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 2008년 4월 20일 / 내 좋은 사람들과.
코 스 : 임도길 18.8km + 아스팔트 1.7km, 약 20.5km
기차를 타는 일은 즐겁다.
가끔씩 KTX의 속도를 즐기지만, 느릿 느릿 작은 간이역에도 멈춰서는 무궁화호가 제일이다.
토요일 23km의 아스팔트 길이 다행스럽게도 내 다리에 아무런 불편을 만들지 않았다.
후에 들은 소리로 맛났다는 매운탕을 뒤로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음인지 별다른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가는 길은 지도를 보고 찾은 길이다.
새로운 길을 그것도 아주 좋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런 숲길을 간다는 설렘이 새벽부터 내 세포를 깨웠다.
전날의 긴 도보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가며 점심꺼리를 준비한다.
점심메뉴는 고추장 비빔밥.
후다다닥 날아가는 시간을 붙잡아가며 나물을 볶고, 무치고, 오이를 채썰고...
그나마, 전날 밤에 일찍 돌아와 고추장에 양념을 하여 미리 볶아놓았기에 시간을 좀 절약할 수 있었다.
그래도 뭐든지 바로 해야 맛난데~~~
집을 나서다 천원짜리 김밥 한 줄을 사면 될터인데 이런 요란을 떠는 것은 사먹는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내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들게 하고 싶어서이다.
오전 9시 기차. 이르지 않은 시각이라 느긋해서 좋다.
오랜만에 뵙는 정만님이 반갑다.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고, 역무원 한 명도 없는 정말 작은 간이역이다.
쓸쓸함이 도는 간이역 한 켠에 붉은 목련만이 무심하게 흐드러지고 있었다.
제법 큰 나무던데 오래도록 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터이지~
이 작은 역에도 한 때는 제법 손님이 많았던 때가 있었으려나~
조만간 저곳에 기차가 서지 않는 날이 올까봐 걱정이다.
그렇게 사라져간 작은 역들을 너무 많이 봐온 까닭이다.
감각을 통해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의식에 어떤식으로든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
사람을 순하게 만드는 길이다.
그 순함이 오래 오래 내 의식속에 자리하기를...
길은 길로 이어지고...우린 점 점 더 짙은 봄 빛 속으로 들어간다.
온통 봄으로 둘러진 마을.
눈 앞에 걸어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했지.
나는 더 많이 많이 행복해지고 싶다.
맑고 빛나는 것들. 그들을 만나는 기쁨을 오래 오래 누리며 살고 싶다.
햇살은 투명한 유령처럼 연둣빛 숲속으로 살금 살금 스며들어 그 속의 모든 것에 관여하고 있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의 모습이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내가 잠시나마 저들에게 방해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나도 저 길섶에 피고 지는 키낮은 제비꽃처럼 이 곳에 온전하게 속하고 싶다.
봄 햇살 속으로 깊이 깊이 걸어간다.
혹여, 어느 날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치미는 날이 있다면 오늘의 저 연둣빛 화사함과 이 길을 기억하리라~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 겸손을 지닌 길이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길.
아으~ 저 산 빛, 연둣빛 봄을 어쩔꺼나~~~
내 좋은 길동무들.
타인과 타인이 만나는 일은 빛과 같은 속도로 은하를 몇 개나 건너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소설가 윤대녕은 말했다.
그건, 우리 모두가 각자 하나의 우주이고 전체이기 때문이라고...
각자 저마다의 우주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아내기란 버거운 일이지만,
서로에게 기꺼이 내밀어지는 손이 있기에 우린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을것이다.
관계를 맺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로써 소통하게 되는 것.
산을 넘어가다가
무엇일까 그윽해라
조그만 제비꽃 - 마쓰오바쇼 -
걷다 뒤돌아보면
수줍게 고개숙인 할미꽃과,
노오란 양지꽃과,
보랏빛 제비꽃이 봄바람속에 종종종 따라온다.
연둣빛 물이 뚝뚝 떨어질듯한 숲 길.
자꾸 뒤로 멀어져가는 길이 너무나 아쉽다.
4시 반경 임도를 빠져나왔다.
1.7km정도 아스팔트 길을 걷다가 7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두 번으로 나뉘어 히치를 했고, 무사히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청량리로 돌아와 따뜻한 국밥에 소주 몇 잔씩을 하고 기분좋게 다음 길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
중간에 지도가 잘 못 되어 잠시 헛갈렸지만 다행히도 가고자 했던 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마지막에 임도를 빠져나오면서 산불감시원들에게 딱~!! 걸렸다.
배시시 웃고, 이름쓰고, 싸인하고, 사탕 4알 드리고 빠져나왔다. ^^
5월 25일까지는 오지 말라하시네~
산불방지기간이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꽃지는 밤에 다닌다고 했던가~
보름달이 휑한 달밤, 달빛을 가만 가만 밟으며 다시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
황금같은 일요일을 기꺼이 내어주신 분들에게 고맙다.
'길 위에 서다 > 길에 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걷기 여행 - 아름다운 5월의 첫 날, 정다운 이들과의 봄소풍 (0) | 2008.05.02 |
---|---|
걷기 여행 - 아침고요수목원과 수레넘어골 임도 (0) | 2008.04.29 |
걷기 15 - 꽃비 내리는 남한강변을 따라~ (0) | 2008.04.22 |
걷기 14 - 북악산 성곽 따라~ (0) | 2008.04.14 |
걷기 여행 - 북한강 따라 걷는 봄 길 25km (0) | 2008.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