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 2013년 4월 20일 토요일
코 스 : 원주 부론면의 어느 길들 약 17km
가끔 생각한다.
나는 지금 뛰어야하지 않을까~?
지금 뛰어가지 않으면 저 앞에 어른거리는 특별한 행운이나 그 어떤 풍요로운 것을 얻지 못할까 싶어...
다른 모든이들은 뛰어가는데 나홀로 걸어가고 있는 이 느낌...그래서 다른이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조급증에 시달리곤 한다.
물론, 대부분의 나는 그럴때 뛰지도 않는다.(갑자기 궁금해지네~ 나는 뛰지 않는걸까? 뛰지 못하는걸까?)
암튼, 그러고는 슬그머니 변명 한자락으로 나를 위로하곤 한다.
'지금으로도 충분하잖아~?'
그러나, 충분하노라고~슬그머니 변명지워진 말이, 실은, 결심만 있고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자의 변명임을...,
그래....그것이 비겁한 변명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내듯 그 때 뛰지 않았음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
또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나를 세워 여전히 '보다 나은'을 꿈꾸는 이중성을 지녔다.
지난 시간에 무엇을 하지 못했나~후회하는 시간에,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속에서 내가 후회할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살라고 했건만,
나같은 우매한 중생은 여전히 지난 시간을 곱씹고 되새김질하며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 좌절한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아니...옳고 그름의 그 가치조차 나이가 더해질수록 모호해져가는 상대적 개념으로 변해간다.
그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것일까~?
또한, 내가 꿈꾸는 '보다 나은'이란 무엇일까?
솔직히, 그 '보다 나은'이란, 대개 정신적 풍요보다는 물질적 풍요를 의미할때가 많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까지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모순적이지만, 내가 느끼는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고민스럽고, 여전히 명확한 답을 알 수 없어 답답한 화두다.
시시각각 나이가 더해지면 시시각각 현명함도 늘어가야 하는건데,
어째, 예전엔 명확했던 가치들마저 상대적 개념들로 변해가고, 수많은 해답들은 점점 더 모호해져가기만 한다.
이것은 철이 든다고 해야할까?
아님, 비겁해져간다고 해야할까?
오래전에 이렇게 썼었다.
조금 느리고 조금 앞서가지 못해도 내 마음속에서 풍요와 진정한 자유를 찾으면 안될까?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시간들, 계절들을 아주 천천히 주의깊게 오감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고...
그러면서 지난 토요일이 절기상 '곡우'인지도 몰랐네~
이런~ 언행불일치한 가엾은 삶이여~
날짜가 이리 가는줄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면서, 요즘 어디 어디에 꽃이 피었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가끔 내 안테나는 너무 한곳으로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럴때 내 안테나의 몰입도는 최고인데, 문제는 그럼으로 인해 다른 필요한 전파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오죽 좋았으련만...울 부모님께서 통탄하실 일이지~ㅋ~
불행하게도 내 안테나의 촉수는 학문적 지식에 목마르기보다 잡다한 것들을 향해 뻗어나갔던 것 같다.
그것도 실은 쭉~쭉~뻗어나간게 아니고, 그저 살짝 살짝 발만 걸치는 식으로다...
무엇이었든지 쭉~쭉~뻗어 나갔다면 지금쯤 그 분야에서는 한자락쯤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에혀~이것도 후회네~
어디 삶의 한구석쯤엔 후회하지 않을 일도 만들고 살아가야지 않겠니~?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난 토요일 봄비속의 도보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
내 정신과 신체가 합일하여 그 길위에 서 있음을 반기는 것 같았거든~(나는 예전에도 그랬고, 아직도 여전히 비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다녀와서 그날이 '곡우'임을 알았을때는 아~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4절기 중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는 일년 중 모심기에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날이란다.
'곡식穀'에 '비雨'를 쓰니 한자만 봐도 그 의미를 알겠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고 하여 이맘때에 가뭄이 들면 그해 농사짓기가 어려워진다고 했다.
걷기에 힘은 들었으나, 비가 와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오히려 비가 와서 더욱 멋진 길이었던듯도 싶다.
연초록 이파리들을 품어내고 있는 나무들과, 발밑의 작은 풀들은 더욱 더 싱싱하게 살아 신선한 에너지가 차고 넘쳤고,
빗속에서 더 맑고 밝게 빛나던 분홍빛 진달래가 계절의 흐름을 증언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걷는 우리도 눈이 시원하였다.
그런데, 곡우가 지나면 절기상 여름으로 접어드는건데...벌써~~???
내가 느끼는 여름은 아직 멀었는데...나는 아직 봄꽃들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나는 소백산의 철쭉과 태백산의 철쭉이 피어나야 여름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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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09:49
섬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는 지점에서 우리의 도보는 시작되었다.
흥원창이 있던 곳이라 하네~
강원도 원주시 법천리에 위치한 흥원창은 고려·조선 시대 조창(漕倉)의 하나로,
원주·평창·영월·정선·횡성·강릉·삼척·울진·평해 지역의 세곡(국가가 징수한 곡물)을 보관하고,
이를 다시 한강수로를 이용하여 서울의 경창(京倉)으로 운송하기 위해 설치했던 창고였다고 한다.
저전거 도로를 만들어 정비되어진 모습.
4대강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답해주겠지~
부디~그들이 말하는 좋은 결과가 나와 역사와 후대에 죄를 짓는 사람이 없기를 빌뿐이다.
바람은 없고 조곤 조곤 봄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종일 우산을 들고 있던 어깨가 조금 뻐근하긴 했으나, 걷기에는 좋은 날씨였던 듯 싶다.
인원이 36명이나 되니 이그룹~ 저그룹~
도란 도란 무슨 사연들이 켜켜이 쌓이고 있을까나~?
우리가 걸었던 저 길에는 서른하고도 여섯명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쌓였을게다.
이야기가 쌓이지 않는 길이 있을까?
사람이 서지 않는 길은 그 존재의 의미가 없을것이고,
누군가 그 길위에 서 있다면 그의 사연이 그 길위에도 쌓여가는 것일게다.
모두가 한쪽으로 갈 때, 삐딱선 타고 다른 길을 택하는 사람 꼭 있다.
삐딱선을 탔더니 이런 풍광을 만났네~ㅎㅎ
사람도 길도 이쁘다.
흔하게 채이는 발밑의 이 녀석들도 이쁘고~
무려 광학 10배줌이라는 내 똑딱이 카메라의 줌 기능이 망가져
제맘대로 왔다리 갔다리 하는 중에도 생각보다 잘 나왔네~ ^^
인내심을 시험하듯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마음을 열두번도 더 들게 했었지만...ㅎㅎ
나는 오른쪽 밭둑을 따라서 걸었다.
저 현관옆에 외로이 서 있는 가문비나무는 어쩌면 1회 졸업생들이 심었을지도 모른다.
50여년동안 수 많은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영글어가던 곳이었겠지~
내 어릴적 학교에도 있었던 동상들.
그 의미야 어떻든 어린 시절 내 추억속에 남아있는 동상들은 그저 정겹기만 하다.
아름답고 정다운 어린시절의 추억까지 이데올로기의 색깔을 입혀 추락시킬 필요는 없는 듯 하다.
anyway, 너른 현관 덕분에 비를 피하여 점심을 들 수 있었다.
삼겹살, 주꾸미볶음, 각종 쌈채소들, 그 많던 음식은 도대체 뉘 배로 들어갔을꼬~
아~그나저나 지금 그 음식들이 눈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은 무슨 조화람~~~
도보 종료 후, 트랭글GPS 궤적을 확인해보니 소모된 칼로리 839.1kcal
하지만, 누군가 그러더군~ 먹은것은 1800kcal얌~
아~괴롭지만 그 말이 백번 천번 맞다. ㅠㅠ
현재 시각 오후 12시 34분.
맛난 밥도 먹었겠다. 다시 추~울발~!!
점심 먹은곳이 6km지점이었다.
이슬비 내리는 봄날의 숲속, 우산 둘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
주황색 우산에 노란 바지에 노란색 운동화까지...얼마나 화사하시던지~
삐죽 삐죽 나오고 있는 연초록 작은 새싹들이 얼마나 예쁜 날이었는지...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
부디~풍년드시길...
현재시각 오후 1시 52분.
원주 '거돈사지'터다.
약 10km지점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사적 제 168호
이 절터는 현재 남아있는 3층석탑(보물 제 750호)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1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이 절터에는 높은 축대 위에 중문을 세운 자리가 있으며, 그 뒤로 3층석탑과 금당터, 강당터가 남아 있다.
금당은 절의 중심건물로, 규모가 전면 6칸, 측면 5칸으로 되어 있다.
이 안에는 2m정도 높이의 화강암으로 만든, 부처님을 모시던 불대좌가 있다. 금당의 오른쪽과 뒤로는 석축을 쌓고 건물을 지었던 흔적이 있으며, 우물터도 발견할 수 있다.
절 뒤편 언덕 위에 지금은 경복궁에 옮겨져 있는 원공국사 승묘탑이 있었던 자리가 있다. 원공국사 승묘탑비는 절의 오른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왼쪽에는 이 절에서 나온 각종 석재를 모아 놓았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전한다. 절터 아래 옛 정산분교 자리에 있는 완성되지 않은 거대한 당간지주를 보면 이 절의 규모가 짐작된다.
- 석탑앞에 있는 거돈사지 설명을 옮겨 적었다.-
법천사지터 앞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수많은 옹이들을 보니 참 많이도 아팠나보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보이면 활짝 웃어주자~
법천사지터에 있는 지광국사탑비
보라색 옷을 입으신 분은 관리인이신듯한데,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셔서 잘 듣고 왔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진리이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
비가 와서 오히려 더 수채화같은 느낌이 드는 길이었던 듯 싶다.
도보 종료지점, 현재시각 오후 4시 25분.
법천천을 따라 걷다가 법천소공원에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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