

쥔장 부부는 맑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수수깡으로 수십번 집을 지었다 부쉈다를 반복하며 직접 이 집을 지었다고 했다.

봉화 사람도 아니고 외지인이라는데 어떤 연유로 예까지 흘러들어와 펜션을 지을 요량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모쪼록 그 길의 포장을 조금이나마 막았다던 그 초심을 오래오래 간직하시길 빈다.

 

주로 지인들이 찾아온다는 펜션은 이미 모든 방의 예약이 끝나서

우리는 쥔장이 소개해준 법전 소천리에 있는 사미정 계곡 근처의 펜션으로 이동해야 했다.

 

 

2. 유쾌한 인연들

 

타인과 타인이 만나는 일은 빛과 같은 속도로 은하를 몇 개나 건너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소설가 윤대녕은 말했던가~

작가는 그 이유로, 우리 모두가 각자 하나의 우주이고 전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각자의 안에 저마다의 우주를 갖고 사는 사람들.

내 안에 전체인 우주를 담고 사는 그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아내기란 참으로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마음을 활짝 열어 서로가 서로의 우주를 배려해주고 있기 때문일게다.

 

만난다는 일, 그건 단순히 얼굴을 마주한다는 의미가 아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일게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소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서로 소통하게 되는 일.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받는 존재로서 거듭나는 일.

서로의 우주를 배려해주지 않고 있다면 불가능한 일일것이다.

 

9명이었다.

그저 같은 취미를 공유함으로 인하여 '친구'라는 이름으로 뭉칠 수 있는 사람들.

 

덕분에 아주 유쾌한 2010년 첫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관계를 맺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2010년 한 해를 시작하며 즐거움을 공유한 모두에게 감사한다.

 

 

3. 다시 찾은 봉화의 오지마을...손수 밥을 해주신 할머니를 잊을 수 있을까~

 

(카메라 분실로 찍은 사진이 없어 동행의 허락을 얻어 사진을 몇 장 퍼왔다.) 

 

1월 2일 아침, 31일 밤 거의 잠을 못 자고 1일 밤에도 즐거이 노느라 11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 6시 30분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바깥을 보니 어제까지 눈 씻고 찾아도 없던 하얀 눈이 제법 쌓였고 눈발이 날리기도 한다.

 

오늘은 봉화의 어느 오지마을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는 명호로 이동해본다.

사람은 9명인데 차가 4대라 승용차와 2륜 스타렉스 한 대는 명호의 주차장에 세워두었다.

 

소주도 사고 사탕도 사고 김도 사고 커피도 사고...어르신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골라본다.

마음으로야 그 슈퍼를 통째로 들고 갔으면 하지만 너무 과한 선물도 폐가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2007년 가을이었지~

내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이곳에 여행을 왔던게~

 

미끄러운 눈을 헤치고 좁은 산 길을 돌아 돌아 거의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에 다다르니 저 위쪽으로 새로이 단장된 집이 하나 생겼다.

나중에 어르신께 들으니 외지 사람이 세를 얻어 들어왔다고 한다.

중년 부부라는데 둘 다 외지로 일을 다니므로 집에 있는 때는 별로 없다고...

착한 사람들이 들어와 다행이라 하신다.

제일 윗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서는 겨울 동안 자식들 집으로 지내러 가셨다고 했다.

 

올려다보면 하늘, 내려다보면 첩첩 산 능선, 참으로 적막하기 그지없다.  

 

이 마을에는 집이 십여 채 되지만 대부분 폐가이고 3가구만이 산다.

그나마 외지사람이 들어와 한 가구가 늘어났다.

맨 윗집의 할머니와 새로이 단장된 외지사람의 집 그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어르신 댁.

어르신 댁은 마을에서 제일 아랫집이다.

그 집으로 내려가는 50여m의 길은 밭둑 같은 좁은 샛길이었는데 지금은 하얀 콘크리트로 단장되었다.

 

어르신 댁은 예전에는 위쪽에 있었다고 하는데 고대로 옮겨와 아래쪽에 터를 잡은지가 46년 되셨다고 했다.

집은 어르신께서 손수 지으셨는데 못질 하나 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꿰어맞추는 한옥의 양식을 따랐다고 했다. 

 

<촬영 : 두바퀴로 가는 자전거>

 

뉘기여~

저 기억나세요?

얼굴은 기억 안나실지 모르지만 몇 년 전에 이러~ 저러~ 다녀갔던 사람인데요~

 

멀뚱히 바라보시던 어르신들 얼굴이 환해지시며 기억나신다고 하신다.

어떻게 또 왔느냐며 반기시는 그분들 얼굴을 뵈니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겨울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웬만한 사륜구동이 아니고서는 이 마을로 오기가 힘들 것이다.

 

들고간 작은 꾸러미를 내려놓으니 왜 이런 걸 사왔느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하신다.

 

나는 불이 나는 엉덩이를 이쪽저쪽 옮겨야 하는 방안 아랫목을 차지하고 앉아 어르신들과 오래오래 얘기를 나누었다.

후배를 제외하고는 이런 여행이 처음이었던지라 몇몇은 쑥스러워하는 듯도 하다.

또한, 몇몇은 이곳의 오랜지기처럼 적응이 빠르다. ㅋ~

 

<촬영 : 두바퀴로 가는 자전거>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워 돌판에 삼겹살도 굽고, 라면도 끓이고...

방안에서는 할머니께서 손수 담그셨다는 막걸리가 어느 새 두 병째 비워지고 있었다.

 

무릎이 아프셔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할머니께서 우리의 점심을 해주시겠다고 하신다.

점심거리를 모두 준비해 갔던데다 아프신 할머니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 말렸으나 딸래미가 온 듯 하다시며 굳이 해주시겠다고 하신다.

내심으론 지난번 여행에 할머니의 된장 맛과 김치 맛을 보았기에 기대도 되어 더이상 말리지 않았다. 

 

그 흔한 가스렌지 하나 없는 부엌에서 잔불을 피우시는 할머니를 돕고자 들락 달락거려 보지만 괜스레 좁기만 하다고 기어이 쫓아내신다.

 

그렇게,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정이 듬뿍 담긴 점심상을 받았다.

 

시래기와 무나물, 팥잎을 콩가루에 묻혀 버무렸다는 고소한 버무리.

노랗게 깨알같은 조가 섞인 금세 한 밥에 맛난 된장국물을 몇 숟가락 넣고 쓱~쓱~ 비볐다.

 

지난 여행길에서도 할머니가 내어주신 된장은 정말 맛났었다.

처음 본 우리에게 통 가득 된장을 퍼주시면서도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환하게 웃기만 하셨지~

 

할머니께서 끓여주신 된장찌개에는 그 흔한 두부조각 하나 없었고 별다른 건더기가 없는 헐랭한 국물이었으나 얼마나 맛나던지...

게다가 땅속에 묻은 독에서 방금 꺼내온 김장김치라니~

 

맛난 점심을 먹고 설거지는 내가 해야지~하면서도 뜨뜻한 아랫목을 쉬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일행 중 하나가 잽싸게 고무장갑을 끼고 찬 물에 설거지를 한다.

정말 고마웠다.

 

할아버지께서는 손님에게 그런 걸 시킨다고 할머니에게 연신 타박을 늘어놓으신다. ^^ 

 

아침나절에 잠깐 날리던 눈발이 어느새 펑~펑~ 함박눈이 되어 날리기 시작한다.

2대의 차량 중 하나는 2륜 산타페였는데 산길을 돌아내려 갈 길이 걱정된다.

 

모닥불 정리를 하고 갈 채비를 한다. 

할머니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신다.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찾아와 말동무도 해주고 술동무도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다.

그 말씀이 진심임을 안다.

어르신들의 두 손을 꼬옥 잡고 내내 건강하시라고 깊게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린다.

뒤돌아서는 발걸음이 머뭇머뭇한다.

 

돌아오는 마음속엔 애틋함과 고마움 그리고 시린 마음이 섞여 쌓였다.

 

한바탕 왁자지껄 왔다가 훌~쩍 떠나가면 그분들 마음이 어떠실까~

오래전, 처음으로 오지여행이란걸 하고 돌아왔을 때 어르신들 생각으로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었는지...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라도 잠시나마 그분들의 말벗이 되어드렸다는 생각을 한다.

 

굵은 눈발이 날린다.

2륜차에 체인을 감고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간다.

 

봄이 오면 연둣빛 이쁜 청량사에 들렀다가 이곳에 다시 와보리라~ 생각한다.

 

늦지않게 서울로 돌아왔다.

즐겁고 유쾌했던 동행들에게 고맙고, 내내 운전해준 사람이 고맙다.

 

<촬영 : 두바퀴로 가는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