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행 - 휴가, 그 짧은 이야기
3일 아침,
7시 반에 집을 나서며
출근시간에 맞춰 기차표를 예약해 둔 나 자신의 아둔함을 탓해보지만
어쩌랴...
용산역에서 8시 50분발 여수행 무궁화호 기차.
기차에 오르자마자 정신없이 잤던 것 같다.
야트막한 산들과,
초록의 들판과,
옹기 종기 마을들을 지나는 풍경과,
오랜만에 기차를 탄 설레임에도 불구하고
내리 4시간을 자고 나니
기차는 어느 새
한 낮을 관통하며 유유한 섬진강과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1시 37분. 구례구역.
재작년에 이른 봄마중을 나오고는 근 2년 만에 오는 이곳이지만
봄이 되면 무언가에 홀린 듯 남도와 섬진강을 오가던 나에게 이제는 익숙한 곳이다.
2일날 이미 처가에 와 있던 송탁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언니네 들러 시원한 수박으로 잠시 더위를 식히고
합류하기로 한 중렬오라버니와 영희가 천은사 매표소에 와 있다는 전화에
지리산 자락으로 향했다.
원래는,
아침 일찍 내가 도착하면 송탁님, 지언이와 함께
화엄사에서 - 코재 - 노고단으로 올라
노고단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반야봉을 거쳐 지리산을 걷다가 하산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등산을 하기엔 좀 늦은 시간에 도착하였고
며칠간의 야영으로 지언이의 피로가 누적된데다
송탁님도 타는듯한 불볕 더위에 등산 자체가 썩 내키지는 않은 듯 하다.
어쨌든 산위로 올라가면 조금 시원하려니 하는 생각에 모두들 매표소까지 갔는데
성삼재는 차량이 너무 많아 통제중이라 하고
성삼재를 거처 달궁계곡으로 향하려는 수 많은 차량들을 보니 마음이 달라진다.
혼자서 버스를 타거나 히치를 해서 성삼재까지 올라가든지
아예 등산 자체를 포기해야 하든지 결정을 해야 했는데
나 또한 작렬하는 태양과 그 더위에 익어가는 아스팔트로 인해 지쳤나보다.
성삼재 주차장이 통제중이라면
노고단 대피소에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으니 썩 내키지도 않는다.
언제나 산객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긴 하지만
몇 년 전에도 휴가중에 지리산 종주를 나섰다가
그 사람많음에 지레 지쳤던 적이 있어서인지
옆에서 굳이 꼬드기지 않았더라도 마음이 쉬이 돌아섰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잠시 올랐다가 더위를 식히고
잘하면 노고단쯤에서 일몰이나 보고 내려올터인데 1인당 입장료가 3,300원이나 한다.
생각보다 지리산을 쉽게(?) 포기하고
매표소 앞에서 라면을 끓여 못 다 먹은 점심을 먹고
맥주 한 캔씩으로 더위를 식힌 후 다시 언니 집으로 back했다.
구례시장에 들러 이것 저것 시장을 봐서
섬진강 악양 들판 건너 평사리 공원에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평사리 공원은 그늘이 없는 곳이었지만
금새 해가 기울었고 바로 앞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탁 트인곳이란게 마음에 들었다.
또한, 우리 캠핑장소 바로 옆에 시원한 분수가 줄기차게 솟아오르고 있어
그럭 저럭 하룻밤을 보내기엔 괜찮은 곳이었다.
<아이들이 분수 물줄기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뛰고 있는 녀석은 근일이>
<분수 바로 옆에 타프와 후라이를 치고 저녁을 즐긴다.
송탁님은 토종닭 바비큐중이고 뒷모습만 보이는 지언이는 열심히 갈비를 굽고 있는중이다.>
저녁을 하고
LA갈비도 굽고
구례시장에서 사온 토종닭으로 송탁님의 맛난 바비큐가 이어지고
오고가는 술잔속에 더위도 잊고...
근일이와 지언이가 분수에서 신나게 노는걸 구경하며 부러워만 하다가
결국엔 어른들도 함께 뛰어들었다.
한낮의 더위에 흘린 땀방울들이 시원한 물줄기속에 모두 씻겨져 버려 얼마나 상쾌하던지...
휴가의 첫 하루는 그렇게 지났고 텐트안에서 쌕쌕거리며 잘도 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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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둘쨋날.
햇살이 퍼져 들어오고 더위가 느껴지는데도 늦게까지 누워있는데
중렬오라버니가 웬일이냐며 깨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하는 습관이 있는 줄 알기에 늦잠속에 빠져 든 내가 신기했던가보다.
그늘이 별로 없는 곳이라 타프와 후라이로 햇볕을 가리고 아침을 하고 장비를 챙겼다.
중렬오라버니의 부대찌개는 아침부터 소주 한모금이 그리울만큼 맛났다.
결국은 소주 한 잔씩으로 해장(?)을 했다.
다시 돌아와 2박을 하기로 해서 텐트며 타프며 무거운 장비들은 두고 계곡으로 향했다.
악양면을 지나 회남재를 넘어 청학동지구로 들어가려 했으나
지난 해 수해로 무너진 길들이 아직도 복구가 안되어 길이 막혀 있었다.
아직 정오도 안 되었는데 햇볕은 정말 따가울 정도이다.
되돌아나오며 잠시 들린 악양천 상류 계곡물은 시원했다.
'작금의 대구날씨에 내팽개쳐진 이 언냐 걱정도 안되냐?.....는 문자메세지에
고얀것들 되지 않으려고 대구로 전화를 날리니 당장 날아오랜다.
중렬오라버니와 영희도 딱히 정해놓은 일정이 아니었고,
나는 어차피 휴가중에 대구에 하루쯤은 들릴 예정이었으므로
송탁님네와 계곡에서 놀다 오후쯤에 대구로 날아가기로 했다.
다시 평사리로 가 캠핑도구를 챙겨 지리산 문수리 계곡으로 더위를 식히러 갔다.
캠핑장을 철수하면서 그늘없는 뙤약볕에 땀이 비오듯 흘렀지만
시원한 계곡을 그리며 이겨낸 보람이 있었다.
계곡물은 정말 시원하다 못해 냉기가 서렸다.
아스팔트길 위에서는 찌를듯이 달려들던 태양도
계곡의 나무들 사이로 걸러지니 유순하고 부드러운 빛이 된다.
오히려 계곡의 냉기속에 한줄기 햇볕을 찾아들만큼 반가워지기도 한다.
근일이와 지언이는 추운줄도 모르고 금새 물만난 물고기들이 되고
나보고 함께 수영하자며 조르다가 내가 꼼짝을 안하니 아예 사정을 한다.
그에 못이겨 뛰어든 계곡물은 너무나 차가워서 추위에 약한 내 살들은 금새 오돌돌돌 닭살이 오르고
결국 아이들과는 오래 놀아줄수가 없었다.
계곡에 탁자와 의자들을 놓아두고 발을 담근채 중렬오라버니표 수제비와 만두 등으로 점심을 먹었다.
느긋하게 놀았는데 4시가 넘으니 한기가 느껴진다.
도심에 있는 사람들은 부러울따름이었겠지만 감기가 걱정될만큼 정말 추웠다. ^^
계곡에서 철수하여 송탁님네와는 작별을 하고 나머지는 대구로 향했다.
송탁님도 대구에 동행하고 싶어했으나 차마 말을 못 뗀듯...ㅎㅎ
남원에 들러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우고
고속국도 같지 않은 88고속국도를 타고 대구로...
가는 목적지가 대구 동쪽 끝이어서 88 - 경부 - 동대구IC 갔으면 빨랐을텐데
모르고 서대구쪽 화원IC에서 내려 막히는 대구 시내 통과하느라 시간 다보내고
목적지인 달님네 아파트에 도착하니 남원에서 5시 반쯤 떠났는데 8시 반을 넘어 9시가 다 되었다.
귀한 손님들 온다고 저녁도 못 먹고 기다리고 있던 대구의 오지 식구들...
에고...죄송...그리고 감사...
아쿠아님께서 손님 대접한다고 옻닭을 주문 해 두셨다고 하여
아쿠아님댁에서 감자와 옥수수로 배의 허기만을 면하고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에 시 외곽의 솔잎찜질방이란데로 옻닭을 먹으로 갔다.
몇 시간 푹 고았다는 닭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국물에 밥까지 말아 한 그릇 뚝딱했다.
옻닭이란걸 처음 먹어보았는데 옻이 오르지 않았다.
호기심에 일단 먹고보자였는데 옻이 올라 고생을 했다면 끔찍한 기억이 되었으리...^^
난 솔직히 찜질방과 별로 친하지 않아
지난 번 통영여행 때 새벽시간에 잠시 목욕탕 이용하느라 들른 것 말고는
제대로 된 찜질방이란곳을 가보지 못했는데
지난 번 통영의 찜질방과는 사뭇 다른 이곳은
바닥에 솔잎이 깔려 있고 온통 황토로 발라진 벽면이 있는 방들도 이루어져 있었다.
아궁이를 고치느라 3일째 불을 꺼 두었다는데도 방안의 온도는 섭씨 50도에 육박하고 있었는데
덥긴 해도 한낮의 뜨거운 태양볕에 더운것과는 다른 특이함이 있었다.
그런곳이 익숙하지 않은데다 땀을 많이 흘리는 탓에 남들보다 곱절로 땀을 흘린 듯 싶었는데
땀조차도 끈적하지 않고 마르면 금새 시원해지는게 꽤 괜찮았다.
나중에 다시 와보고 싶은...
야심한 시각에 저녁을 먹고 잠시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고 논 다음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쉴곳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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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않게 달님네서 이틀이나 신세를 지게 되었다.
대구는 36.7도라는 숫자처럼 정말 더웠다.
시원한 에어콘 밑에서
시원한 수박과
시원한 맥주와
남의 집이 아닌 그냥 내 가족의 집에 잠시 들린 듯 편안하게 쉬고 왔다.
어느 작가가 말하길...
여행이란 생산을 위한것이 아닌 시간을 아름답게 '허비'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고대로 실천하고 온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