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 2003년 8월 5일
4. 네쨋 날 - 해남의 절집들
4.1 미황사.
어제의 피곤때문인지 7시쯤 느즈막히 일어났다.
주섬 주섬 챙겨 나가 근처 식당에서 백반(5,000원)을 시켜 먹었다.
이상하게 여행하면서 입맛이 별로 없음을 느낀다.
왜일까? 맛이 없는것은 아닌데......
1/3쯤 먹고 그대로 일어섰다.
8시 20분 버스를 탔다.
버스비는 2,390원...어제 땅끝에서 바로 왔으면 좋았을것을........
해남까지 갔다가 다시 왔으니.......돈보다도 시간이 아깝다.
9:00
버스에서 내려 미황사 가는길로 접어들었다.
역시나 지도 부실로 얼마나 멀지 모르겠다.
나중에 찾아보니 2km정도다.
어제와 달리 하늘에 구름이 잔뜩이다.
덥지도 않고 걸을만했다.
걷기 시작한지 채 10분도 안되어 천안에서 오셨다는 중년 부부의 차를 얻어탔다.
불교신자이시고 미황사에 왔다고 하신다.
차를 얻어타고 가니 금새 갔지만 걸어갔으면 고생 좀 할 뻔한 길이었다.
멀기도 하고 오르막길이어서......
미황사 대웅전은 특이하다.
겉에는 어떤 단청도 그 흔한 불화도 없고 안의 천정부에 있는 단청들 또한 많이 퇴색되어 있다.
오히려 보일듯 말듯한 그 빛깔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른 아침이라서인지 사람이 거의 없다.
여기서 한문공부를 하는듯한 몇 몇 학생들.
아까 나를 태워주셨던 부부
그리고, 나.
대웅전옆 명부전에서 스님 한분이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을 하시고 계시다.
그 소리가 너무 좋아 대웅전 옆 계단에 주저 앉았다.
무슨소린지 불자가 아닌 나는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지만
절집에 와서 오랜만에 듣는 스님의 목탁소리와 불경소리가 반갑다.
안개가 자욱하여 달마산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깊은 산속에 들어앉은 미황사의 고즈넉함이 좋다.
매미와 풀벌레소리
살랑대는 바람속에 섞여 날아가는 스님의 독경소리.
10:05
동쪽 부도비에 오니 이제서야 달마산이 제 모습을 빼꼼히 내보여준다.
부도비는 총 21개이고 5개의 비가 더 있다.
아마도 부도비 공사내역같은걸 적어놓은게 아닐런지......
한자에 문외한인 나는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한 귀퉁이에 노송 한그루가 부도비를 향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이 주위에 소나무는 딱 한그루다.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폼이 제법 여유롭다.
저렇게 몇 십년을 이 부도비들과 함께했겠지.
그리 크지도 않고 아기 자기한 부도비들이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민중과 함께 호홉했던 큰 스님들의 모습을 보는 듯 싶다.
대웅보전뒤로 달마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언젠가는 저 산을 오르려 여길 와야지...
그냥 가려니 너무 아쉽다.
대웅전의 간결함이 좋다.
젋은 스님(? 수행중?) 한분이 대웅전에서 불경을 드리고 있다.
목탁소리가 고즈넉한 산사에 울려퍼진다.
아쉬움을 뒤로한채 미황사에서 큰길까지 걸어내려왔다.
내려오는길에 나처럼 뚜벅이로, 홀로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를 만났다.
나중에 해남 터미널에서 그 남학생을 또 다시 만났다.
트럭을 히치해서 13번 국도와 만나는 월송리까지만 가려고 했는데 남창까지 가신다는 말씀에 남창에서 북일로 가 대둔사로 가는 길을 택했다.
버스길이 아니므로 무조건 히치를 할 생각이었다.
아저씨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시더니 남창에서 북일까지는 큰 도로가 아니어서 차가 많이 안 다닌다며 북일까지 태워다주고 가셨다.
나는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하기만 했다.
11:30 북일
여기서 다시 히치를 시도했다.
또 트럭을 얻어탔는데 이번에는 남창읍에 근무하신다는 공무원이시다.
사회복지과에 근무하셔서 어려운 사람들 집 고쳐주는 일을 맡고 계신다며 해남으로 자재를 실러 가시는 길이시란다.
대둔사는 해남으로 가는길에서 좌측으로 한참을 들어간 곳에 있었다.
그 분은 우리 고장에 오신 손님이라며 대둔사 입구까지 편안하게 태워다주고 가셨다.
나 오늘 너무 운이 좋은 듯 싶다.^^
4.2 대둔사.
11:50 대둔사 입구
대둔사 매표소 아저씨와 몇 마디 주고받다가 전주분인걸 알게 되었다.
그것도 바로 앞동네 사셨단다.
덕분에 매표소는 그냥 통과했다.^^
돈 2,000원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길에서 만나는 예기치않은 인연들이 반갑고 즐겁다.
걸어들어갈까 했는데 가는길이 꽤 멀다고 무료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라 일러주신다.
대둔사 들어가는 계곡길이 좋긴한데....가족단위의 피서객이 너무 많아 혼잡스럽고 차들도 많았다.
대둔사 대웅보전은 규모가 크고 매우 높다.
여기서 내가 느끼는것은 곡선미이다.
기둥이며 들보며 모두 나무가 굽은 곡선 그대로를 살려 자연스럽게 곡선미가 배어난다.
천불전 연화무늬의 문살은 매우 특이하고 예쁘다.
대웅보전 우측에 있는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의 필체라 하여 유심히 보았다.
봐도 잘 모르지만........^^
응징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느낌이 석가탑과 비슷하다.
신라시대의 탑양식이라 그런가?
이쪽 해남땅이 백제의 영토였던것을 보면 백제의 석수장이 아사달의 석가탑 빚은 솜씨가 백제의 석탑 형식을 받은게 아니었을까?
날씨가 너무 덥고 등에 멘 배낭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지난 밤 숙소가 편치 못해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이리.
일지암까지 가지 못하고 그냥 내려가는 길이다.
잠시 쉴겸해서 탁족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로 했다.
물은 차갑긴 하지만 다른 산사의 계곡처럼 몇 초를 못 담글 그런 정도는 아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인가?
더위탓인지 계곡 자리 자리마다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넘친다.
대둔사 나오는길에 유명한 밤고구마와 옥수수 몇 개를 샀다.
어쩌다보니 군것질과 과일 말고는 또 점심을 거르게 되어서 맛나게 먹었다.
대둔사 입구에 음식점들이 많았지만 그걸 먹고나니 또 배고픔이 가셔 버린다.
계속 군것질꺼리만 달고 사네.
4.3 녹우당.
대둔사에서 2km정도를 걸어나오니 해남가는 827번 지방도와 만난다.
그 삼거리에서 버스(750원)를 타고 녹우당으로 향했다.
몇 분 안걸려 금새 갔는데 저만치 녹우당이 있는 마을이 가깝다.
물론, 걸어가면서 그건 완전히 내 생각임을 알았지만......-.-
길은 잘 닦여 있으나 완전히 뙤약볕이다.
게다가 걸어도 걸어도 한참이다.
집에 와 지도를 자세히 보니 1.5km나 되었다.
흐미.......그래도 씩씩하게 잘 걸어갔다.
오고가는 차도 별로 없고.....어쩌다 지나가는 차는 만차라 얻어타기가 곤란했다.
눈에 보인다고 가까운건 아니다.....라는 진리(?^^)를 되새겼다.-.-
매표소에서 젊은 총각이 가방을 맡겨두고 가도 좋다고 한다.
날도 더운데 내가 먼저 말하기도 전에 미리 말해주니.......으메 고마운거.........^^
내 행색이 넘 불쌍해 보였나?
그렇게까지 엉망은 아니었는데..........(물론, 순전히 내 생각 ㅋㅋ)
처음부터 버스를 타는게 아니었어.
히치를 했었더라면 맘좋은 아저씨가 여기까지 금새 데려다주고 갔을지도 모르는데.......
에고.....돈은 돈대로 버리고(겨우 750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애써서 찾아간 녹우당이었건만 그냥 그랬다.
제일 먼저 들렀던 유물관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한 집안의 가족사.
그나마 양반 가문이었기에 그만큼이나마 전해질 수 있었겠지.
이름없이 살다간 수많은 민초들은 무엇을 남길 수 있었을까?
양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 속에서 궁색한 살림에 어쩌면 이름석자마저 남기길 고통스러워했을 민초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양반가문들도 존재하지 못했었을꺼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져본다.
녹우당 앞에 서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는 인상적이었다.
올려다보니 아직도 은행이 주렁 주렁 달려있어 그 생명력이 느껴진다.
고산보다 훨씬 이전에 태어난 이 고목은 녹우당과 그 주인들의 변천사를 그대로 보고 살았겠지.
그네들의 삶을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갑자기 궁금해진다.
녹우당에서 나오는 길에 서울에서 왔다는 여행객의 차를 얻어타고 해남 터미널까지 편히 왔다.
4.4 해남에서 보성으로 그리고 숙소.
해남터미널에서 아침에 미황사 나오는길에 만났던 남학생(김현석-대학생)을 다시 만나 즐겁게 인사를 나눴다.
그 친구는 순천으로 가서 통영 친구집으로 갈 예정이란다.
마침 순천행 버스가 보성을 들러 가는 차여서 함께 즐거운 얘기끝에 보성까지 갔다.
보성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남아 율포해수욕장에 가보기로 했다.
그 곳에 마땅한 숙소가 없으면 다시 보성으로 나올 요량으로.......
율포가는 표를 끊고 나무의자에 앉아 옆에 앉은 할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할머니의 사투리가 구수했는데 나는 도무지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사투리에 익숙치 않아 그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할머니 : 나랑 같은차 타믄 되야...
나 : 할머니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할머니 : 회촌...(처음엔 잘 못 알아들었다.)
나 : 거기가 율포에서 멀어요?
할머니 : 응...쪼금만 가면 되야..난 뻐스비가 1,400원이여.....(참고로 내꺼는 700원이었다.)
나 : 할머니! 누구랑 사세요?
할머니 : 손자 둘이랑 사는데 지금은 대전 지네 큰엄마집에 가고 나 혼자여....일주일 있음 와.
니 : (속으로 오잉~~)
나 : 할머니! 저 할머니 따라가면 재워주실래요?
할머니 : 그랴~재워주지.....나 혼자 장게.....그란데....집이 누추혀서.....
나 : 괜찮아요. 재워주시기만 하면........^^
가는길에 오른쪽에 보성 차밭들이 보인다.
율포까지 한 20여분 걸리는 듯 싶다.
율포를 지나 바닷가 길을 따라 회령이란데로 와서 회천면 신근부락이란다.
할머니는 장점순 할머니이신데 이 마을은 백씨성을 가진 백씨 집성촌이란다.
한 20호 사는데 다들 백씨고 딱 한집만 김씨성이란다.
찬밥이 있는데도 굳이 새로이 밥을 해 주신다.
나중에 보니 할머니는 찬밥을 드셔서 얼마나 죄송스러웠는지......
배가 그다지 고프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의 정성때문에 그 많은 밥을 한그릇 맛나게 먹었다.
설겆이는 내가 하고 할머니랑 찐 옥수수를 후식으로 먹으면서 함께 TV 드라마를 보았다.
TV없이 산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지라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할머니 말씀에 맞장구를 쳐 드리기도 하고,
할머니 자식들 얘기며 손주들 얘기도 들어드리고..........
언듯 전화내용을 들으니 내일 일찍 일을 하러 가시기로 했나보다.
괜히 따라와서 폐끼치는듯 싶어.......
나 : 할머니! 저는 원래 아침 안먹어요.(실은 아침은 꼬박 꼬박 먹는편이다. ^^)
할머니 : 아침을 왜 안먹어?
나 : 도시 사람들은 출근하기 바빠서 아침을 원래 잘 안 먹어요.
저녁 10시쯤 일찍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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