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 2009년 11월 28일 / 걷기모임 11월 정기도보
코 스 : 해산터널 쉼터 - 비수구미 계곡길 - 비수구미 - 방개 - 법성 - 지둔지 - 사야소 나루터 - 유람선 - 평화의 댐 - 주차장
강원도 화천군 동촌리 비수구미 마을.
한 때는 오지 중의 오지로 통하던 파로호 상류의 오지마을 비수구미.
처음에는 화전민들이 터를 잡았다고 했던가~
비수구미 마을 지나 다음 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폐교는 학생수가 한 때는 100명이 넘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화전이 금지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날 수 밖에 없었고, 이제는 몇 가구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 가구수와는 달리 비수구미는 갈수록 외부에 알려져 현재는 오지 아닌 오지가 되어버렸다.
해산터널에서 비수구미로 향하는약 6km의 계곡길은 아직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흙길이지만
휴식년제까지 스스로 요청 할 정도로 보존을 원했던 뜻과는 관계없이 점차 조금씩 망가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해산령 가기 전 파로호 초입이었던 듯 싶다.
어느 시골 주유소에 잠시 쉬었다.
비수구미 마을로 향하는 임도는 어쩐일인지 바리케이트가 열려 있었다.
2009년 5월로 휴식년제가 끝나고 이제 차들도 마음대로 드나드는건가?
눈인 듯 먼지인 듯 눈싸래기 몇 개 난분분하더니만 어느 새 따스한 햇살이 퍼졌다.
차~암 맑다.
맨 뒤의 두 분은 처음 뵙는 분들로 부부이신 듯 보였는데 내내 저렇게 걸으셨다.
참 보기 좋았다.
부부끼리, 친구끼리, 부자끼리, 동료끼리....끼리 끼리가 참 좋아 보였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언가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친구는 시간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세월의 명암과 시간의 굴곡을 거치며 그렇게 함께 해 온 이가 바로 친.구.
철 지난 개망초.
트리밍을 하고보니 접사로 찍었음에도 촛점이 제대로 맞질 않았네~
가을이면 단풍이 환상적인 곳. 어디든 계곡 옆 길은 단풍이 좋다.
비수구미 마을.
비수구미를 지나 방개 법성쪽으로 가다 만난 집.
지도를 가져오지 않아 지형을 살필수가 없어 여기가 어디인지 제대로 짚어내질 못하고 있다.
파로호를 끼고 약 5km의 임도가 이어진다.
어느 마을 나루터였는지 임도가 끝나는 곳에서 유람선을 탔다.
거의 100여명에 이르는 인원을 실어나르기 위하여 운영진들이 고심끝에 내린 결론이 유람선이었는데 그 고생만큼 참 좋았다.
저 앞이 평화의 댐 선착장.
세계 평화의 종...이라 했던가~
문화유산 해설사로부터 이런 저런 설명을 듣고 있는 님들.
난 유람선에서 찬바람을 너무 많이 쐰 탓인지 한기가 드는 듯 싶어 곧바로 차 안으로 피신했다.
강은 흐르는게 그 본질이다.
낮은 곳을 지향하며 겸손하게 흘러 궁극의 목적지인 바다로 나아간다.
호수(댐)이라는 건, 상류의 굴곡진 길을 돌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하류로, 바다로 내달리는 강물을 잠시 편안하게 쉬어가게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수문이 있고 물이 흘러 갈 길을 터주는게 그의 의무다.
평화의 댐은 홍수조절댐이다.
흔히 보는 수문도 없고 발전 기능도 없이 다만 급격한 홍수 발생 시 직경 10m의 배수터널 4개를 통하여 물이 방류되는 것이다.
흔히 보는 수문이 없어서인지 그 안에 갇힌 물들은 답답 해 보인다.
흐를 수 없는 강은 이미 강이 아니다.
굳이 사족을 달지 않더라도 역사에 이런 불유쾌한 기억을 안고 사는 우리네가 안스럽다.
우리네의 코묻은 돈이 저곳에 쓰였을지 안쓰였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어렵던 시절, 전국민을 상대로 끌어모은 돈으로 만든게 고작 저거라니...그저 헛헛 할 밖에~
평화의 댐을 지나 양구로 가는 406번 지방도로에 오천터널이 있다.
그 오천터널 앞 뒤로 산 정상으로 가는 임도가 있는데 산 정상에는 헬기장과 평화의댐 경계시설이라나 뭐래나~ 하는 철 구조물이 있다.
커다란 철 구조물은 그 옛날 그 산 정상에 수세식 화장실까지 있었던 꽤 고급스러운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철 구조물들만 남아있고
그나마도 모두 썩어문드러지고 있는 중이다.
그 곳에서 내려다보면 평화의 댐의 전경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아마도 높으신 분들이 헬기를 타고 댐을 시찰하러 다녔던 곳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그 곳에서 내려다보면 댐이 너무 작아서 저걸로 서울의 63빌딩까지 잠긴다던 그 물들을 모두 막아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그 시설물 앞에는 멋진 돌 비석이 하나 서 있었는데 평화의 댐을 만드는데 기여한 인물들의 이름들이었던가~
내 기억하기로 수십명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모두 끌 같은걸로 파 헤쳐져 제대로 남아있는 이름들이 거의 없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본인들이 그랬든 타인들이 그랬든 그렇게 자랑스런 비석이 제대로 남아있질 못한 건, 그 속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겠지~
세상사 모든 일이 결과로서만 판가름되어지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이미 겪은 우리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4대강의 보들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가늠하고 깊히 생각지 않는다면
이후로의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가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나무를 헤칠 수 없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쇠의 자루가 되어 나를 헤칠 빌미를 만들고 있지 않은지 깊히 성찰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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