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욕지도 천황산 산행기 - 바다와 벗하며 걷다.

dreamykima 2006. 5. 19. 10:16

날 짜 : 2006년 4월 30일 / 윤정이와 함께

코 스 : 야포 - 망대봉(205m) - 노적 - 혼곡 - 대기봉(335m) - 천황산 (392m) 안부 - 태고암 - 시금치재 - 서촌

시 간 : 쉬엄 쉬엄 해찰시간 포함해서 5시간.

등로 상태 : 매우 부드럽고 위험한 등로 없고 길 찾기 수월함.

 

1. 천황산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먼 길이었다.

지난 해 언젠가 천황산에 대한 어느 분의 산행기를 읽고 꼭 한 번 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지난 여름 통영으로 2박 3일의 여행을 떠났을 때 한산도에서 만난 분들에게서

욕지도에 꼭 한 번 가보라는 권유를 받고는 가리라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토요일 늦은 밤 11시.

남부터미널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서울에서 통영까지 4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다.

3시 30분에 통영에 떨어지면 이미 걸어본적이 있는 길을 걸어

새벽 4시에 열리는 새벽 어시장(서호시장) 구경을 나서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통영에 도착한 시각. 채 3시가 안되었다.

얼마나 날아왔을지 상상이 간다.

물론, 나는 자느라 몰랐지만 옆에 있던 윤정이는 한숨도 못 잔 모양이다.

 

여행 또한 경험인 듯 싶다.

가끔씩 무박 산행을 위해 심야버스를 타는 나는 나름대로 준비가 되어있지만 경험이 없는 윤정이는 쉽게 적응이 안된 모양이다.

심야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얇은 담요 한 장과 목을 가늠해주는 배게와 수면안대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너무 이른 시각.

터미널도 잠긴 낯선 곳에서 우린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결국 서울에서도 한 번 안가본(나만) 찜질방을 가보기로 했다.

지난 해 통영시내를 걸으면서 봐 두었던 해수랜드.(터미널에서 택시로 2,300원 거리)

 

8,000원이나 되는 거금을 냈지만 결국은 한 숨도 못잤다.

윤정이의 말에 의하면 시설도 안좋은데 비싼 편이란다.

다음에 혹시 새벽에 통영에 오게되면 이 찜질방을 다시 이용하게 되겠지만(거리의 편의상)

찜질이 아닌 목욕탕만 이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잠은 못잘테고 따뜻한 물에 샤워는 괜찮았기 때문이다.

목욕탕만 이용하면 4,500원. ^^

 

6시가 되어 주섬 주섬 챙겨나와 걸어서 서호시장으로 갔다. 약 5분 거리쯤.

시락국집을 찾아 들어가 뜨뜻한 국물을 한 그릇 뚝딱 비워냈다.

원조집은 아니었지만 빨간 셔츠에 빨간 립스틱의 멋쟁이 주인아줌마는 정말 친절했다.

 

서호시장 바로 옆이 여객선터미널이다.

욕지도 가는 첫 배는 '욕지고속카페리호'로 6시 50분이다.

매물도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제일 북적거렸다.

 

 

2. 천황산 full course를 택하다.

 

1시간 10분이 걸려 욕지도에 도착하니 배 시간에 맞추어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800원) 야포로 향한다.

야포는 욕지섬의 남동쪽 끝 지점이다.

 

내려서 바다쪽으로 50여m 걸으면 천황산 등산지도가 있고 등산로 초입이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지 길은 나 있으나 잡풀이 우거져 있고 혹여 내가 제일 싫어하는 뱀이라도 나올까 두려웠다.

다행히 신이 도왔는지 만나지 않았다.

 

등로는 그다지 험로도 아니고 흙이 부드러워 건방지게도 등산화가 아닌 스니커즈를 신은 나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야포에서 잠깐 경사진 길을 올라서면 일출봉(190m)이고 금새 망대봉(205m)이다.

망대봉에서는 약간 내리막길이고 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그 곳이 노적마을이다.

노적마을은 다음에 오게되면 꼭 한 번 묵어보고 싶은 마을이다.

제법 경사진 길을 내려가야 하는 눈앞에 바다가 있는 우묵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마을이 참 소담하고 이쁘다.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공사중인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아마 욕지도도 관광을 위하여 이쪽 저쪽 새로운 길들을 만들고 있는 듯 싶었다.

임도가 끝나는 길쯤에 약간의 포장도로가 나오고 그 길을 내려가면 담쟁이와 돌담들이 예쁜 마을을 지난다.

마을을 지나고 나면 다시 등로가 시작되고 욕지도에서 가장 좋은 바다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곳이 아마 '고래강정'쯤으로 생각된다.

 

그곳을 지나면 혼곡.

다시 해안도로와 만나게 된다.

그 곳에서 한무리의 등산객들도 만났다.

대개 야포에서가 아닌 이곳에서 등산을 시작하는 듯 싶었다.

 

혼곡에서 대기봉 가는 능선은 멀리 우리가 걸어 온 야포쪽 능선이 한눈에 보여 눈이 시원스럽다.

안개가 없는 날이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을......

 

대기봉은 335m로 천황산 다음으로 높은곳이므로 제법 경사진 등로를 올라야 한다.

높은곳으로 오를수록 바다는 점점 더 넓어진다.

 

대기봉을 지나면 능선을 걸어 천황산의 안부로 내려가게 된다.

천황산(392m)은 바위봉우리이고 바로 옆에 해군기지가 있어 오르지는 못하는 듯 싶었다.

 

안부에서 어여쁜 보라색 봄구슬봉이를 만났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태고암 가는길.

나무계단으로 등로를 제법 잘 정비 해 둔 곳이다.

 

태고암은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 오는데도 참으로 조용하다.

 

태고암을 지나면 시멘트 포장길인데 제법 경사진 길을 돌아 내려간다.

올라올때는 팍팍할 듯 싶은 길이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해군기지가 있고 해안도로가 아닌 내륙쪽으로 뚫린 길을 만나게 되는데

좌측으로 가면 덕동으로 넘어가는 길이고 우측은 서촌 불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등산로는 약과봉(315m)으로 이어지지만 더운 날씨에 오래 걸어서인지

(비록 해찰하느라 오래 걸렸지만.....) 약간은 힘이 들었다.

혼자였다면 힘들었어도 끝까지 걸었겠지만 그곳에서 그만 끝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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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황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대개 섬에 있는 산들은 등로가 계속되는 동안 양쪽으로 바다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경치가 제법 좋고 시원스러워 많이들 찾게 되는 것 같다.

천황산은 험한 등로가 없고 부드러워서 누구나 인내심만 가지고 걷는다면 

모두 소화해 낼 수 있는 산이라고 생각한다.

 

4계절 중 햇볕이 따갑지 않은 봄과 가을이 좋을 듯 싶었다.

여름엔 햇볕이 가려지지 않는 등로가 많아 힘들 것 같고 겨울엔 바람이 너무 매서울 듯 싶었다.

 

가능하면 사람들이 주로 택하는 새천년 기념탑과 혼곡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하지 말고

야포에서 시작하는 풀코스를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경치도 그 편이 훨씬 좋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등로가 매우 정겹기 때문이다.

 

가을에 고구마가 나올쯤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서울에서도 토욜밤차를 타고 일요일 첫배를 타고 들어가 등산을 하거나 관광을 하고

오후 3~4시 배로 나온다면 그다지 늦지 않게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

 

천황산 등산과 욕지도 구경을 겸할 수 있어서 나름대로 만족스런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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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고성쯤을 지나며 붉은 자운영밭을 만났다.

매년 이맘때면 붉은 자운영을 보기 위해 남도를 오르내렸는데 올해는 가지 못해 어쩔까 하고 있던 참이었다.

월출산 구름다리가 새로 열린다는 소리를 듣고도 선뜻 시간을 못내고 있었는데

그니를 만나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