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02년 1월 6일 덕유산
참여 : 은주, 경희, 진숙, 승미 그리고 나.
총 산행 거리 : 19.3km
- 삼공리 매표소 - 백련사 : 5.6km
- 백련사 - 향적봉 : 2.9km
- 향적봉 - 중봉 - 오수자굴 - 백련사 : 5.2km
- 백련사 - 삼공리 매표소 : 5.6km
총 산행 시간 : 약 9시간 (동 코스 일반적 산행 시간 약 7시간)
삼공리 매표소 출발 (am8:23) - 백련사(am10:10) - 휴식 - 백련사 출발(10:45) - 향적봉(pm12:40) - 점심과 사진촬영 - 향적봉 출발(pm2:00) - 산악인의 집 출발 (pm2:15) - 중봉(pm2:40) - 오수자굴(pm4:00) - 백련사 회귀(pm4:40) - 삼공리 버스정류장(pm5:45)
지난 밤에 새벽 2시 반이 넘어 잠들었지만,
오늘 산행의 리더로써 내가 먼저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때문인지 6시 30분 경 일어났다.
자는 사람들을 깨워가며 아침을 준비한끝에 가까스로 예정된 8시는 아니었지만,
우려했던 시간보다 더 늦지 않게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겨울의 덕유산은 예로부터 눈이 많은지라 삼공리 매표소를 출발해서는 온통 눈밭이었다.
출발 얼마 후부터 길이 심상치 않았다.
백련사까지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 눈이 녹아 미처 땅으로 스며들지를 못하고
그대로 찬 기운에 얼어붙어 꽁꽁 언 빙판길이 되어 있었다.
덕유산 휴게소를 지나 송어 양식장, 또 그곳을 지나 100여 미터 가다 보니
표지판이 백련사가 2.8km 남았음을 알린다.
매표소로부터 백련사까지의 거리가 총 5.6km니 딱 절반이다.
다들 무슨 생각에서인지 아이젠을 꺼내 신지 않고 조심 조심 가다 보니
10시가 막 넘어서야 백련사에 도착했다.
구천동 계곡은 온통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어 졸졸 계곡물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구천동 비경들이 눈과 얼음 아래 웅크리고 앉아 도무지 보여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깊은 겨울 사람 몇 없는 고즈넉한 산사는 하얀 눈과 녹색의 상록수. 그리고 그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색을 만들고 있던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우리를 반겨준다.
겨울의 산사는 눈 덮인 덕유산과 얼어버린 구천동 계곡 깊은 골짜기에 묻혀 숨죽여 동면하는 듯하다.
햇볕은 따스한데 바람 끝이 차서 귀를 떼어가 버리는 듯 하여 백련사 따스한 양지 녘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씩을 하고 아이젠을 착용한 후 백련사 오른쪽 향적봉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놈의 계단은 예나 지금이나 정말로 싫다는 느낌이 든다.
해발 1000m가 채 안 되는 백련사(990m)에서 1,614m의 향적봉까지 짧은 거리(2.9km)로 가파른 급경사 길을 치고 오르자니 숨이 턱 턱 막힌다.
게다가, 눈이 내리고 채 녹지 않아서 좌우 거리가 채 1m도 안되는, 어느 때는 채 50cm도 안되는 등산로만 다져있고 옆으로 10cm만 비켜서도 무릎까지는 족히 빠질 것 같다.
한 사람 걸어가면 족할 등산로는 조금이라도 너른 곳이 나오지 않으면 앞 사람을 묵묵히 따르는 수밖에 없고 마주 오는 사람을 비켜주기도 힘들다.
다들 힘들어 하면서도 한 발 한 발 올라간다.
시간이 한낮으로 향하고 힘들게 오르다 보니 땀도 나고 입었던 옷들을 허물 벗듯 하나씩 벗어나가며 오른다.
나는 아예 방풍 자켓과 폴라텍 자켓을 벗어 들고 난방에 폴라플리스 조끼로만 산행을 한다.
내가 앞에서면 힘이 덜 들겠으나, 그러면 일행들이 따라오지 못할 것 같아 후미에 따라 붙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오히려 내가 힘이 더 든다.
그래도 등산 스틱을 양손에 들고 힘을 분배해가며 올라가니 다리에 힘이 덜 쏠림을 느낀다.
스틱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올라가다 중간 중간 서서 되돌아 본 하늘과 산 능선들은 수 없는 감탄사만 토해내게 하는 경치를 이루어낸다.
말이 필요없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다.
오늘따라 햇볕이 너무 따스하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쪽빛이다.
희디 흰 눈과 대비되어 그 하늘이 더욱 짙게 보이는 듯 싶다.
가을의 청명한 하늘과는 또 다르게 겨울의 서늘한 기운때문인지 하늘은 차가워 보였지만 더욱 더 맑고 가깝게 보인다.
멀리 산 능선들 사이로 희끗한 눈들과 산 그림자,
하늘과 맞닿은 능선과 하늘 사이의 그 잠깐의 공간 속에 그려져 있는 미묘한 명암과 채도의 차이.....
힘겨웠지만 서로를 응원하며 오르고 또 올랐다.
12시면 정상에 도달하려니 했지만 중간에 쉬는 일이 많았고 또 쉬엄 쉬엄 올라서 그런지 12시 40분이 되어서야 향적봉(1614m)에 도달했다.
능선에 바람이 많으면 휴게소로 내려가리라 했으나 바람도 적고 햇볕도 따스하고 무엇보다 동서남북 사방 팔방으로 보이는 경치들이 너무나도 수려했기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아이젠을 벗어 던지고 등산화 끈을 느슨히 하니 발이 한결 가볍다.
사람 다섯에 보온병이 4개라 따뜻한 물이 넉넉하다.
간식들도 하나씩 꺼내어 입에 넣고 뜨뜻한 국물에 컵라면으로 요기를 했다.
커피까지 한 잔씩 마시고 나니 속도 든든하고 여유조차 생긴다.
산에 갈 때 달디 단 간식들을 준비하는 것은 그들 속에 들어있는 당분이 체력회복을 돕고 쥐가 나거나 근육경련을 다소 예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향적봉 바위 정상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북쪽 발 아래로는 무주리조트가 있어 스키 slope가 보인다.
몇 년 전 이 산을 찾았을 때는 리조트를 만드느라 멀쩡한 산을 파헤치고 묵직한 중장비들이 산 정상까지 올라 산을 짓누르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지나간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기심이지.
나 또한 이 산에 이렇게 서 있는 한 그 이기심에서 결코 비켜 갈 수 없음을........
서북쪽으로 적상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내가 저 능선들을 모두 다 짚을 수는 없었지만 집에 와서 지도를 찾아보니 북쪽으로 보이던 능선들은 적상산, 대덕산, 민주지산, 삼도봉 등이다.
동쪽은 수도산과 가야산이었을것이며, 동남쪽 멀리 황매산도 보였으리라.
남쪽으로는 덕유산 줄기인 중봉과 남덕유산을 지나 영취산, 백운산이 보였을 것이고,
서쪽으로는 성수산, 운장산 멀리 서북쪽으로 대둔산과 계룡산까지 보였으리.
또한, 서쪽으로 저기 발 아래로는 무주군 안성면의 작은 마을들과 논 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고봉들에 둘러 쌓인 그 곳이 참으로 살기 어려운 동네였을꺼라는 생각도 잠시, 높은 봉우리들 속에 우묵하게 눌러앉아 따스한 햇볕을 받고 있는 그곳이 왜 그리 평온해 보였는지........
수많은 능선들 사이의 백미는 단연코 북쪽에서 뻗어 내려오는 백두대간의 백미를 장식하는(순전히 내 생각) 지리산이었다.
덕유산에 와서 지도상으로도 한참을 내려가는 저 멀리의 지리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참으로 감동시켰다.
천왕봉(1915m)은 워낙에 높은 봉우리인지라(얼마 전, 히말라야 줄기를 다녀왔다는 내 인도친구는 웃겠지만) 이렇게 날씨가 맑고 시계가 좋은데도 구름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 놓지 않는 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천왕봉에서부터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움푹꺼진 저곳은 세석평전이겠지.
영신봉을 넘어 덕평봉 명선봉 지리산 서쪽으로 제일 높은 반야봉(1733m ?)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야봉 너머 뾰족한 꼭대기 하나는 노고단이리라.
내가 지리산 그 수많은 봉우리들을 하나 하나 짚을 수는 없었지만 장장 60여km가 되는 동서로 쭉 뻗은 지리산은 단연코 산중의 산이었다.
그 수많은 능선들 속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었나니.........
오!
지. 리. 산.
덕유산에 와서 지리산을 보고 애달어 하는 나를 보고 덕유산 산신령님은 노하지 않았으려나......? ㅋㅋ
이쪽 저쪽을 돌아가며 사진 촬영도 끝나고 덕유산 휴게소에 들러 생리현상도 해결을 하고 중봉으로 길을 잡았다.
주목들과 구상나무들의 군락지인 아고산대 지역이다.
눈이 내리지 않아 나뭇가지에 눈꽃은 없었으나 몇 몇 주목에서 추위와 바람에 미처 녹아 내리지 못하고 바람결에 따라 얼어붙은 상고대를 볼 수 있었다.
나뭇가지에는 눈이 없었으나 등산로에는 온통 눈이라 스패츠를 착용했다.
중봉(1594m)에 서니 지리산이 더 가깝다.
한참을 더 서서 바라보고 싶었으나 갈 길이 멀다.
하산을 재촉했다.
중봉에서부터 오수자굴까지의 하산길은 오를때처럼 가파른 급경사길이었다.
따스한 햇볕에 눈이 녹아 하산길은 더욱 더 미끄러웠다.
모두에게 조심할것을 지겹도록 잔소리를 해대가며 조심 조심 내려왔다.
오수자굴은 굴이라기보다 바위가 움푹 들어간 곳이다.
오수자라는 사람이 그곳에서 수도를 하다 득도를 했다해서 오수자굴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굴 안쪽에는 마치 석회물이 한방을 두방울 떨어져 땅위에서 기둥을 이른 종유석들처럼 바위 위쪽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작은 얼음기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진을 두어 컷 찍었으나 후레쉬가 터졌다해도 안쪽이 너무 어두워 제대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4시가 넘어가니 갈 길을 더욱 재촉한다.
오수자굴부터는 경사랄것이 없는 길이었다.
완만한 길을 제법 속도를 내며 내려왔다.
덕분에 오궁썰매를 타 볼 요량으로 가져갔던 비닐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
백련사에 내려오니 오후 4시 40분이다.
10시 45분 경 백련사를 출발했으니 원점 회귀 시간이 총 6시간 걸렸다.
시간을 아끼고 또한 가는 길이 빙판길이니 아이젠과 스패츠를 한 채로 길을 재촉했다.
어차피 서울 가는 막차는 놓쳤고 대전까지 가는 차가 있어야만 서울로 돌아가는데 약간은 불안하다.
덕유산 휴게소를 지나 매표소가 약 2km정도 남았을 때 운좋게도 다른 산악회의 봉고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다행히도 터미널에 도착하니 5시 45분경.
6시 10분에 떠나는 대전행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시간이 잘 맞아 영동에 8시에 도착해서 8시 32분 서울행 무궁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비록 사람 다섯에 좌석은 두 개였지만........
이번 산행은 나름대로 겨울산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겨울답지 않고, 높은 덕유산 답지 않게 날씨가 너무 좋고 시계가 좋아 주위 능선들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던 점을 산행의 최고로 꼽으련다.
그러나, 원래 인원 12명에서 다수가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지는 바람에 산행 시작부터 맥이 좀 빠졌고,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시작해서인지 더 힘이 들었던 산행이었던 듯 싶다.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예기치 않은 이탈 상황을 만들어 힘들게 산행을 해야 할 이들이 산행 시작도 전에 힘이 빠졌음을 배려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섭섭하여 찜찜함이 가시질 않는다.
산행을 계획한 리더로써 흐트러지는 계획을 바로잡지 못한 것에도 반성을 해 본다.
또한, 일반적인 조건 하에서 계산이 되었을 등산 시간을 눈이 많고 미끄러워 더욱 힘겨울 겨울산에 그대로 적용시켜 시간을 너무 tight하게 잡은 탓에 함께 한 일행들과 저녁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돌아온 것이 참으로 아쉽다.
다행히도 함께 했던 일행들이 힘든 내색을 하지 아니하고 다음 산행을 기약하니 마음이 즐겁다.
함께 한 친구들에게 다시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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