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치악산 산행기 2 - 눈꽃은 간데없고 잔설만이 나를 반기네.

dreamykima 2006. 5. 7. 13:49

산행 장소 : 강원 원주 치악산.

산행 날짜 : 2003년 12월 14일 당일

산행 인원 : 2명(경희 & 나)

산행 코스 : 구룡사 매표소(10:40) - 세렴폭로 갈림길(11:10) - 사다리 병창길 - 안부(11:30) - 점심(30분 정도 식사겸 휴식) - 비로봉(13:30) - 비로봉 출발 계곡길(14:00) - 세렴폭포 갈림길(15:30) - 구룡사 매표소 원점회귀(16:20)

대중 교통 : 동서울 - > 원주 직행버스 - 버스비 각 5,500원 (1시간 30분 소요)

원주 터미널 앞 시내버스 -> 구룡사(41번 버스-25분 간격) : 버스비 800원

원주 -> 청량리 기차 오후 6시 42분 무궁화호 - 6,100원

 

피곤했다.

송년회 기간이라 술잔이 오가는 모임이 잦다.

산에 다녀온지 오래 되었다.

마음이 불안정하다.

무언가 빼트리고 사는 듯 싶다.

피곤함을 이끌고 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경희가 좋은 산행동무가 되어준다.

산행속도며 취향이 거의 엇비슷해서 어린 동생이지만 마음편한 산행동무다.

 

15일까지는 산불방지기간으로 다른 등산로는 통제가 되어 있기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사다리병창코스를 택한다.

어김없이 숨이 탁탁 막혀온다.

세렴폭포 갈림길까지는 잘 걸었으나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서 체력이 떨어지는걸 느낀다.

경희도 아침을 못 먹은탓인지 힘이 없어뵌다.

10시 40분 시작한 산행.

경희가 계단을 세어보다 금새 400여개가 되자 그만둔다.

세면 뭘하노...저 끝간데없는 계단을........^^

 

12시가 되면 점심을 들자고 했건만 첫번째 안부에 도착해서 우린 그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산악회에서 왔는지 수십명의 등산객들이 우릴 스쳐간다.

그 소란속에서도 배가 고팠던지 밥은 잘도 들어간다.

뜨거운 컵라면 국물에 아직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밥과 반찬은 꿀맛이다.

돌아가는 기차 시간이 여유가 있어 오늘은 다른때보다 1시간여를 늦게 출발해서 왔지만 급할것이 없이 느긋하다.

뜨거운 커피향이 참 좋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출발하는 발걸음은 아까와는 사뭇 다르다.

경희도 나도 날아갈듯한 가뿐함을 느낀다.

힘든 경사지만 별 어려움없이 오른다.

 

배고픔에 정신이 없었던지 아까는 들리지 않던 뽀드득 소리가 rhythmical하다.

밤사이 눈이 내려 잔설이 쌓여있는 등산객들 발밑에서 나는 소리다.

힘이 드는지 가뿐숨만 몰아쉴 뿐 조용히 조용히 산을 오른다.

눈밑으론 얼어 빙판이 되어 있는 길도 많고 바위나 돌 나뭇가지들은 상당히 미끄러워 조심스럽다.

 

비로봉에 섰다.

생각보단 바람이 덜 불지만 그래도 바람은 차다.

기대했던 눈꽃은 역시나 없다.

오늘은 날이 너무 좋다.

파란 하늘과 춥지 않은 날씨.

자작나무 껍질이 햇살에 눈부시다.

비로봉아래 자작나무 몇 그루를 나는 좋아한다.

그 끝가지에 눈꽃이 살짝 달려있다.

푸른 하늘 배경으로 올려다보니 위태 위태 달려있는 그들이 오히려 애처롭다.

 

계곡길이 좀 나을까 싶어 계곡길로 하산을 했다.

바보같이 몇 번을 오르내렸으면서도 계곡길이 응달이라 더 미끄러울꺼라는 생각을 못하다니.....

덕분에 고생 좀 하면서 내려왔다.

안전이 최우선인지라 스틱을 의지삼아 천천히 내려왔다.

느긋하게 걸었는데도 그리 늦지 않게 내려왔다.

 

시간여유가 있어 처음으로 구룡사 경내에도 들러보았다.

실은 대웅전이 불탔다기에.......

 

우릴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바로 잡아타고 원주역앞에 가 뜨거운 소머리국밥에 둘이서 사이좋게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평소에 소주를 안 마시지만 어제 산행 후 마신 소주는 웬지 달디달았다.

술기운에 잠도 자지 않고 경희랑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며 오니 금새 청량리에 도착했다.

 

산책길처럼 가벼운 산행길이었다.

10시간은 걸어야 산행을 한 것 같다는 경희 말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의 산행은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치악산 비로봉 자작나무의 눈부신 하얀 줄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언젠가 다시 보러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