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소백산 산행기 3 - 처음으로 국망봉에 서다.

dreamykima 2006. 5. 7. 14:04

산행일 : 2005년 8월 21일

산행지 : 충북 단양 소백산

산행코스 : 천동리 - 비로봉 - 국망봉 - 비로봉 - 천동리 원점 회귀 : 19.8km 

산행인 : 경희, 소희, 나.

 

며칠 째 비가 내렸고 일요일엔 개인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산에가면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망할 일기예보 같으니.....

 

아침에 6시 59분 단양가는 버스(11,700)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갈때만 해도

'아! 서울 하늘도 이럴때가 있구나' 탄성이 나올 정도로 맑고 청명했다.

낮은 하얀 구름들과 그 사이로 빛나는 파란 하늘.

 

못 잔 잠을 보충하느라 열심히 자고 일어나니 북단양 톨게이트.

그 때까지만 해도 날은 괜찮았지만 웬지 서쪽으로 갈수록 회색빛 구름이 의뭉스럽다.

 

9시 18분. 단양 터미널.

다른 때는 9시 10분 정도면 도착하는데 오늘은 버스에 사람도 많고 시간도 더 걸렸다.

나중에 들으니 구인사에서 행사를 했다한다.

 

9시 42분. 다리안 들어가는 버스에 탑승(900원).

 

10시. 천동리 출발.

 

하늘이 온통 회색빛이다.

경희와 나야 이런 날씨가 산행하기엔 딱 좋지만 이쁜 경치를 보려 따라 온 소희에겐 아쉬움이 있을 듯 싶다.

 

요즈음 연일 계속되던 비에 계곡의 물이 제법 많고 물소리가 우렁차다.

야영장으로 가는 전나무 숲속길은 간밤에도 비가 내렸는지 아님 산안개 탓인지 등로가 젖어 있다.

 

양 옆으로 들꽃들이 한창이다.

그 중 물봉선, 노루오줌, 달맞이꽃, 닭의장풀 등이 많다.

이름모를 작은 들꽃들이 많은데 이름은 모르겠으나 눈길을 주며 오른다.

비가 내리는것은 아니지만 야영장 오르는 숲속길은 매우 습하여 끈적 끈적하다.

그나마 덥지 않으니 다행이다 싶다.

 

11시 20분.

야영장에 먼저 도착하여 적당히 녹아 슬러쉬가 된 두유를 하나 마시고 일행을 기다린다.

여름엔 팩에 든 두유를 얼려 가지고 다니는데 목마름과 배고픔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간식이다.

10여분쯤 지났을까...경희와 소희가 생각보다 일찍 올라왔다.

한 번도 쉬지않고 올라왔단다.

소희가 힘들터인데도 대견하다.

두유를 꺼내 주었더니 배가 고팠는지 평소에는 입도 안 댄다는데 잘 마신다.

 

11시 40분.

잠시 쉬었다가 야영장을 출발하여 비로봉을 향한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제법 경사진 길에다 바위며 돌들이 미끄러워 조심스럽다.

중간에 있는 옹달샘은 연일 내린 비에 수량은 풍부했으나 마시기엔 웬지 꺼림직해서 그냥 지나친다.

능선 오르기전까지 소백산은 온통 분홍빛 물봉선들이 점령 해 버렸다.

 

12시 16분.

탁 트인 능선에 오르니 갑자기 어둡던 산이 환해진다.

 

 

 

<천동리 야영장에서 능선까지 오르는 길은 숲길이다.

그러다 그 숲길을 벗어나면 이렇게 갑자기 온 산이 환해진다.>

 

숲을 벗어나기도 해서이겠지만 능선은 온통 분홍빛 둥근이질풀들이 온 초원에 가득하다.

그 속에 노란색 마타리와 어수리, 톱풀, 간간이 보이는 동자꽃들.

소백은 온통 꽃세상이다.

그래...이걸 보고싶어 먼길을 마다않고 잠까지 설쳐가며 예까지 왔지.

카메라로 찍어 보았으나 눈으로 보는만 못하다.

무엇이든 다른것들과 어울려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가 아름다운 법인가보다.

사진 찍는것은 포기하고 눈으로 가슴으로 보기로 했다.

 

뒤돌아보니 회색빛 하늘밑으로는 깨끗하여 천동리 방향이 한 눈에 들어오고 능선 능선들이 가깝게 다가온다.

 

<오르다 되돌아 본 천동리 방향>

 

 

 <양 옆 초원에는 이렇게 들꽃들이 만발.

  연분홍빛 작은 들꽃들은 쥐손이풀과의 둥근이질풀이다.>

 

 

고사목을 지나 대피소로 가는 숲길에는 투구꽃을 닮은 자주보랏빛 진교(진범) 덩굴(솔직히 덩굴이라 이게 줄바꽃같기도 하다) 진을 치고 있었다.

 

12시 30분. 주목관리소인 소백산 대피소에 도착.

땀이 식으니 긴 소매 옷을 입고 있는데도 제법 서늘하여 겉옷을 꺼내 입었다.

날씨가 썩 좋지 않아서인지 비로봉 정상에만 한 무리의 산객들이 있을 뿐 조용하다.

 

가방을 내려두고 나가 바람과 더불어 피고 지는 키 작은 들꽃들과 그리고 초목들과 인사를 나눈다.

세월과 풍상을 겪으며 곰삭어야 무엇이든 제 맛이 난다고 했다.

소백의 바람을 견디며 사는 이네들이 제대로 곰삭아서 더 어여쁘지 않을까.

 

에고야....한 몸통 안에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심장과 위장일지언데.....

들꽃을 보는 것으로도 심장은 부풀어 오르지만 위장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래서.....삶이란 소설과는 다른 것이다.

배가 고프지만 일행이 올 때까지 참기로 한다.

30여분을 기다리니 경희와 소희가 도착한다.

 

다들 배가 고픈지라 밥부터 먹었다.

식단이 조촐하다.

경희가 가져온 김치볶음밥과 내가 사 온 김밥 2줄.

천도 복숭아 2개. 얼려온 맥주 한 캔.

그래도 밥맛은 꿀맛이다.

 

1시 55분. 비로봉.

오르면서 뒤돌아본 대피소의 전경이 언제나 그렇듯이 참 예쁘다.

비바람에 시달려 통나무 색이 많이 바래지고 붉은색 지붕도 많이 퇴색하였지만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 한채......맞다.

비로봉에 올라서니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언제 그랬냐는 듯 한치 앞이 안보인다.

삼가리쪽은 아예 하얀 구름만 보이고 대피소쪽도 구름속에 가렸고 국망봉쪽만 어렴풋이 보인다.

변화무쌍한 날씨.

 

2시. 경희와 소희는 먼저 내려가 야영장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는 국망봉으로 방향을 튼다.

가는데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시간 계산하면서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국망봉 코스는 연화봉으로 가는 길과 또 다르게 수풀이 우거져있고 오르내림이 심하다.

갈 때의 내리막은 올 때의 오르막이 되는 줄 알기에 힘든속에서도 내리막길이 반갑지만은 않다.

3.1km라는데...왕복으론 6.2km인데....

언제 갔다 오나 싶으면서도 선뜻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계속 걸었다.

양쪽 등로 옆에서 둥근이질풀과 어수리와 마타리 진교 등이 나를 응원한다.


< 저 어래 구름이 노니는양이 예뻐서 한 컷. 아마 저 아래는 새밭골쪽.>

 

2시 45분. 국망봉.

한 무리의 등산객들을 계속 앞지르기 하며 국망봉에 도착하니 정확히 45분이 걸렸다.

국망봉은 오밀 조밀한 바위 봉우리로 바위에 올라서니 상월봉 신선봉으로 해서 민봉의 능선이 그대로 보인다.

구인사쪽으로 언젠가는 한 번 내려가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능선이 상당히 길다는 생각이 든다.


<저 봉우리를 넘어왔다. 국망봉에서 바라 본 비로봉쪽 능선.>

 

 

<국망봉에서 바라 본 상월봉 쪽 능선.

 좌측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가면 신선봉과 민봉을 넘어 구인사로 갈 수 있다.>



 

<처음 가 본 국망봉이라 기념삼아 한 컷.>


 

<국망봉 능선은 요러코럼 생겼다.^^>

 

잠시 구름이 거쳐 초암사쪽과 멀리 배점리 삼가리 쪽이 보인다.

오면서 잠시 구름이 거쳤을 때는 멀리 풍기의 아파트군들도 보였다.

새밭골쪽도 잠시 보이더니 이내 구름에 휩싸여 버린다.

되돌아갈 일이 급한데도 처음 와 본 국망봉에서 쉬이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이쪽 저쪽을 바라보며 한참을 지체했다.

 

3시. 다시 비로봉을 향하여 출발한다.

등산객들은 대부분 초암사쪽으로 하산한다.

올 때는 사람들이 있어 약간씩 지체되긴 했지만 심심하진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엔 오가는 산객도 없고 참 적막하다.

게다가 이슬비까지 내리니 내가 왜 이리 걷고 있나 싶다.

한 걸음 떼어내며 묵은 것 털어내고 한 걸음 떼어내며 나쁜 것 떨어내고......

묵은 것. 나쁜 것. 아픈 것. 하나 하나 꺼내어 이 능선길에 묻고 가자.


 

<능선길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들꽃들.>

 

바쁜 와중에도 간간이 보이는 동자꽃과 원추리(이미 지고 있는 중이다.)에 눈길을 준다.

아까는 찍지 못한 어수리와 마타리등도 이슬비속에 카메라를 꺼내어 찍어본다.

2km쯤 왔을 때에야 드뎌 산객 3명을 만났다. 얼마나 반갑던지.........

비로봉으로 다시 가서 하산할꺼라 했더니 서두르라 하신다.

 

오르내림길이 심해 다리에 무리도 오는 것 같고 또 다시 오르막길이 나타날때는 소리도 지르고 싶다.

그치만 항상 하는듯이 이게 생이라고 생각하면 여기서 그만둘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드뎌 비로봉이 보이는 봉우리에 섰다.

안개가 조금은 거쳐 비로봉이 보이는게 반갑다.

멀리 대피소도 보인다.


 

<국방봉에서 비로봉으로 되돌아오면서 본 주목관리소>


<비로봉.>

 

3시 53분. 다시 비로봉.

오는 길이 힘들었나보다.

갈 때보다 몇 분 더 걸렸다.

그래도 국망봉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녀 온게 얼마나 뿌듯하던가.

시간이 늦어서인지 비로봉엔 부부산객 두 명 뿐이다.

이렇게 적막한 비로봉은 처음인 것 같다.

 


 

<비로봉에서 바라 본 국망봉 가는 길.>

 




<비로봉에서 내려다 본 주목관리소 전경.>


 

오랜만에 비로봉 정상석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그리해도 산이 웃어줄 것 같았다.

여기까지 걸은 거리가 13km.

삼가리쪽은 저수지가 확연히 보이는데 멀리 연화봉과 천문대는 구름속에 나왔다 사라졌다 한다.

국망봉쪽은 다시 구름에 가렸다.

 

4시. 비로봉을 출발하지만 구름이 이리 저리 유영하며 만들어 내는 경치에 걸음을 떼지 못한다.

주목관리소를 지나는데 전화가 울리다가 받기전에 끊어진다.

야영장에서 나를 기다릴 경희 일행이리라.

전화를 다시 하니 신호가 약한지 연결이 안된다.

여러 번의 시도끝에 먼저 출발하라는 문자를 보내고 부지런히 내려간다.

 

안개비가 계속 내려서인지 길은 오를때보다 더 미끄러워졌다.

내 고질병인 오른쪽 무릎이 걱정되어 지그재그로 걸음을 떼며 서두른다.

경희 일행이 나를 30여분 기다리다 내려간다 했으니 빠르게 내려가면 따라잡을 듯도 싶다.

 

야영장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한 숨 돌린다음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드뎌 다래 1교를 지나 일행을 따라 잡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내려왔다.

또 금새 따라갈 듯 하여 먼저 내려보내고 차가운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발을 담궜다.

두 발을 담그고 서니 발가락이 찌릿할만큼 시리다.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시리긴 한데 그렇게 시원할수가 없다.

양말을 갈아신고 등산화끈을 조금 느슨히 한 다음 이제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길을 부지런히 쫓아 내려간다.

 

5시 37분. 소백산 유스호스텔 앞에서 다시 만났다.

매표소에서 단양 나가는 시내버스와 서울가는 버스시각을 확인하고 부지런히 걸었단다.

덕분에 빠르게 내려와 5시 45분. 단양가는 시내버스에 탑승했다.

 

아침 10시에 시작한 산행이 중간에 1시간 30여분쯤 휴식시간 포함하여 7시간 30분만에 끝났다.

휴식시간을 빼면 나는 거의 6시간동안 쉬지도 않고 19.8km를 걸은셈이 되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래도 예전보다 폐활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꾸준한 등산과 수영. 그리고 마라톤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6시 30분.

동서울 행 버스를 타고 8시 50분. 서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