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 2013년 3월 30일
2013년 3월 29일 퇴근 후, 잽싸게 집으로 날아와 배낭을 꾸린다.
배낭을 꾸리고 있자니, 마음이 먼저 떠나, 향일암의 좁은 바위틈새문을 지나 상관음전의 동백나무 그늘을 떠돌고 있다.
주먹밥도 싸고, 작은 코펠과 버너도 챙기고, 커피와 차도 챙기고, 비상식량으로 빵과 비스켓도 하나씩 챙겨넣는다.
혹여나 싶어 어르신들 좋아하실 사탕과 쵸코렛도 챙겨넣었다.
크지도 않은 23리터 배낭에 먹을것만 잔뜩 싸는 이유는 섬에 들어가면 내 배가 고플때 식당이 눈앞에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밤기차를 타기 위한 준비로 얇은 담요 하나와 수면안대와 라텍스 귀마개를 챙긴다.
나중에 기차를 타니 아뿔싸~에어베개를 잊었다.
먼거리를 여행할때, 에어베개를 챙기면 의자에 앉아 허리 뒷쪽을 받칠수도 있고, 잠깐 졸때 베개로도 사용하고,
급하면 방석으로도 쓰는 등 아주 유용하게 쓴다.
제법 서늘한 밤공기를 맞으며 밤 9시 30분 집을 나선다.
22:45, 여수행 밤기차, 오늘은 오랜만에 그 기차를 탄다.
아직 10시도 안되었는데 저녁잠 많은 나는 연신 하품을 한다.
오늘은 기차에서 잠을 좀 잘 수 있으려나~
2년전, 친구와 둘이서 같은 코스로 금오도에 다녀온적이 있었다.
그 때는 비렁길을 걷지 않고 대부산 산행을 하고 왔었는데, 오래전에 가보았던 금오도의 길들이 비렁길 코스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 길이 어찌 변했는지 많이 궁금해서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선뜻 시간을 못내다가 맘을 굳게 먹고 두어달전부터 계획을 세웠다.
저어기 남쪽 바다 어딘가는 벚꽃이 흐드러지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고, 지리산 아랫마을에선 노오란 산수유가 피었다더라~
영취산의 진달래는 온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하고, 내가 가는 길에도 붉은 동백이 투둑 투둑 지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니
꽃도 보고, 일출도 보고, 비렁길도 걷는 아주 아주 야무진(?^^) 계획이 아니련가~? ^^
무궁화호 밤기차는 여전히 시끄럽다.
KTX는 정류장이 적어서인지 방송도 많이 자제하는듯한 느낌을 받는데 비해 무궁화호는 왼갖 방송을 다 해댄다.
정차하는 역과 문제가 있으면 누굴 찾으라는 정도만 방송을 하면 더 이상 할게 없겠고만...
떠들지 말라해도 떠들사람은 떠들고, 핸드폰 진동으로 바꾸라 해도 안바꾸는 사람은 아니 바꾼다.
굳이 그런것까지 시시콜콜히 방송을 하며 쉬이 높아지지 않는 의식 수준을 끄집어내고 싶은지...
결국, 수면안대와 귀마개, 담요까지 덮어쓰는 준비를 했음에도, 잠들려하면 방송을 해대는통에 쉬이 잠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깜빡 깜빡 졸았나보다.
용산에서 여수까지 이제는 거의 외우다시피한 정차역들을 중간 중간 건너뛴것을 생각하면...
3시 45분.
기차는 제시간에 여수역에 도착했다.
몇년 전, 새로 지은 여수역은 아직도 적응이 잘 안된다.
비몽사몽...잠을 깨기 위해 세수와 양치부터 한다.
향일암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4시 40분정도에 여수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시간이 느긋하다.
허걱~~미리 줄을 서야 하는것을...
한무리의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려 인솔자를 따라 이동하는 것을 보고 모두들 철도패키지 여행을 온 사람들이려니~했다.
게다가 새벽 기운이 이렇게 찬데 안에서 기다려야지~하는 단순한 생각만 했다.
덕분에, 정류장엔 버스를 타기 위한 줄이 이미 길~~게 늘어섰고, 우리는 그 구불구불하고, 스릴 넘치는 길을 서서 갈수밖에 없었다.ㅠㅠ
하긴, 이맘때쯤이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 누군가는 서서 가야 하는 길이지~
그래도, 이 버스를 타고 서서 가는건 권하고 싶지 않은일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 새벽 버스는 스릴이 넘친다.
혹여나, 멀미를 하시는 분들은 가급적 그 차를 타지 마시라~
또한, 평소에 멀미를 하시지 않는 분들이라도 그 차를 타기전에는 무언가 드시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향일암으로 가는 도로가 구불구불하기도 하지만 버스 기사님들도 상당히 터프한 운전을 하신다.
아마도 기사님들은 매일 운전하는 길인지라 1년에 한두번 버스를 타는 우리와는 다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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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년만에 오는 향일암은 대웅전 불사가 마무리지어졌다.
매번 새벽 예불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게 아쉽다.
향일암 부처님께...저 왔어요~하고 삼배를 올리고 나왔다.
근데, 설마 이 대웅전에도 금단청을 입히는것은 아니겠지~
<향일암 대웅전(원통보전)>
작은 사진은 금단청을 입힌 2009년 3월 15일 사진인데, 2009년 12월 20일 불이 나 전소되었다.
큰 사진은 2011년 4월 9일 사진으로 임시로 지은 대웅전이다.
이제는 향일암이 작고 소박한 절집이 되길 빈다.
아~봄날의 새벽달~!!
현재 시각 06:00, 곧바로 금오산을 향해 오른다.
달이 저리 휑한데, 설마 일출을 보지 못할까~?
일출을 기다리며 간단히 요기를 한다.
나뿐아니라 모두들 배낭에 먹을꺼리들만 싸 오신 듯 하다.
약밥에, 호두파이, 삶은 달걀, 각종 과일, 각자의 배낭에서 나오는 여러종류의 빵들~
난 주먹밥 도시락도 쌌는데 김밥은 왜 사들고 왔을까~
적재적소에 식당이 없으니 도시락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고는 음식이 모자랄까 걱정했더니,
오히려 넘쳐서 다들 배낭을 먼저 비우기 위해 경쟁해야 할 정도라니~ㅋㅋ
모두들 자신의 먹을것뿐 아니라 동행하는 서로의 것을 챙겼기 때문이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하루왼종일 배가 든든하였다.
바다에서 곧바로 올라오는 일출은 아니지만, 해무속에서 올라오는 빨간 해는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와서 일출을 보지 못한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상황은 그 때 그 때 달랐지만 어쨌든 해를 볼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금오산
금오산에서 일출을 본 후,
늘어진 산벚꽃잎 사이로 자유로이 옮겨다니는 새벽 봄바람을 맞으며 바닷가 길을 따라 걷는다.
갈림길 초입에 산악회 리본들은 달려 있지만, 아는 사람만 다니는 그런 길인 듯 하다.
나도 어쩌다 운이 좋아 발견했던 길인데, 금오산을 에두르며 나 있는 이 길의 호젓함이 참말로 좋다.
지금 벼랑끝에 서 있는것 같으신가?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끝없는 절망이 보였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니 탁 트인 세상이 보이더라~했다.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아가시라~
그러다보면 아래와 같은 사진의 하늘도 만나게 된다. ^^
<언젠가 고대산 산행 후, 계곡에서 올려다 본 하늘이 이랬다.
지금도 여전한지 확인하러 가야지~하면서 못가봤네~
지금은 사뭇 다르겠지~나뭇가지들이 많이 자라났을테니까>
청아하게 퍼지는 작은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제비꽃, 중의무릇, 산자고, 광대나물, 광대수염 등 키낮은 들꽃들과 친구하며,
놀며 쉬며 그렇게 두어시간을 걸으면 성두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새벽 조업을 나갔다가 숭어를 잡아오셨다.
어망에 아직 들어있는것은 갑오징어다.
맛나겠다. 쩝쩝~
이런 저런걸 여쭈고 싶었지만 방해될까 싶어 사탕만 몇개 드리고 돌아섰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 입구에 자릴 펴고 앉아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불을 피워 차를 끓인다.
해가 뜨고 두어시간을 걸었기에 춥지는 않았으나,
요깃거리들이 그다지 따뜻하지 않으니 따스한 차 한잔이 참 좋다.
시내버스가 온다.
이곳이 종점인지라
시계를 보니 아직 떠날 시간이 10여분 이상 남았다.
느긋하게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어라~버스가 금새 되돌아나온다.
급하게 짐을 꾸려 버스에 올라타니
기사님 왈,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지 않았다고 면박을 주신다.
(정류장은 우리가 있던 곳에서 약 50여m 뒤에 있다.)
허~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버스 출발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마음대로 먼저 출발하는 사람이 누군인데....
기사님~버스 출발 시간이 몇시잖아요~화가나서 한마디 했더니, 아무말 안하시네~
근데, 그 기사님 정말 고약하시더라~
시골에서는 많은 짐을 갖고 버스에 타는게 다반사인데,
좌석버스라 좁다고 뒷차 타라고 휑하니 출발 해 버리시네~
그런일 당하고도 아무 말씀 안하시는 시골 어르신들~도 닦으신거다.
그 때는 그냥 넘겼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어휴~생각할수록 내가 다 분하네~
성두마을에서 신기항까지는 버스로 10분이 채 안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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