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길에 서다

[20130323] 속도전에 밀린 간이역들을 찾아가다.

dreamykima 2013. 3. 25. 18:52

날 짜 : 2013년 3월 23일 토요일 with 내 좋은 친구들.

코 스 : 양동역 - 매곡역 - 구둔역 - 무왕2리 : 약 19km

 

요즈음 내 신경이 잘 조율된 기타줄처럼 팽팽하게 곤두 서 있었다.
사람과 사람, 그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피상적일 수 있는지 다시금 깨우치는 계기가 있었고,
나는 내가 나이가 들면 좀 더 성숙되고 많이 현명해질 줄 알았지만,

날 비난하는 시선에 울~컥 미움이 앞서는 미성숙된 사고에 여전히 머물러 있음을 다시금 알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
너는 싸가지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있다.
나는 그 말이 이해가 안가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 사람이 말하는 '싸가지' 가 무엇을 의미하나~?
또한, 없던 싸가지가 갑자기 있는 싸가지로 변할수도 있는 것일까~?
 
알고 지낸지는 한 5년쯤 되고, 따로이 만나 술잔을 기울이거나 사적인 연락을 하는 사이까지는 아니었으니
이런 저런 모임에서 얼굴 본게 지난 5년동안 한 스무여번 되었을라나~
그 동안, 그 사람과 마주앉아 몇분 이상 진중한 얘기를 해 본적도 없는 나는,

지금도 그 사람이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으며,

또한, 없던 싸가지가 갑자기 있는 싸가지로 변한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모르겠다.

 

누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은 그 사람이 '나'라는 사람을 잘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지 않았을까~하고...
물론, 그럴수도 있다.
모두들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려 들기 때문에 이 세상이 복잡해지는게 아니겠는가?
나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임을 감안하면 그것으로 불평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나란 사람이 헛점 투성이인데 부족하고 없는게 어디 네가지(?^^)뿐이겠는가?

어떤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어쨌든지 내 행동에서 비롯된 것일테고,
그 평가는 그 사람의 가치 기준에 따른 자유의지고 생각이므로 그것에 토를 달 생각도 전혀 없다.
타인의 생각까지 내 의도대로 맞추겠다고 하는 것은 내 욕심이고 오만 아니겠는가~?

그 순간에는 울~컥 했을지라도 말이다. ^^

 

다만 헛헛하고 상심한것은,

그동안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주선하는 모임에 참석을 하고, 앞에서는 웃으면서 내 이름을 부르곤 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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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 할 일이다.
잊어버려야지~하면서도 실제론 쉬이 버리지 못하고 담고 있던 상심을 일순간에 털어버리는 봄 소풍을 다녀왔다.

 

중앙선 철도복선화가 되면서 여러 간이역들이 폐역이 되고, 직선화된 새로운 철길을 따라 새 역사를 만들어 이전하였다.

역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구 역사가 폐역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구 역사가 사라진 역들이 판대, 매곡, 구둔, 석불 등의 간이역들이다.

이들은 기차 외에는 대중교통이 매우 불편한 지역에 위치 해 있었고, 구둔역을 제외한 다른 세개의 역은 무인역이었다.

구둔역조차 무인역은 아니었으나, 차표를 팔지 않는 그런 역이었다.

 

함께 한 시간의 두께가 가져다 준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장점과 단점까지 모두 아우르며 기꺼운 응원자가 되어주는 그런 친구들과 함께,  
어디선가 피어나고 있을 개나리 노오란 꽃숨을 물고 표표히 부는 봄 바람을 따라,
사브작~ 사브작~ 봄 길을 그렇게 걸었다.

 

요 며칠 '봄'같지 않은 차가운 꽃샘 바람에도 '봄'이 왔음을 잊지 않고 오종종 피어난 발밑의 노오란 꽃다지들이 반갑고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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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0일 사진>

중앙선 철도복선화가 되기 전에는 청량리에서 양동까지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제는 50여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9시 10분에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10시가 되기전에 양동역에 내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간식 꺼내어 놓고 시작한 수다를 십분지 일만큼도 못 꺼내놓았는데 내리란다. ^^

 

오랜만에 내린 양동역은 예전의 정겨운 '자그마한 역'의 자취는 오간데없고

썰렁하고 커다란 철제구조물이 우뚝 서서 우리를 반긴다.

  

양동역에서 나오자마자 우리는 맘씨 좋을 것 같은 한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가,

정체불명의 달달한 차도 한잔 얻어마시고,

까만 비닐봉지에 하나씩 넣어주신 보급품같은 빵과 우유도 얻고...^^

 

보아하니, 오늘이 양동 장날이라...

어느 교회에서 나와 한복을 곱게입은 교인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이것들을 나눠주고 계셨다.

 

오늘 하루 걷고자 했던 거리를 훨~씬 더 많이 걸어 어쩌면 모자랐을 간식을 덕분에 채우며 얼마나 즐거워했던지...

고맙습니다.~ㅎㅎ

오늘은 양동 장날이어요~

저 할머니께서는 어떤 장화를 사셨을까나~

나도 하나 사오고 싶었던 알록달록한 장화들.

우리는 단지 넷뿐인데...너네들은 단체소풍을 나왔니? ^^

 

 

발밑의 흙들은 봄 맞이를 하느라 버석거리고,

  봄 햇살은 나른하게 쏟아져 내리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길에 단지 우리뿐인것은

  공간의 낭비라는 탄식을 흘리면서(?ㅎㅎ)
  만나지 못하는 동안 남겨두었던 서로의 얘기를 풀어내느라 법석대고,
  서로 법석대느라 이어지지 않는 작은 단어 하나에도, 

  열 일곱 소녀들마냥 깔깔거리며, 

푸르디 푸른 하늘에 우리의 웃음소리가 봄 햇살을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닌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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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곡역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매월리 566-3번지

 

매곡역은 1968년 9월 1일 보통역으로 시작하여,

1972년 8월 28일 아래 사진에 있는 역사를 준공하여 사용했고, 

2008년 3월 10일 간이역으로 변경되었다.

 

역이 위치한 지역의 교통이 매우 불편하여(버스 교통 X) 여객열차가 정차하였고, 무인역으로 운영되었다.

중앙선 복선전철화에 따라 2012년 8월 16일부터 이전하여 영업 중이다.

새로운 역사는 이곳에서 약 1km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40년이 된 구 매곡역사.

 

사라지는 것은 서.럽.다.

옆에 서 있는 자목련 한그루의 한쪽 가지도 떨어져 나가고...

조만간 철거될 것 같다.

 

 

 

<2008년 4월 20일 사진>

 

봄이면 이렇게, 작은 간이역의 지붕위로 붉은 자목련이 흐드러졌었는데...

누구는 이곳을 오가며 사랑을 하고, 누구는 이곳을 오가며 이별을 하기도 했겠지~

 

버스가 닿지 않는 이 작은 간이역은

지난 40여년 간,

떠나는 사람들의 설렘과

 남은 사람들의 한숨과

기다리는 사람들의 그리움과

돌아 온 사람들의 안도가

함께 얽힌 곳이었을게다.

 

물론, 번듯하고 깨끗한 새로운 역사가 생겨 좋을수도 있겠지만,

돈 벌러 나간 자식을 기다리느라~

유학나간 자식을 기다리느라~

이제나 저제나~하고 앉아서 기다리던 

길다란 나무 의자 위에 서린 그리움은 결코 흉내내지 못하는것이다.

 

새로운 매곡역은 또한 새로운 사람들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겠지~

  

덜컹거리며 수없이 오갔을 기차를 지켜내던 철로는 걷어내졌고, 저 길 끝의 터널도 막혀버렸다.

   

   어르신 한분께 여쭈었더니 시끄럽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다.

   그래도 새로운 역이 좀 멀어서 불편하시다고...

  

모든 일에는 이렇게 좋은것과 나쁜것이 혼재 해 있는거지~ 

그러니, 그 어떤 먹장구름이라도 그 윗쪽은 빛을 받고 있음을 잊으면 안된다.

저 의자는 이제 누가 앉아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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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둔역 :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 1336-2번지

 

1940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업무를 시작하여,  
1996년 1월 1일 차내취급역으로 지정되었고,
2006년 12월 4일 구둔역사가 등록문화재(제 296호)로 지정되었다.
  

 

새로운 구둔역사는 2012년 8월 16일자로 약 900여m떨어진 곳으로 이설되었고,

간이역으로 격하되면서 무인역이 되었다. 

 

몇년 전에 구둔역장님께 커피도 한잔 얻어마시고 온 적이 있었는데...

하긴, 그 때에도 구둔역에서는 차표를 팔지 않았었다.

 

등록문화재라는 특이성으로 인하여 이곳의 철로를 보존한 것으로 생각된다.

보이는 곳까지만 철로가 있고, 그 다음은 걷어내졌다. 

 

가운데 있는 나무는 소원나무란다. 

여러사람의 소원이 주렁 주렁 매달려 있는데,

대부분, 건강을 기원하는 글들과 시험에 붙게 해달라는 글들,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글들이다.

어디서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지 않을까~

 

 

 

 

구둔역 앞에 있는 나즈막한 작은 언덕위에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다.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이상하게 갈때마다 들러보고픈 충동을 느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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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으로 가는 버스시간을 체크 할 생각도 없이 부드러운 봄 바람이 늦은 오후 햇살을 싣고 지나가고 있는 길을 다시금 한들 한들 걷는다.

 

그렇게 한 2km걷다가 만난 무왕리 버스 정류장에서

6시 10분에 온다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한켠에 앉아 코펠과 버너부터 꺼내들었다.

현재 시각 5시 45분,

피곤할때는 커피 한잔이 최고야~를 외치며 따스한 커피 한잔씩을 끓여 마시니 6시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둘리며 미처 못다 떤(^^) 수다삼매경에 빠져본다.

시간이 6시 10분을 넘어 20분, 30분을 넘어간다.

에혀~정류장에 2013년 3월 1일자로 써붙인 버스시각이 무색하게 버스는 오지 않는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내일은 회사에 안가도 되는 일요일이얌~ ㅎㅎ

결국, 서녘의 해가 황혼의 호위를 받으며 산 너머로 사라지고 난 한참 뒤에야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6시 45분. 버스 시각이 정류장에 써붙인 것 말고 예전으로 다시 환원되었다네~

 

용문까지는 금새다.

따스한 봄 햇살 내리쬐던 낮과는 달리 밤 기온이 서늘하다.

후다닥 밥집을 찾아들어가 넷이 앉아서 따스한 국물에 맥주 한병과 소주 한병을 해치운다음,

8시 47분 전철을 타고 서울로 돌아와 하루 왼 종일 떨었던 수다가 못내 아쉬워 또 다시 왕십리역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하루가 너무 짧은 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