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04년 10월 3일 당일산행
산행지 : 치악산(비로봉 1,288m)
산행코스 : 행구동 매표소 - 보문사 - 비로봉 상원사 갈림길 - 곧은치 - 원통재 - 비로봉 - 사다리병창 - 구룡사 - 구룡사 매표소 : 약 13km
산행시간 : 6시간 30분(점심시간 15분과 정상에서 45분 휴식 포함)
혼자 하는 산행.
익숙하지 않은 코스에 망설임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많이 걸어보기로 했다.
제법 차가워진 새벽 공기에 옷깃을 여미며 새벽 6시 집을 나섰다.
동서울에서 7시 10분 원주행 버스를 타고 8시 반에 원주터미널 도착.
8시 50분 행구동 가는 81-1번 버스타고 국형사 입구에 9시 15분경 도착.
이른아침 버스에서 국형사까지 가는 동행을 만났다.
짧은 거리였지만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걸으니 금새 오른다.
9시 25분. 국형사.
국형사 왼쪽 능선을 타면 능선 안부까지 오르는 아는 사람(대개 동네사람들)만 다니는 길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가는 코스이기에 제코스로 가기로 한다.
국형사는 오래된 절집이라 했는데 새로 지은 건물이 많고, 새로이 공사중인데가 곳곳에 있어 정갈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다만, 소담한 대웅전이 오도커니 안쪽에 자리잡고 내려보고 있는것이 좋았다.
그 대웅전도 신도들의 불편함을 내세워(좁다는 이유로) 조만간 새로 지을 예정인 듯 싶었지만.......
다음에는 그냥 지나쳐도 좋을만한 절집이다.
행구동 매표소를 통과한 시간이 9시 35분이다.
향로봉까지 시간을 물으니 두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정말 조용하다.
나 말고는 산객이 없다.
보문사까지 오르는동안 딱 네사람을 보았는데 그들조차 산을 올라가지는 않을 모양인 듯 싶었다.
국형사에서 보문사 오르는 길은 포장된 급경사길이다.
산에서 이런 길을 만날때가 제일 난감하고 싫다.
힘들었지만 묵묵히 올랐다.
국형사보다는 보다 정갈한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여기도 공사중이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절에서는 잘 키우지 않는 커다란 개 한마리가 어찌나 짖어대는지 그게 싫어 둘러볼 생각도 않고 오른쪽 등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곳인가보다.
길은 있지만 표지기도 거의 없고 길도 자세히 보며 찾아가야 한다.
능선까지 오르는 빠른 등로인만큼 굉장히 가파르다.
조용하다.
무지 조용하다.
쌕쌕거리는 내 숨소리와 이름모를 새들의 움직임과 지저귐.
간혹 무언지 모를 작은 산짐승들의 움직이는 소리만이 온 산에 가득하다.
아직 단풍은 이르지만 참나무 군락 사이로 점점히 퍼져 들어오는 햇살이 가득하여 따사로운 기운이 돈다.
힘들지만 쉬지않고 끊임없이 걸었다.
능선 안부 도착까지 5~6명으로 구성된 한 팀을 만났을뿐 등산객을 만나지 못했다.
힘들어서 산객이 없는 길이라고 한다.
안부에서 자두하나 꺼내물고 오른쪽 등로를 오르기 시작한다.
여기도 가파르긴 매한가지다.
낑낑대고 비로봉과 상원사 갈림길까지 오르니 시간은 10시 50분.
매표소에선 향로봉까지 2시간 거리라고 했다.
상원사 쪽으로 0.6km만 가면 향로봉이니 조금은 빨리 온건가?
홀로 산행을 할때는 내 페이스대로 걸을 수 있어 생각보다 빨라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향로봉에 다녀와도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겠지만 어차피 '봉'에 오른다는 목적같은건 없는지라 바로 비로봉을 향하여 출발했다.
현재 고도 1,020m.
여기서 곧은치(860m)까지 완만하게 내려선 뒤에 원통재를 지나 비로봉(1,288m)까지 계속 오름길이다.
치악산 능선길은 작고 소담한 오솔길이었다.
길은 좋았지만 소백산처럼 능선에서 장쾌하게 뻗어나가는 산줄기를 보기엔 나무가 너무 많아 보는 재미는 없고 걷는 재미는 많은 길이다.
곧은치에 서니 부곡으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있다.
곧은치에 억새가 많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얌.
왼편으로 원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곧은치에서 원통재 가는 길은 무척 힘이 들었다.
오름길이 너무 힘들어 배도 채우고 쉴겸 등로에서 조금 벗어난 장소를 찾았으나 마땅치 않다.
간신히 장소를 찾아 점심으로 가져온 고구마와 과일을 먹고 살짝 얼려 온 물을 들이키니 무척 시원하다.
15분 가량 식사를 하고 쉬었다 다시 출발한다.
작은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많이 보이고 투구꽃처럼 생긴 하얀색의 야생화가 눈에 자주 뜨이는데 나중에 집에 와 찾아보니 '흰그늘돌쩌귀'란 이름을 가진 야생화이다.
보라색으로 작은 봉오리가 올망 졸망 퍼진 산부추도 많이 보인다.
봉오리가 하나 하나 피어나면 꽤 화려한 야생화이다.
드뎌 비로봉이 바로 보이는 헬기장에 섰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 온 능선이 역광을 받아 검은 실루엣을 이루고 서 있다.
비로봉 아래 계곡길로 내려서는 삼거리쯤 오니 사람들이 제법 많다.
비로봉 바로 아래 팍팍한 계단을 올라서니 비로봉 정상석을 중심으로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오후 1시 15분.
오전 9시 35분 행구동 매표소를 출발한지 4시간이 채 안되어 약 8km를 걸어 비로봉에 도착하였다.
비로봉에서 이쪽 저쪽 돌아가며 능선을 바라보고 섰으니 세상에 부러울게 없는 것 같다.
난 산 능선 능선이 걸쳐있는 장면을 무척 좋아한다.
치악산 남면을 바라보니 멀리 향로봉이 보인다.
걸어 온 능선을 가늠해본다.
혼자서 뿌듯해진다.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이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도무지 차례가 올 것 같지 않아 북서면 능선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부탁하고 두번째 돌탑앞에 앉았다.
배낭에서 얼려온 캔맥주를 꺼내니 다 녹은 듯 한데 무척 시원하다.
안주로 챙겨온 떡갈비와 머루포도를 꺼내놓고 맥주를 한모금 하니 그 기분을 어찌 말로 다하랴...
맥주는 원래 한캔을 다 마시지 못하고 누군가 옆사람을 따라주고 싶었지만 나처럼 홀로 온 사람이 없고 다들 일행이 있는지라 선뜻 따라주겠다는 말을 못하고 만다.
결국은 홀짝 홀짝 맥주 한캔을 다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30여분을 앉아 있어야 했다.
오후 2시.
원주에서 보고픈 사람이 있어 만날 약속을 했으므로 하산을 서둘렀다.
치악산에 올때마다 사다리병창길은 오르기만 한 길이었는데 오늘은 한 번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내려오면서 무지 잘못된 선택이란걸 알았다.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은 하산시에 결코 좋은 길이 아니다.
그래도 꾸준히 걸으니 세렴폭포 갈림길까지 1시간 15분여만에 내려왔다.
부지런히 걸어 구룡사를 지나 계곡 한 켠에서 잠시 쉬며 세족의 즐거움을 누렸다.
발이 살 것 같다는 표정이다.
세족의 즐거움까지 고루 누렸음에도 매표소 도착하니 오후 4시.
서울로 돌아가는 6시 42분 기차를 예매 해 놓았기에 원주역 앞에서 좋은 님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갑자기 급한 볼일이 있어 안산에 가셔야 한다고.....
나도 기차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버스를 타고 돌아가기로 한다.
4시 15분 41-1번 버스를 타고 터미널 도착하니 오후 5시.
만나기로 했던 분은 안산행 5시차를 타고 출발하면서 터미널로 가고 있는 나를 차 안에서 보았노라고 전화통화만 하였다.
아쉬웠지만 담에 다시 치악산을 찾을 때 뵙기로 했다.
5시 10분차를 타고 동서울에 도착하니 6시 50분이다.
차속에서 신나게 잤으므로 차가 밀렸는지 잘 모르지만 시간상 그다지 밀리지 않고 잘 돌아온 것 같다.
치악산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다.
시월 세째주쯤에 아마도 절정을 이룰 듯 싶었다.
오랜만에 많이 걸었다.
곧은치에서 비로봉까지 경사길을 힘들게 걸으면서 아마 인생도 이런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멈추어 있으면 그냥 그 자리지만 한 발자국이라도 걸으면 앞으로 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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