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길에 서다

4박 5일 남도 여행 다섯째 날. - 보성에서 송광사까지...

dreamykima 2006. 5. 9. 14:50

날 짜 : 2003년 8월 6일

 

5. 다섯째 날.

 

5.1 할머니와 외래마을

 

새벽 몇 시인지 모르겠지만

꼬 끼오~~~~

할머니집 장닭은 소리가 정말 컸다.

4시 정도부터 울어대나보다.

그 소리에 잠이 깨어 5시까지 뒤척였다.

결국 5시 30분쯤 할머니가 일어나기시기에 나도 따라 일어났다.

주섬 주섬 챙기고 할머니께서 서울가며 먹으라고 싸주신 옥수수까지 얻어들고

새벽 6시 30분경 할머니 일나가시는길에 함께 집을 나섰다.

나오면서 할머니 고기라도 사다 드시라고 20,000원을 손에 쥐어드리니

....이런걸 주시냐며 한사코 말리시지만

내 맘 편하려고 그런다며 쥐어드렸다.

 

새벽 공기가 싸~하니 참 좋았다.

너른 벌판도 좋고...

이곳은 파가 유명한 곳이란다.

할머니는 어느 땐 새벽 5시부터 일을 하러 가시는데

일 가신 집에서 아침도 얻어자시고 아침 9시 30분정도까지 일을 하시면 13,000원을 번다고 하셨다.

보성 차 잎 딸 때가 되면 일꺼리가 많고 수입도 좋으시다고........

연세가 66세시라던데.......아직은 몸이 성해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다며........괜찮다고 하신다.

 

할아버지는 혈압으로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손주들은 둘째아들인가 자식들인데.........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하고 아들이 새 가정을 꾸리는 바람에 할머니가 키우고 계신단다.

중학교 2학년인 손녀딸과 초등학교 6학년인 손자인데,

그 둘을 할머니가 날품을 팔고 농사를 지어 키우고 계시는 듯 싶었다.

아들이 한꺼번에 얼마씩 주어......하시지만 그 돈이 커가는 아이들 키우는거에 비하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자식을 여럿 두었(3남 2녀?)으나

제대로 가르키질 못해 다들 어렵게 산다고 마음아파하시면서

당신이 손주들을 거두는것이 마땅하신듯 말씀하셨다.

 

항상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꾸벅 드리고 할머니와 작별을 한 후 한참을 걸어나왔다.

이른 아침이라 버스는 언제올지 모르겠고,

아침 공기가 너무나 상쾌하고 바람도 살랑 살랑 불고 있어

조금 걷기로 하였다.

 

그 앞마을은 외래 마을이라고 했다.

어느 곳이든 시골 마을 어귀에 커다란 정자나무 한그루 서 있는게 예사이긴 하지만

이 마을은 특이하게도 그 아름드리 정자나무들이 한그루가 아닌 열그루 이상이 열을 지어 있다.

그냥 보아도 모두들 족히 300여년은 넘어 보인다.

이곳은 정씨 집성촌이란다.

마을 어르신 말씀에 의하면 그 나무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바로 심은 것들이라고.......

이 마을은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집들이 있는데 이 나무쪽은 주로 양반들이 살았었고 개울 건너편은 일반백성들이 살았었다고.........

예전에 이 마을 이름이 '반내점'이었다는데 그 '반'자라는게 양반과 관계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서울에 사시고 친정에 다니러 오셨다는 다른 어르신은

이 마을이 부자 동네였고 집마다 하인들도 많았다고 말씀하신다.

 

동네가 하도 특이해서 나오는길에 일부러 들어가 어르신들께 여쭈어보았었다.

어른신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서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앞에 줄 지어 선 정자나무들만 보아도 그 마을의 오래된 내력이 보이는 듯 싶었다.

 

5.2 보성 차밭을 향해....

 

8월 6일 AM7:00

집에 가서 아침을 들고 가라는 어르신께 감사하다는 인사만 드리고 다시 걸었다.

 

할머니집부터 한 4km여 걸었다.

도강마을이란데 도착하니 곁에 작은 개울이 흐르는곳에 멋진 정자가 하나 서 있다.

개울에 가서 손도 씻고 정자에 올라가 옥수수를 먹으며 한참을 쉬었다.

 

또 다시 걷기 시작해서 한 200여m 갔을까......옆에 스타렉스가 한 대 와서 선다.

보성차밭에 가신다며 그곳에 가면 태워주신다고 하신다.

인천에서 휴가겸 여행을 오셨다는 40대 전후로 보이는 젋은 부부였다.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여 차를 잡으려던 참이었는데 정말 운이 좋다. 나는.......^^

 

대한다원.

제일 많이 소개가 되어있고 삼나무길이 한 번 보고 싶었었다.

이른 아침인지라 사람이 별로 없었고 차를 파는듯한 가게들도 문을 열지 않았다.

이른아침 시원한 공기를 가르며 차밭에 올랐다.

느낌?

솔직히 그저 그랬다.

나는 삼나무 숲길이 더 좋았다.

여러 번 찻잎을 따고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지만 파릇 파릇 연초록빛이 아닌 찻잎들은 그저 그랬다.

봄에 연한 초록빛이 될 때 다시 한 번 올께...

나오면서 보니 가게가 문을 열었다.

걸어다니면서 먹을 녹차사탕 두봉지와 보리차 대신 먹을 별로 비싸지 않은 녹차를 샀다.

 

나를 태워주신 부부는 해수탕에 가신다고 한다.

시간이 많으면 나도 들러가면 좋겠더구먼...^^

고맙다는 인사끝에 그분들과 헤어졌다.

 

버스를 기다리기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보성으로 가는길은 내리막이고 바로 100여m앞은 커브길이라 여기서 차를 히치하는것은 어렵겠다.

조금 걸었다.

200여m를 걸어 커브길을 돌아 평지가 나오자마자 이번에는 카니발이 한 대 와서 선다.

보성까지만 태워다 달라고 하고 얻어탔다.

부부와 아이들 둘이 탄 차였다.

아저씨 고향이 울진쪽인데 휴가차 고향에 갔다가 남해로 돌아 돌아 이제는 살고계신 목포로 돌아가시는 중이시라고.......

아저씨는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느냐는 등..

나는 울진, 후포, 망상쪽으로 여행을 한적이 있다는 등...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보성초입에 도착했다.

명함을 줄테니 목포에 여행을 오면 꼭 찾아오라는 아저씨 말씀에 감사하다고 고개만 꾸벅하고 내렸다.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난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5.3 낙안읍성.

 

보성역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10여분 걸렸을까?

벌교가는 통일호 기차가 바로 있었다.

09:25분

40여분 걸린댄다.

통일호기차이긴 한데 매우 깨끗하다.

좌석들은 폐기처분하는 새마을호에서 떼어온 듯 하다.

바로 옆에 할머니가 한 분 앉아 계셔서 사탕을 드리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나주에 사는 아들네에 다녀오시는 길이시라고.

고흥에 사신댄다.

시간이 있으면 이 할머니 따라가 하룻밤 더자고 갔음 좋으련만.......

흐미.....아쉬운거........

 

터미널은 벌교역에서 한 1km정도 거리에 있다.

아까 기차에서 앞에 앉아계셨던 사진을 찍으시는 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터미널에 금새 도착했다.

광주에 사신다는 그 분은 5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카메라 가방이 무척 크고 기차안에서 언뜻보니 장비가 이것 저것 많아

전업작가냐 여쭈었더니 직업은 따로 있으시지만 마음이 답답해지면 이렇게 훌쩍 나오신다 하셨다.

주로 풍경을 많이 찍으신다고........

 

10시 10분쯤 터미널에 도착하니 송광사행은 11시 50분이란다.

10시 20분 낙안읍성 가는차가 바로 있다하여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버스를 탔다.

서울에서 살다오셨다는 버스기사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금새 도착한다.

 

10:40

날씨도 더운데 배낭이 무겁고 더워서 매표소에 맡겨두고 구경에 나섰다.

자원봉사 하시는 분을 만나 낙안읍성에 대한 얘기도 듣고 이리 저리 구경을 했다.

성곽에 올라서 걸어도 보고..

즉석에서 인절미를 만들고 있는 떡집이 있기에 따뜻한 인절미를 사서 입에 넣으니 꿀맛이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도 앉아 쉬다가 구경하다 했더니 금새 12시다.

 

5.4 송광사.

 

낙안읍성 서문으로 나가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은 58번 지방도이고 여기서 27번 국도까지 나가 다시 송광사행 차를 타야하는 듯 싶었다.

물론, 버스를 기다린다는것은 히치를 하기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일뿐이다.

버스가 언제올지도 모르는데 여행도 끝나가는 이 마당에 그렇게 잘하던 히치를 안할수야 없지 않은가?

게다가 길도 외길인데.........ㅋㅋ

 

한낮의 땡볕아래 그늘도 없는 길은 한 5분여 지나니 내 인내심을 몽땅 내친 듯 하다.

무조건 차를 잡기로 했다.

~싸라비아~~

웬 젊은 아저씨가 스포티지를 세워주었다.

마산에 사신다는 이 분은

와이프는 휴가가 끝나서 일을 나가고 본인 휴가는 아직 남아있어 처가에 아내의 심부름을 가는 중이란다.

착하기도 하셔라........ㅋㅋ

너무나 운 좋게도 가시는 목적지가 송광사 근처란다.

또 한 번 앗~싸라비아~~무지 횡재한것같은 이 기분..저절로 벌어지는 얼굴 근육을 워찌해야할지.......^^

 

30여km를 가는동안 내 수다에 빠지신(?^^) 이 아저씨는

목적지에서 7km정도나 더 되는 길을 달려 송광사 들어가는 지방도 입구에 나를 세워주고 가셨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꾸~우~벅. 히히

 

입구부터 송광사까지 2.5km는 걸어 들어갔다.

오늘 아침부터 너무 차를 잘 얻어타서 조금이라도 걷지 않음 벌 받을까봐서.......ㅋㅋ

그러나, 걸어들어간게 얼마나 좋았는지.....

 

옆에 작은 개울이 흐르는 편도 1차선 길을 그늘만을 찾아가며 천천히 걸어갔는데

세상에나.....세상에나........

연꽃생지가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송광사에서 2~3년 전에 심었다고 한다.

예전 전주에 살 때 나는 덕진공원에서 홍련을 질리도록 보았었다.

그러나, 여기에 피어있는것은 대부분 백련이다.

그 단아하고 우아함이란............

이런 곳을 차를 타고 휑하니 지나쳤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것인가?

 

송광사 버스매표소에서 광주행 버스시각을 확인하고 배낭을 맡겨둔채 송광사로 갔다.

송광사는 큰 절집답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들이 답답하리만치 옹기종기 모여있다.

 

잠시 소나기가 내린다.

대웅보전 옆에 주저앉았다.

소나기도 소나기지만 옆에 지장전에서 젊은스님 둘이 불공드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끊임없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반복한다.

다른 한 스님은 그 옆에서 끊임없이 절을 올린다.

둘다 젊어 보이는데 어떤 연유로 산중의 스님이 되어 저리 수행중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소나기는 소나기인지라 금새 개였것만 두 스님들의 구도는 끝이 없다.

 

2시 35분 광주행 버스를 타기위해 조계산과 쌍향수등은 다음을 기약했다.

언젠가 다시오면 조계산 너머 선암사로 내려가보리라..

며칠 돌아다닌탓인지....오늘 집으로 간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싶다.

광주까지 직선상으로 가까운 거리이나 버스가 돌아가기 때문에 두어시간 걸렸다.

 

4시 45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나의 4박 5일 남도 여행이 이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