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홀로 걷는 지리산 2 - 아~지리산! 그 길에 내가 있었다.

dreamykima 2008. 8. 10. 12:43

날 짜 : 2008년 8월 3일 ~ 4일 / 나홀로

코 스 : 성삼재 - 천왕봉 - 중산리 : 33.6km

 

대피소의 나무 침상이 딱딱하여 8시에 들어가 누웠음에도 쉬이 잠들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깊은 잠속에 빠졌던 것 같다.

간밤에 날씨가 좋아 천왕봉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 2~3시에 떠난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못 듣고 푹~잤으니 말이다.

 

수면안대에 담요까지 뒤집어쓰고 자다가 밖이 소란스러워 일어나보니 시간은 벌써 6시 18분.

대부분의 침상은 이미 깨끗하게 비워져 있고, 몇 명만이 아직까지 침상에 있다.

부지런한 산객들. 존경스럽다.

 

 8월 4일 아침 6시 36분.

 세석대피소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아침을 먹고 어제 만난 부부산객과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7시 45분 먼저 길을 나섰다.

 

 촛대봉에서 바라보는 운해.

 

 촛대봉에서 내려다보이는 거림지구?

 

 촛대봉에서 내려다보는 세석대피소와 세석평전의 모습.

 

 세석에서 장터목까지의 촛대봉과 연하봉을 지나는 구간은 경치가 제일 좋은 곳으로 꼽힌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도 청명하여 지리산의 모든 능선들이 한 눈에 보일 것으로 생각되니 무척이나 가슴설렌다.

 

 

 

 

 

 아름다운 길을 걸으면서 또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들 따뜻한 친절과 관심으로 홀로 걷고 있는 나를 격려 해 주셨다.

 

 오전 9시 17분.

 세석을 출발한지 1시간 30여분만에 장터목에 도착하였다.

 모두들 일출을 보려 서둘렀음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좋은 날씨에도 깨끗한 일출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으니 그만큼 어려운 일이리라~

 무슨 심보인지 일출을 보지 못했다는 말에 왜 그리 위안이 되던지...

 이런 심보로 이제까지 보지 못한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싶다. ㅋㅋ

 

 장터목에서는 식수만 채우고 곧바로 천왕봉을 향해 출발한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1.7km이고 예정소요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아침에 세석에서 식사를 하면서 12시까지는 천왕봉에 갈 수 있겠다 했는데 현재 상태로는 훨씬 이전에 도착할 수 있을 듯 싶다.

 

 제석봉과 고사목.

 

 고사목들이 드문 드문 남아 우리를 힐난하듯 바라보고 있지만, 제석봉의 식생은 이제 많이 복원된 듯 보인다.

 예전에는 울창한 나무숲이었다는것을 도무지 상상할수가 없는 곳이지만 자연은 묵묵하게 언젠가는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다만, 인간이 그들을 해하지만 않는다면...

 

 제석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북 능선들.

 

 10시 14분 통천문.

 이 문을 지나면서부터 내 자신이 스스로 대견해지고 있다.

  

 

 

 

 천왕봉에 무언가 구조물을 만드려는지 헬기가 몇 번이나 자재등을 실어나르고 있다.

 

 

  8월 4일 오전 10시 31분.

 드디어 천왕봉 표지석 앞에 서다.

 

 그 어떤 말도 필요없이 스스로 이겨낼 수 있었던 내 자신에게 많이 고마웠다.

 

 

 천왕봉에 몇 번이나 와 보았지만 이렇게 날이 좋았던 때가 있었나 싶다.

 저 곳에 서 계신 모든 님들~ 복 많이 받으시라~

 

 다시 장터목으로 되돌아가 백무동으로 하산을 할까 생각해보았으나, 중산리쪽으로 한번도 하산해본적이 없어 그리로 가보기로 했다.

 

 중산리로 내려서면서 올려다본 하늘.

 사진의 왼쪽 하늘색 셔츠를 입은 아름다운 중년 여성 산객은 오는 도중 만나 사진을 찍어준 인연으로 내게 조심해서 내려가라며

 인사를 하신다.

 통성명도 없이 언젠가 좋은 길 위에서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자는 인사만 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지만 걷는 내내 얼마나 많은

 멋진 사람들을 만났던가~

 

 해발 1400m에 있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절집인 법계사.

 11시 11분 천왕봉을 출발하여 1시간만에 법계사에 도착하였다.

 천왕샘을 거쳐 법계사까지 내려오는 길은 무척이나 가팔라서 조심스러운 길이었다.

 

 이곳은 대웅보전이 아닌 극락보전이 있는곳이다.

 대웅보전과 극락보전의 차이조차 희미하게 알고 있는 나지만, 그 어떤 것을 떠나 해발 1400여m나 되는 높은 곳에 위치한

 예사롭지 않은 이 곳에서 할머니와 부모님의 건강을 기리고 왔다.

 

 12시 30분. 로타리 대피소.

 장터목을 지나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시던 분이 내가 도착하자 시원한 캔커피와 쵸코파이를 내미신다.

 꼭 그게 먹고 싶었던것은 아니었는데 그 친절함에 얼마나 맛나게 먹었는지...

 

 하산하며 올려다본 법계사.

 천왕봉에서는 그리 날씨가 좋았는데 구름이 산을 감싸고 있다.

 밑에는 날씨가 좋지만 아마도 천왕봉은 구름에 휩쌓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맑은 시간에 그 곳에 서 있었던 내가 얼마나 행운아였는지...

 

 8월 4일 오후 1시 59분. 중산리 매표소.

 천왕봉을 출발한지 2시간 48분만에 중산리에 도착하였다.

 

 1박 2일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묵묵히 지리산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비워내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채우기 위하여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 낼 것이다.

 

 지리산에 들어 행복하였다.

 그 길에 설 수 있어 행복하였다.

 묵묵하게 그 길을 걸었던것처럼 나는 내 앞에 있는 보이지 않는 하루 하루를 또한 그렇게 살아 낼 것이다.

 

 많은 조언과 응원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