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길에 서다

[20120714~15]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비동골 그리고 분천역

dreamykima 2012. 7. 19. 08:43

날 짜 : 2012년 7월 14~15 / with 오지 가족들

장 소 : 청옥산 자연휴양림 & 분천리

 

오랜만에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길에 만날 오지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많게는 1년 적게는 1~2달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더 반가울 듯 하다.

그럼에도 신기한것은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사람들같은 편안함이 오지 가족들 사이에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소하게 서로 불편한 일들도 있고, 마음 상하는 일들도 더러 있지만,

그럼에도 '오지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는 나간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세월이 벌써 13년째가 되어가고 있으니 그 흘러간 세월만큼 서로들 녹아들었겠지~

친구란 시간을 먹고 산다고 했다.

세월의 명암과 시간의 굴곡을 거치며 그렇게 함께 해 온 이들이 바로 친구라고...

 

가는 길에 부석사에 들러 갈 요량으로 8시 10분 기차를 탔다.

청옥산 자연휴양림이 오늘밤 묵을 숙소인데 산막에 침구가 없다하여 담요와 inner침낭을 챙겨두었지만

추위 많이 타는 나는 오리털 침낭을 들고 가야하는게 아닐까 생각하던차에 ridge님께서 여분 침낭을 들고 오시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부탁드리지 않았는데도 미리 챙겨주시는 ridge님이 감사했다.

다음 날 일어났을때 생각한건데, 여분의 침낭이 아니었다면 난 추위에 떨며 한숨도 못 잤을꺼라는데에 에누리없는 1표.

겉모습과는 달리 통나무 산막은 전기도 가스도 없는 그야말로 대피소 분위기였다.

바닥의 냉기가 얼마나 차던지...침낭 속에서 따뜻하게 잔 듯 한데도 감기 들어 온 것 같다. 에효~

 

 

가리비와 키조개 구이, LA갈비, 닭볶음탕

그리고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안주삼아 돌려지는 술잔들과 그 속의 수다.

 

아~오지가 좋다.

사람이 좋다. 

 

 

우리가 묵었던 산막 앞.

청옥산자연휴양림의 산막은 오래전 우리가 묵었던 휴양관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으레 있으리라 기대한 침구도 하나 없고, 전기며 가스 등의 기본 시설도 없으며,

화장실도 밖에 있는 간이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구조였다.

 

오지 여행을 다닌 경험으로 여행길에 만나게 되는 불편함들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경험했던 휴양림의 편한 시설들에 비해 편하지는 않았다.

 

 

 

잠결에도 빗소리가 하도 커서 비가 참 많이도 온다...이러고 잤는데

일어나 보니 비도 많이 왔지만 골마다 물이 불어 흘러가는 소리였던가 싶다. 

 

 

 

비동 2교 앞.

잠들면서 비가 저리 내리면 비동골 들어가는 길이 사라질텐데~ 걱정했는데 역시나~

 

새벽 분천역에 내려 역에서 비동골 김초시댁까지 걸어갔었다.

보름이 이틀 지난 뒤라 아직도 둥그런 달빛이 하도 훤해서 들고간 램프가 필요없었던 것 같다.

 

그게 2002년 3월 1일이었다.

여행의 기억이란 회로가 하나쯤 더 붙어있는 듯 싶은 내 머릿속은 아직도 그 날 일들이 생생하여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길들이 머릿속에 훤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지난 여행에 대한 내 기억들에 대해 많이 놀라워한다.

하긴...나도 가끔씩은 너무나도 생생한 내 기억들에 많이 놀라곤 하니까....

 

어떻게 그걸 기억하느냐~고 묻는데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정말 그냥....기억이 난다.

굳이 기억하려 애쓰는게 아닌데도 말이다.

아마도 너무도 행복했던 기억들이라 잊혀지지 않고 내 안에 들어 있는 것이겠지~

언제든 쉽게 꺼내볼 수 있도록 말이다.

 

낙동강

 

2002년 그 날도 김초시댁에서 아침을 먹고 그 뒷산인 배바위산을 넘어 각금마을로 넘어갔었지~

각금마을은 오래전에 비어버린 동네였다.

교통편이라곤 기차밖에 닿지 않는 고립된 산속마을이었으니 떠나는 사람들을 어찌 잡을 수 있었을까~

 

그 때, 우리도 각금마을을 나와 낙동강을 따라 놓인 철길을 걸어 그 마을을 빠져나왔었다.

그 때의 낙동강이 얼마나 시리도록 맑았었는지 아직도 눈에 훤하다~

 

앞 뒤로 무전 연락을 하면서 간간이 지나다니는 화물 열차를 피해 기차 터널 속을 얼마나 뛰었던지...

아직도 그 터널 속 자갈밭을 뛰던 기억들이 너무도 생생하다.

 

 

난간들이 부식되어 군데 군데 꺾여진 비동 1교.

혹여나~걱정되어 차량 3대가 한 번에 건너가지 못하고 1대씩 천천히 건너갔다.

저 다리 언제까지 버틸까 싶다.

 

 

분천역 근처 분천2리로 나와 마을 정자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길 위에서 먹는 라면은 항상 맛나다.

빗속의 부침개도 항상 맛나다.

부침개와 어울린 막걸리도 항상 맛나다.

(현동 막걸리는 그야말로 조미료 들어가지 않은 옛날 맛 그대로란다.) 

 

무엇보다 맛난 것은 함께 먹는 것이다.

 

 

10여년만에 다시 가 본 분천역.

 

 

분천역

 

 

석포에서 황산을 싣고 나오는 화물열차와 강릉으로 가는 여객열차

 

 

근대사의 한 부분. 적산가옥.

분천역 앞에 있다.

 

 

아마도 분천역 문서고 대문이었겠지~

폐기되지 않고 쓰임새가 있으니 나름 행복하겠구나~ ^^ 

 

 

아~ 모두들 8월에 만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