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길에 서다

[100220] 간이역을 찾아 떠난 느림 여행

dreamykima 2010. 2. 23. 12:07

날 짜 : 2010년 2월 20일

코 스 : 간현역 -> 판대역 -> 양동역 -> 매곡역 -> 구둔역 : 약 27km

 

다른 사람들은 '간이역'하면 뭐가 떠오를까?

 

나는 분홍빛 철쭉꽃 화사하게 피었던 어느 봄날의 압록역이 떠오른다.


여객 열차도 서지 않던 작은 간이역.
어느 해 비 내리던 봄 날 섬진강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잠시 두 다리를 쉬느라 들렀던 곳.


소나무 아래의 나무의자 옆에 인심 좋은 역무원의 따뜻한 배려.
가스버너와 작은 주전자, 그리고 새하얀 도자기 커피잔 2개와 커피믹스.

 

맛나게 드셨거든 다음에 들리실 때 커피믹스 몇 개쯤 두고 가시라~ 는 작은 글귀.

 

봄 비 부슬 부슬 내리던 차에 많이 걸어 다리는 아프고~ 작은 매점조차 쉬이 찾아볼 수 없던 그 곳에서 얼마나 감사했던지~

 

다음에 올때는 커피믹스 몇 개가 아닌 한박스를 가져다놓고 가야지~했던게 마음만 가득한채로 벌써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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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진보와 발달은 우리네의 생활을 빠른 속도와 편리함에만 맞추어 나아가도록 하고 있는 듯 싶다.
작은 마을들을 지나 산모롱이 돌아 돌아 가던 길들은 좀 더 빠르게 빠르게를 외치며 쭉쭉 뻗는 직선화의 길들로 변모되어 가고 있고,

기차 또한 좀 더 빠르게를 외치며 속도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빠르고 편리함만을 쫓아다니면서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없을까?
그걸 얻기위해 우리가 담보로 내어준 것들이 있지 않을까?

 

작은 소도시와 작은 읍내와 작은 마을들을 옆에 둔 구불 구불한 지방도를 따라 느리게 가는 길은 정겹다.

쭉 쭉 뻗은 직선화의 길에서는 보다 빠른 시간안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기는 할테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인간적인 상호작용을 느낄 여유와 겨를이란 용납되지 않는다.
좀 더 빠르게 빠르게를 외치는 우리네의 조급증이 인간적인 상호작용을 위한 시간과 공간조차 없애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고, 느리고, 짧고 편리하지 못한 것들을 어느 새 잘못 되고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산다.

작다는 것은 크다는 것의 상대적인 개념일 뿐, 잘못 된 것도 아니고 나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요즘 상대적으로 장문을 글을 쓰는 블로그나 미니 홈피 보다는 단문을 쓰는 트위터나 마이크로 블로그가 각광을 받고 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속도전과 편리성만을 쫓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의 조급증과, 진중하지 못함과, 인내력 부족과,

충동적이고 즉각성을 쫓는 행태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물론, 나는 속도 그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도 아니고, 느림의 미학만을 쫓아 사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빠르고 느린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주체성은 갖고 살아가고 싶다.

 

빠른 것이 느린 것보다 무조건 더 좋다~ 라는 생각은 휴지통에나 던져 넣을 일이다.

 

이런 시절 속에서 시골 작은 동네를 이어주던 작은 간이역들이 점 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걸었던 5개의 역 중, 2년 전에 사진을 찍어왔던 양동역은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원주까지의 복선화 공사로 인하여 조금 지나면 아주 크고 편리한 역사가 다시 지어 지겠지만

그 작았던 역에서 느꼈던 아기자기함과 그 안에서 이루어진 소통의 방식은 변질되어 갈 것이다.

 

간현역에서 구둔역까지 기차로는 약 20여분이 걸리고 자동차로는 약 30여분이 걸리는 거리이지만,

우리는 7시간 30여분을 느릿 느릿 걸었다.

 

반듯한 지름길을 버리고 가능한 구불 구불 샛길을 찾아 느릿 느릿 작은 간이역들의 정취를 듬뿍 느끼며 걸었다.

몇 분 차이로 기차를 놓치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우리의 즐거움을 앗아갈 수는 없었다.

 

 

<간현역에는 여객 열차가 하루에 7번(편도 기준) 선다.

중앙선 복선 전철화 사업에 의해 폐역이 된다고 한다.>

 

 

<판대역은 무인역으로 여객 열차가 하루에 두 번(편도 기준)만 선다.

그나마도 중앙선 복선 전철화가 이루어지면 역으로서의 기능은 정지된다고 한다.>

 

 

<2008년 4월에 찍은 사진. 이미 이 역사(驛舍)는 역사(歷史)속으로 사라졌다. 

양동역은 다른 역들에 비해 열차가 자주 선다.

하루에 9번(편도 기준)의 여객 열차가 선다.>

  

 

 <매곡역 또한 무인역이다.

같은 무인역인 판대역보다는 편의 시설(?)이 더 좋다.

무인역치곤 기차가 여러 번 선다.

여객 열차가 5번(편도 기준) 정차하는 곳이다.

이 또한, 중앙선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인해 이설될 예정이라 하는데 이 역사도 사라지는거겠지?

이제 사진속에서나 볼 수 있겠다.>

 

 

<2008년 5월 1일에 찍은 사진.

구둔역은 하루에 4번(편도 기준)의 여객 열차가 서고 역무원도 있지만 승차권을 발권할 수는 없는 역이다.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므로 역사는 남아 있겠지만,

중앙선 복선 전철화에 따라 2010년 석불역 방향으로 약 800m 떨어진 곳으로 이설 할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