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소백산 산행기 - 소백의 낮은 초목들처럼..

dreamykima 2006. 5. 7. 13:29

산행 날짜 : 2003년 9월 21일 일요일

산행 코스 : 천동리 - 비로봉(6.8km) - 제 1연화봉 - 연화봉 (4km) - 희방사 - 희방폭포 (2.4km)

산행 인원 : 3명 (나, 경희, 윤종)

대중 교통 :

-> 동서울 - 단양간 직행버스 (버스비 11,000원) 오전 7:00 - 2시간 소요

-> 단양 버스터미널 - 천동리 : 택시 6,000원

-> 희방사역 - 청량리 기차 오후 5시 01분 (기차 10,300원) 3시간 40분 소요

 

소백산을 알고난 이후 난 소백산을 여러 번 갔다.

마음 한 켠이 뭉쳐있거나 무언가 답답함이 응어리져 있을 때 소백산은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아니...더 정확히 말하자면.....비로봉 정상에 세찬 바람을 맞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낮은 초목들은 나에게 좋은 선생이 된다.

 

산에 오른다는 일이 다른 사람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하다.

산에 다녀오면 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나를 감싸는것을 느낀다.

특히 한없이 걸을때면 무언가 많은 생각들이 오갈 듯 하지만

오히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기분이다.

나를 답답하고 힘들게 했던 작은 응어리들조차 어느 새 풀어져 버리는 그런 기분.

 

동서울에서 7시 버스를 타려면 6시 이전에 집을 나서야 한다.

생각처럼 몸이 움직여주질 않아 미적거리다 정각 6시에 집을 나섰다.

승객도 많지 않은 일요일 새벽시간이라서인지 지하철이 오늘따라 느릿 느릿하다.

마음은 급한데, 핸드폰도 집에 두고 나왔다.

일행들이 갑갑해할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급해진다.

강변역에 도착한게 7시인데 무슨 정신으로 뛰었는지 떠나는 차를 간신히 잡아탔다.

이 차를 놓치면 단양까지 가는 직통 버스는 8시에나 있다.

 

서울을 벗어나는일은 언제나 즐겁다.

남쪽에선 아직도 수해복구에 여념이 없다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당장 내 눈앞에 일이 더 커 보이고 힘들어 보인다.

이기적이다.

단지...산에 가는일이 나에게는 단순히 놀이 이상이라고.....나는 나대로 열심히 살기 위함이라고.....애써 변명 해 본다.

 

모자라는 잠을 버스에서 채우고 눈을 뜨니 단양에 가까운데 떠날 때 맑은 서울 하늘과는 달리 안개가 자욱하다.

아마도 높은 산과 물이 있어 그런가 보다....

 

9시. 단양 터미널에 도착했다.

일행이 3명이니 버스를 타나 택시를 타나 별 차이도 없을뿐더러 미터 요금만 받기 때문에 나는 여길오면 곧잘 택시를 이용한다.

천동리까지 6,000여원이 나온다.

 

9시 40분. 소백산 천동리 매표소를 출발했다.

해발 1,035m나 되는 야영장까지 이어지는 지루한 길이다.

그나마 시멘트 길이 아닌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천천히 걸었다.

태풍때문인지 계곡이 많이 유실되어 있고 길도 군데 군데 고르지 않다.

연일 내린 비에 계곡은 수량이 풍부해져 제법 큰 소리를 내며 흐른다.

날씨가 맑을꺼라는 예보와 달리 하늘엔 구름이 가득하고 오히려 걷기엔 이 날씨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야영장까지 쉬지 않고 걸을 예정이었는데 따라온 두 녀석들이 아침을 못 먹은탓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허기가 진다고 하니

한시간쯤 걸은 후 잠깐 쉬어 간식으로 요기를 한다.

 

10시 50분. 야영장에 도착했다.

식수도 채우고 화장실도 들리고....잠깐 쉬었다.

 

11시. 야영장을 출발했다.

천천히 걸어도 12시면 정상에 닿으리라.

샘터에서 물도 한잔하고 오르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나무들 사이로 하늘을 보니 그리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지만 곧 정상에 닿을것이고 정상에 닿으면 바람때문에 추위를 느낄 듯 싶어

주섬 주섬 재킷들을 꺼내입었다.

단체팀을 앞서 온것 말고는 참으로 한산하다.

교행하는 등산객들도 별로 없고 촉촉히 떨어지는 빗방울들마냥 오늘의 등산로는 매우 차분하다.

 

12시. 대피소에 닿았다.

간간이 빗방울도 떨어지고 있고 허기진 뱃속을 달래기 위해 우선 대피소에 들렀다.

대피소엔 중년 부부와 홀로 온 젊은 남자 한명.

그리고 가족으로 보이는 세명의 등산객이 전부다.

날씨 탓인가?

한쪽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챙겨온 도시락과 어젯밤에 만들어 두었던 샐러드 그리고 맥주 김밥등으로 허기를 메운다.

비까지 내리고 우중충한 하늘을 보니 따뜻한 국물생각이 간절하다.

날씨가 좋다하고 능선 산행이니.......더우려니... 하고 얼음물만 들고 왔다.

모든 음식이 차가운데 체할까 싶어 천천히 식사를 하고 비로봉 정상으로 향한다.

어느 새 비는 개이고 흰 구름들이 올라온다.

 

나무계단을 오르며 뒤 돌아보니.....

어느 새 갈색으로 변해가는 낮은 초목들이 잠시 내린 빗물을 머금고 간간이 비추이는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다.

초목들 가운데 자리한 통나무와 붉은색 지붕의 대피소.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이란 바로 이곳이 아닐런지......^^

 

골짜기마다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들.

구름은 어느 새 능선마다 제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내 언어감각으론 하얀 구름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도 하나가 아닌 여러색이라는것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구름 사이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눈부시다.

 

오후 1시. 정상에는 비로사쪽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제법 많다.

모두들 이 아름다움을 놓칠세라......카메라에 그 모습들을 담아내느라 분주하다.

우리도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언제나처럼 비로봉엔 바람이 분다.

저 낮은 초목들은 이 바람을 견디며 산다.

우리도 저들처럼 삶을 이겨내며 살자고 다짐 해 본다.

 

오후 1시 10분. 연화봉을 향해 출발했다.

 

천동리 출발부터 우리를 따라오는 보라색 투구꽃과

능선 군데 군데 무리지어 피어있는 키작은 구절초.

하얀색 줄기 눈부신 자작나무.

성질 급하게 이미 단풍이 들기 시작한 단풍나무.

뒤틀려 뻗어올라 간 나뭇가지들 사이로 간간이 쏟아지는 햇살.

 

뒤돌아 멀어지는 비로봉 바라보랴.....

다가오는 연화봉 바라보랴...

저 아래 삼가리 저수지 바라보랴.....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어 걸음이 자꾸 멈춰진다.

가는 걸음을 서두르고 싶지 않다.

나는 오랜만에 소백산과 느긋한 데이트를 즐기고 싶다.

 

오후 2시 45분. 연화봉에 도착했다.

어느 새 햇볕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쬔다.

벌러덩 드러누운 녀석들은 한 숨 자고 가면 좋겠단다.

나도 그러고 싶다.

따가운 볕에 얼굴이 타거나 말거나 벌러덩 드러누워 드 넓은 가을 하늘 아래 따스한 햇살을 쪼이며

지나가는 흰 구름 붙잡고 노닥거리고도 싶고 살랑대는 바람들에 내몸을 맡겨보고도 싶다.

 

오후 3시. 금새 잠이 들듯한 녀석들을 재촉한다.

서울로 가는 열차가 풍기에서 4시 56분에 떠난다.

이미 시간이 빠듯하여 희방사역으로 가야 할 듯 싶다.

희방사역까지 걸어가려면 부지런히 내려가야 한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무릎이 아프다고 투덜대면서도 잘 따라 내려온다.

 

오후 3시 45분. 안부에 내려섰다.

희방사까지 그 마의 계단(? 나만 그런가?)을 내려가야 한다.

나도 무릎이 시큰거린다.

옆걸음을 하며 열심히 내려섰다.

희방사를 그대로 지나쳐 희방폭포까지 단숨에 내려선다.

수량이 많아 희방폭포가 제법 볼만하다.

기념으로 사진 한 컷 찍고 주차장에 내려서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기차 시간때문에 내려가는 차가 있으면 얻어타고 싶은데........불행히도 움직이는 차가 없다.

 

오후 4시 15분. 희방사 매표소다.

희방사역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라 물으니 30여분 이상 걸린다고 부지런히 가야할꺼라고 한다.

에고......기차를 놓치는가 싶다.

매표소 지나 한참을 내려오다 드뎌 차를 얻어탔다.

그것도 에쿠스를......ㅎㅎ

영주에 사신다는 점잖은 중년부부셨는데

시간이 많지 않은 우리를 위해 희방사역까지 태워다주고 가셨다.

얼마나 고맙던지.......

 

오후 4시 45분. 희방사역.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

느긋하게 기차표를 끊고 남은 간식꺼리로 입을 즐겁게 하며 기차를 기다린다.

 

오후 5시 03분. 기차를 타고

오후 8시 45분 청량리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