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날 짜 : 2010년 5월 15일 토요일
코 스 : 되미기재 - 말구리재 - 하늘재 약 26km
우리들의 눈을 잡아끄는 것은 하얀 사과꽃과 노오란 민들레, 어디론가 먼 여행을 떠날 얼굴을 한 민들레 홀씨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백가지 나무가 피어내고 있는 백가지 이파리들의 연초록빛이었다.
보라색 벌깨덩굴과 하얀색 미나리냉이, 홀아비꽃대들, 노오란 미나리아재비들, 흔하디 흔한 양지꽃들과 작지만 이름만 큰구슬붕이,
게다가 종종종 매달린 둥굴레까지 내 눈을 혹하게 하는 녀석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하루왼종일 온통 연초록빛 이파리들에게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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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이 좋아서인지 고속도로가 막힌다.
9시 30분쯤 점촌에 도착할 줄 알았던 고속버스가 40분에 도착...마음이 급해진다.
게다가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던 제비꽃님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고 핸폰 연결이 되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8명을 택시 2대에 나누어 시내버스 터미널로 태워보내고는 경희와 둘이서 두리번거려보지만 아니 보이신다.
우리도 시내버스 시각을 맞춰야 하기에 결국 만나지 못하고 시내버스 터미널로 이동.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간에도 시내 곳곳의 공사구간으로 인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행여 전화가 올세라 전화기를 꼭 붙들고 있어보지만 우리가 시내버스를 타고 산북을 지날때까지 전화는 오지 않았다.
제비꽃님의 전화는 여전히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기계음만 흘러나온다.
결국, 제비꽃님은 우리가 동로에 내려 사과꽃밭을 지나 되미기재 입구로 가는 동안에 점촌에서 동로까지 거금의 택시비를 들이며
도화동 입구 소나무 아래서 만나게 되었다.
통화가 되고 택시기사님의 전화번호를 알게되고나서야 마음이 스르르 놓였다.
이런 돌발상황이 생기면 얼마나 마음을 졸이게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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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기사님께 부탁을 드려 다리 아랫길에서 내렸다.
정자가 있는 공터에서 준비운동을 할까 했지만 제비꽃님이 언제 오실지 몰라 마음이 급해져 내리자마자 출발.
저 멀리로 되미기재가 보인다.
이 때까지는 우리가 어떤 풍광을 만나게 될지 잘 몰랐다.
회원님들은 이만한 풍광에도 참 좋다~를 연발하셨지만 난 사과꽃이 보고 싶어 마음이 급했다.
오호라~내 짐작이 맞았다.
올해는 꽃이 늦어 이곳의 사과꽃이 남아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역시나였다.
우리가 흔히 먹는 사과지만 사과꽃을 보는것은 흔하지 않는 일이라 모두들 즐거워했다.
게다가 사과꽃 그늘 아래 가득한 민들레밭이 우리의 눈을 더욱 즐겁게 했다.
328년 된 소나무.
아직도 성성한 소나무를 모두 잡아내고 싶어 길 건너 멀리에 삼각대를 세우고 찍었다.
되미기재를 넘는 길은 땀깨나 흘리는 길이다.
고개를 넘어 막걸리도 한잔씩 하고 쉬다가 다시 두번째 고개인 저 멀리 보이는 말구리재를 향해 간다.
길도 사람도 훤~하다.
야생 두릅이 많았다.
모두들 그 재미에 자리 뜰줄을 모른다.
이제 끝물인 두릅이지만 제법 많은 양을 따와서 여러 사람이 나눠가졌다.
가좌리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는데 큰마을, 새터, 산막이다.
그 중 여기는 큰 마을.
작년 가을엔 이 곳을 지나다가 사과를 샀었다.
아직도 그 달콤함이 생각난다.
제법 너른 곳인데 후손들이 돌보지 않음인지 미나리아재비가 점령해버린 어느 무덤가.
조금 쓸쓸해보이네~
그래도 잡초가 아닌 꽃이 있어 나으려나~
말구리재 가는 길.
가좌삼거리부터 첫번째 과수원집을 지나 그 윗집까지 이렇게 길이 파헤쳐졌다.
2012년까지 가좌리-갈평 구간의 포장공사를 완료한다는 표지판이 있으니
지속적으로 많은 나무들이 베어질것이고 산과 길은 파헤쳐지리라.
단순히 여행자의 눈으로 본 불평일지 모르나, 이런 짓을 벌이는 사람들이 왜 그리 야속하고 한심한지...
가좌리도 인구가 적고 갈평도 그리 많은 인구가 아닌데 얼마나 차가 넘나든다고 이 좋은 길을 파헤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길이 아래 사진의 길과 같았다면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금새 알 것이다.
과수원집에 물이 있어 그 곳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었는데 보다시피 모두 파헤쳐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해서 조금 위로 올라와 점심을 든다.
과수원집 주인장을 만났다.
작년 가을 과수원집에서 점심을 먹고 가면서 메모와 더불어 쵸코렛과 사탕을 두고 갔었다.
드셨나고 물었더니 덕분에 잘 먹었다시며 고마워하신다.
작년에 모과를 좀 사고 싶었었다고 말씀드리자 잘 옮겨심어두었다며 가을에 오라시지만 다시 갈지는 의문이다.
이런 아름다운 길을 어찌 그리 불도저로 밀어버리는지...
봄 바람이 살랑 살랑, 봄 햇살도 적당히....
길에 서기 좋은 날씨였다.
이 아름드리 나무들이 조만간 베어지고 말겠지?
숲이 열리고 있다.
말구리재 정상.
나무가 울창하여 하늘재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내려가면 저 멀리로 하늘재가 보인다.
갈평마을 쉼터.
동네분들이 매우 잘 가꾸고 있음이 보이는 곳.
작년에 우리에게 사과를 주셨던 할머니를 기억하며 사탕 두 봉지를 사들고 갔었는데
그 집을 찾지 못하였다.
에고~
오랜만에 활짝 열려있는 하늘재 산장.
갈평삼거리부터 하늘재까지는 약 6km의 아스팔트 구간을 걸어야 한다.
먼 길을 걸어온데다 시간도 여유가 없고 좀 힘들게 걸어야 하는 구간이다.
작년엔 꼼짝없이 이 길을 모두 걷고 하늘재 구간을 깜깜한 시각에 걸었는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내가 마법을 좀 부렸다.ㅋㅋ
길가에 세워져 있는 트럭의 주인장을 찾아 11명이나 되는 인원을 하늘재까지 순간이동시켰다.
모두 그런 즐거운 추억꺼리를 갖게된걸 즐거워했다.
모두 즐거워하니 나도 즐겁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이 진심은 통하게끔 되어 있다.
진행방향도 아니고 길 건너편에 세워져 있는 트럭의 쥔장을 찾아 진심을 다해 부탁을 드렸다.
우리가 이러 이러한 사정이니 하늘재까지만 태워다 달라고...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이 내 진심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런 부탁에 대부분 거절당한적이 없다.
세상은 그래서 살아갈만한 것이다.
현재시각 오후 4시 54분.
5km를 순간이동 해 와서는 너무도 여유롭다.
꾸준한 오르막이고 오래 걸어 지친상태라 5km밖에 되지 않지만 1시간도 더 걸렸으리라~
백두대간의 하늘재.
이 아름다운 구간을 훤한 시각에 걷게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미륵리사지.
미륵리사지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우리를 하늘재까지 태워다주고 간 그 착한 영혼에 만복이 깃들기를 소원했다.
오후 6시경. 미륵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월악산에서부터 나오는 시내버스는 30분경에나 올 것이고
우리는 길다방에 들러 아이리쉬 커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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