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길에 서다

[20130517~18]1박 4일의 자은도, 암태도 섬여행 : 여행~그냥 떠나면 된다. 2

dreamykima 2013. 5. 27. 08:29

날 짜 : 2013년 5월 17~18일

장 소 : 전남 신안군 자은도 & 암태도

교 통 : 팔금도 백계항 오후 5시 -> 목포 여객선터미널 오후 6시 30분 착 : 4,900원

          목포 발 KTX 21:10 -> 용산 착 00:32 (19일)

 

간밤에 맥주라도 한잔 하려고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보았으나, 민박집이 아닌지라 무척 조심스럽다.

시골 어르신들은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데, 우리가 묵게 된 집의 아주머니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 흔하게 보는 드라마도 보지 않으시고 일찍 잠자리에 드시더니 다음날 새벽 4시 반도 채 되지 않는 시각에 일어나 교회에 가시더라~ ^^

 

덕분에 우리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피곤한데도 잠이 쉬이 오지 않고 뒤척인 것 같았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 보다.  

 

자은도 서쪽 끝에 있는 새벽의 분계해수욕장.

우리가 묵었던 집에서 400여m만 걸으면 이곳이다.

동행들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고, 나는 어차피 깨어난 잠에 산책을 나서본다

텐트 3동이 있었는데 아직 철 이른 조용한 해수욕장에서의 캠핑도 좋을 듯했다.

아주머니댁 처마밑에 있던 제비집과 그 집에 사는 제비들.

 

제비를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나 하시는가?

요즘 초등학생들은 제비라는 새가 실제로 있다는걸 아는지나 모르겠다.

혹시, '흥부전'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새이려니~하는 것은 아닐까?

나 어릴때는 흔하게 보던 새였는데 요즘은 보기 힘든 새가 되었다.

그 많던 제비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제비는 봄의 서막을 알리는 전령사였다.

모두들 제비가 보이면 아~봄이 오는구나~이렇게 생각했다.

 

제비는 주로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살아 인간과 가까운 새이기도 했다.

그에 관한 속담이나 관용구가 많은 것도 제비가 얼마나 인간과 가까운 새였던가를 말해준다.

 

내 어릴적 '지지배배' 소리는 시끄러운 소음이 되기도 했으나, 들을 수 없게 된 지금은 그리운 소리가 되었다.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여러 증거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첼 카슨 여사의 '침묵의 봄'은 어느 새 현실이 된 듯하다.

 

지지배배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

윙윙~거리며 나는 꿀벌들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

이 침묵의 끝에는 무엇이 있겠는가?

제비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환경오염이라고 한다.

생태전문가들에 의하면, 과다한 농약 사용으로 인해 제비의 주식인 곤충이 줄어들었고,

각종 환경호르몬의 직·간접적인 섭취로 수컷의 정자가 줄고 알의 부화율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인간과 가까이 살던 제비가 살 수 없는 환경은 인간에게도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한다.

환경전문가인 윤종길씨는 “제비가 돌아오면 국민의 수명이 4년은 연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예배에 다녀오시더니, 아주머니는 다시 그 꼭두새벽 6시에 일을 하러 가신다고 나서신다.

우리가 무에 그리 믿음직했던지 객들에게 집을 온통 내어주시고 일을 가시면서는 

밥솥에 있는 밥도 꺼내 챙겨먹고 가라 하시고, 휴가때 다시 와서 자고 가라신다.

아주머니는 일하러 가시는 집에서 아침을 드신다고 했다.

요즘처럼 햇볕이 강한 계절에는 농촌 일도 그 햇살을 피해 아침 일찍 시작된다.

 

덕분에 주인 없는 집에서 객들만이 라면을 끓여 간단한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서는 시각이 오전 7시 30분. 

 

낯선 객들을 기꺼이 재워주신 아주머니~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자은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너른 대파밭.

 

분계마을에서 첫 버스가 나가는 시각이 오전 7시경이다.

우린 버스 시각을 알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일부러 버스를 보냈다.

그리고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맡으며 걷고 또 걷는다.

 

자은도 남서쪽 해안에 있는 신성 해수욕장.

바닷가쪽으로 신성에서 백길쪽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나 찾았으나, 아쉽게도 없었다.

현재시각 오전 9시 11분

알바까지 해서 약 4km를 걷고 난 후, 신성리 마을로 나와 버스를 탔는데 우리가 온통 전세 낸 듯하다.

그다지 자주 다니지 않는 버스인데 우리가 신성마을 큰 길에 도착한 시간과 잘 맞아 얼마나 운이 좋은지~

분계에서 9시 10분에 출발한다던 버스가 좀 이르게 온 듯하다.

 

이 버스는 자은도 서쪽 해안마을들을 돌아 우리를 은암대교 가까이에 내려주었다.

이로써 우리는 걸어서 혹은 버스를 타고 자은도 섬을 한 바퀴 돌았다. ^^

  

버스 기사님은 어제 분계마을에서 우리의 숙소를 구해주신 분의 동생.

어제 들은 말도 있고, 얼굴이 닮은듯하여 물었더니 맞단다. ㅎㅎ

자은도 내만 도는 이 버스의 요금은 1,500원

은암대교 근처에 우릴 내려주신 친절한 기사님덕에 쉽게 은암대교를 넘는다.

위 사진에서 앞으로 보이는 산은 승봉산과 큰봉이고

아래의 사진에서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은 우리가 어제 걸었던 두봉산이다.

어제 두봉산에서 보았던 하얀 길을 걷는다.

이 길은 승봉산과 큰봉 사이로 나 있는데, 수곡리 지나 도창리로 넘어가게 된다.

도창리는 추포도로 넘어가는 길이 있고 그 앞에 너른 개펄과 염전등이 있는 곳이다.

 

원래는 승봉산 산행이 목적이었으나, 지도를 보더니 모두들 마음이 달라져 사진의 왼쪽 큰봉으로 길을 잡는다.

하긴 아침부터 숙소에서 버스타기전까지 4km, 버스 내려 이곳까지 또 4km를 걸어왔으니 제법 걸었다.

게다가 햇살도 점점 따가워지고 있고...

승봉산과 추포도쪽 바다를 내내 보며 걷는 길.

무서운 게 있어 혼자는 걷지 못할 길이었지만 든든한 동행들이 있어 즐거웠던 길.

(실제로 동행들은 무서운 걸 보았지만 나는 하늘이 보우하사 안봤다.)

큰 봉을 지나 바닷가쪽으로 내려서는 등로는 제법 뚜렷하다.

고개에서 큰봉 등로로 올라설때 옆에 수풀 무성한 임도가 하나 있었는데

산허리를 돌아 이길과 연결되는 것 같다.

임도를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마당바위와 노만사 표지판이 나온다.

마당바위와 그 곳에서 보이는 풍광.

북서쪽(아래 사진)으로는 자은도가 보이고 남서쪽(윗사진)으로는 추포도가 보인다.

 

오랜만에 바위에도 기어 올라가보고...

오늘도 저는 기분 무척 좋아요~~~ㅎㅎㅎ

마당바위 지나 오리바위로 가는 길목의 그린카펫같던 길.

 

 

오리바위. 앞에 붙은거는 뭐꼬? ㅋㅋ

노만(露滿)사 : 이 절은 약수가 있는 절로 유명하다. 

이름도 대웅전 뒷쪽에 있는 약수와 관계가 있다. 약수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하여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1873년 건립 이후 여러차례의 가뭄이 찾아왔으나, 이 약수는 한번도 마른 일이 없었다고 한다.

공공기관에서 세워놓은 관광표지판에 이렇게 써 있었다.

...노만사라는 절 이름이 약수가 떨어지면서 이슬같이 가득하다는데서 연유했다고 전한다... 이게 말이 되는건가? 허참~

이슬같은 약수가 떨어져 가득히 차고 넘친다....이런식의 표현이 맞지 않을까나~ ^^

실제로 약수터에 가보면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초록색 이끼를 타고 내려와 이끼끝에 이슬같이 맺히면서 한방울 두방울씩 떨어지고 있다.

물맛은 단맛이 나고 좋았다.  

모두들 시원하다~맛나다~하고 한모금 넘기는데만 정신이 팔려 물병에 가득 채워오지 못한것을, 나중에 주민분들에게서 그 물맛이 아주 효험이 있다는 소릴 듣고서야 후회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 ^^  

 

작은 사진속의 초록색 이끼를 타고 약수가 한방울 두방울씩 떨어진다.

노만사 앞에 있는 비스듬히 선 팽나무?와 왼쪽 바위에 붙어있는 송악

송악, 일명 담장나무라고 한다.

담장나무라는 이명이 더 잘 어울리네~

 

생각해보니, 고창 선운사 앞의 절벽에 붙어사는 이 나무를 본 기억이 있다.

이 나무가 같은 나무임을 구별 못했을 뿐.

 

송악은 두릅나무과의 사시사철 푸른 덩굴나무로,

남부지방의 바닷가나 산기슭에서 나무나 바위를 감고 올라가며 자란다고 한다.

기생식물처럼 나무에 붙어 기어오르지만 나무에겐 피해를 주지 않고 단지 지지만을 하며 산다고 하네~

100% 뺏어가서 고사시키지 않는다는 소리겠지~

나무와 함께 자라면 결국 그 나무로 갈 영양분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게 아닐까~

같은 생명이니 나누며 살아갑시다~

뭐~할 말은 없지만 지지대가 되어주는 나무 입장에선 좀 얄밉기도 하겠다~ ㅎㅎ

 

차라리 나를 고사시키는 녀석이라면 죽도록 미워라도 하겠지만,

너도 살고 나도 살자~그치만 나 니 옆에서 평생을 의지하며 살아야겠다~

이러면 얄밉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지 않을까나~ㅎㅎ

 

인간의 존재가 이 생태계의 한 축일 뿐이라는 작은 증명이 되지 않는가?

인간과 나무, 동물계와 식물계, 이렇게 전혀 다른 생물계에 속해 있음에도

결국,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일은 이렇게 비슷하니 말이다.

너무 단순한 생각인가? ^^

 

노만사 대웅전 올라가는 길, 돌계단에는 작은 풀꽃들이 피고 지고 있었다.

스님이 한 분 기거하신다고 들었는데 출타를 하셨는지 조용했다.

노만사에 대한 얘기를 더 듣고 오고 싶었는데...

노만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도창리와 추포도 사이의 개펄

추포도는 원래 두 개의 섬이었는데 간척으로 하나의 섬이 되었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에 섬으로 길게 뻗은 길이 하나 보이는데 2000년에 개통한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원래는 노두가 있었다고 한다.

돌멩이를 쌓아 길을 만든 바닷가의 노두는 썰물 때면 2.5km에 이르는 기다란 징검다리로,

오래전부터 추포리 주민들에게 전천후 바닷길 구실을 해왔는데,

 주민들은 미끄럼을 막기 위해 수 천 개가 넘는 돌멩이를 매년 한 번씩 뒤집어주었다고 한다.

 

나중에 개펄에서 만난 낙지를 잡으시던 어르신 말씀이 

이 포장도로 때문에 개펄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셔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없이 노두만 있을 때는 밀물일 때 양쪽으로 바닷물이 넘나들던 개펄이

이제는 시멘트 도로로 가로막혔으니 무언가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겠지~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는 너른 개펄.

고동도 많이 보이고 수많은 게들도 보이고...

제법 위협적인 집게발을 가졌다.

새들도 걷고, 사람도 걷고~

굴을 따시던 아주머니,

뒤로 보이는 섬이 둥구섬이라 했다. 사람은 살지 않는 무인도.

개펄에서 낙지를 잡으시던 어르신.

매일 나오는 것은 아닌데, 오랜만에 연휴를 맞아 아들과 손자들이 와서

낙지를 잡으러 나오셨다고 한다.

 

저렇게 바닷물에 씻어 그냥 쭉쭉~

에효~먹을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잔인하네~ ㅋㅋ

 

다리 힘이 좋아 혹여 식도에 걸릴까봐 조심 조심 먹었다는...^^

 

신안뻘낙지가 귀하고 값도 비싼것이라 들었는데

열 몇마리 잡으신중에 우리에게 선뜻 두마리나 내어주셔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덕분에 돈을 주고도 쉽게 구할수 없는 귀한 낙지도 먹어보았네~

도시에서 사먹는것과는 맛이 다르더라~ ^^

 

어르신은 낙지 머리도 그냥 먹어보라 하셨지만, 우리 넷중 누구도 그걸 그냥 먹을 엄두는 내지 못했다. ㅎㅎ

 

감사하다고 내내 건강하시라고 인사하고 떠나오는 길~

낙지 먹고 힘도 나고 신도 나고~ ㅎㅎ

현재시각 오후 3시 25분, 아쉽지만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할 시간. 

이 길 끝에서 추포로 들어가는 시내버스를 만나서 냉큼 올라탔다.

아~우리 시간 너무 잘 맞추는거 아냐~

의도하지도 않았고, 버스시각을 외우고 다닌것도 아닌데 말이다.

 

덕분에 추포도 구석 구석을 버스타고 한바퀴 유람 잘했다.

추포도를 나온 버스는 암태도 남쪽마을들을 한바퀴 돌더니 팔금도로 넘어가 우리를 백계선착장에 내려주었다.

 현재시각 오후 4시 32분.

잠시 후에 목포로 나가는 배가 올테지만

아까 못다먹은 낙지머리를 먹기 위해 선착장 정자에 앉아 머리를 넣고 라면을 끓인다.

사진에는 없지만 나중에 머리를 터트려 먹물이 흘러 나왔는데 까만색 국물맛이 아주 좋았다. ㅎㅎ

 

현재시각 오후 5시 11분.

백계선착장에서 5시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가는 길.

아쉽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자은도와 암태도는 그 이명의 이름처럼 우리에게 아름다운 1박 2일의 추억들을 심어주었다.

 

목포대교와 오른쪽으로 보이는 유달산.

조타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유달산.

현재시각 오후 6시 26분.

목포여객선터미널이다.

 

터미널을 나와 항동시장으로 가서 삼합과 장어탕으로 소주와 막거리를 곁들여 푸짐한 저녁을 먹고

경*와 나는 KTX로 다른 동행들은 버스를 타고 서울로 안전하게 돌아왔다.

돌아올곳이 있어야 또 다시 떠날 수 있는 것이겠지~

언제나처럼 돌아오는 길은 서운함과 안도감이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