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이다.
동호회 카페를 뒤적이다 찾아냈는데 그 기억이 즐거워서 옮겨 놓는다.
그 동안 북한산과 도봉산의 릿지코스를 두루 두루 다니며 나름대로 훈련과 경험을 쌓았지만
지금 다시 대슬랩을 오르라하면 또 마찬가지가 될 듯도 싶다.
^^
날 짜 : 2001년 5월 1일 인수 대슬랩 연습 릿지
참 가 : 대장님, 깍두기님, summit님, 정재룡님, 오중렬님, 폴, 은, 창준, 작은은주, 나
9시가 집결시간이다.
통나무 식당에 모여보니 오늘은 인원이 많질 않다.
문외한이 보아도 ridge를 하기에는 좋은 인원 같다.
영원한 대장님이신 ridge님,
깍두기님(예전 만경대 릿지 때 보조대장이 되어 주셨던 분이시다.),
summit님(원효 릿지에서 확보를 봐 주셨던 분이시다.)
작은 은주, 오중렬님, 정재룡님, 폴, 은언니, 창준이 그리고 나 이렇게 10명이다.
사람이 몇 안되는지라 조금 늦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시간을 맞추어 우이동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우이대피소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오른쪽 샛길을 찾아 들었다.
예전에 만경대를 갈 때 지났던 곳인것 같은데....
아마도 깔딱고개가 아니었나?
예전에는 작은 샘이 하나 있었는데 그나마 없다.
가물기는 가물은 모양이다.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 능선을 타고 작은 고개를 넘어 바라보니 멀리서 인수봉이 우뚝 서 있다.
오늘 우리가 목적했던곳은 설교벽.
숨은벽을 오르면서 왼쪽으로 보았던 그 뾰족뾰족한 바위 능선이다.
그런데.....이런.....
오늘은 그곳으로 안 간댄다.
인수봉으로 간다나.....
우리가 갈곳이라며 멀리서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보니...
이런 이런....이건 뭐야....
직벽이 하늘높은줄 모르고 서 있는 인수봉이다.
헉~
멀리서 봐도 매끈한 바위가 족히 100m는 되어보이는데.....
경사도가 60-70은 되어 보이는데......
거길 간단다.
나는 고향을 떠나와 살면서 처음에는 정둘 곳이 참으로 없었다.
이곳에는 친구도 몇 안되고 가족들과도 떨어져 살고....
자연스레 가까워진게 예전부터 좋아했던 산행이라....
북한산이 가까워서 수도없이 다녔다.
잘 몰라서도 그렇고 약간 무서워서도 그렇지만 항상 같은 길을 반복하여 다니면서도 산행은 항상 좋았다.
북한산 백운대를 수도없이 올랐다.
자연스럽게 인수봉이 보였고 거기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어떤 경외심 같은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이런 내가 오늘 거기를 간댄다.
나도 바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본댄다.
말도 안돼.
속으로는 설마....ridge님께서 그렇게 무모하시지는 않을게야.
저건, 릿지가 아니잖어.
나 曰 : ridge니....임! 저건 릿지 코스가 아니잖어요. 저건 완전히 암벽이고만.....
ridge님 曰 : 그래. 암벽이야.
에고고고.....
왕눈이 은언니의 그 동그란 눈은 더욱더 커지고.....
나도 속으론...오늘 나는 죽었다.....
열심히 올라 인수봉 아래 도착하니.....이건 또 뭐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버트라우저들을 꺼내입고 바위를 보니 멀리서 보았던것보다는 경사도가 작다.
숨은벽의 50m 슬랩보다 약간 더 경사 진 것 같다.
장비를 챙기고 암벽화를 신고 바위 끄트머리에서 촐랑거려본다.
암벽화가 미끌어진다.
어.....이거 장난이 아니야....
어찌 저기를 올라갈꼬......
첫번째 슬랩
여기에서 연습을 하기로 했다.
깍두기님과 summit님이 50m 자일을 하나씩 차고 먼저 올라가셔서 확보를 보신다.
올라오랜다.
출발준비 완료..
출발..
너는 잘할 수 있어....나에게 최면을 걸어본다.
그래. 이제까지 잘했는데....충분히 할 수 있을게야.
할 수 있으니 ridge님께서 해보라 하시는게지...
올라가자.
일단 두발아닌 네발을 바위에 대고 붙었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다녀서인지 바위가 미끄럽다.
잡을곳이 없다.
이놈의 바위는 와 이리 매끄럽노..
한 발 한 발 걸음을 뗀다.
발을 너무 멀리 떼지 말랬는데도 빨리 올라가서 편해져야지 하는 생각 때문인지 발이 멀리 멀리 떼어진다.
두 손과 한발로 삼각형을 만들랬지..
그러나, 생각처럼 되는게 하나도 없다.
아무 생각 없다.
자일로 확보를 했으니 여차하면 끌어올려 주시겠지(두레박이라 하던가?)하는 생각에 그나마 안심이 된다.
내 확보줄을 보시는 summit님이 보인다.
에고...이제 다 왔구나.
확보줄을 걸어 확보를 하고 몸에서 자일을 떼어내며 외친다.
완. 료.
확보줄에 몸을 의지하니 살 것 같다.
이제 밑을 보며 손을 흔들고 경치를 감상할만큼 여유가 있어진다.
다들 초보답지 않게 잘들 올라온다.
떨어지던 빗방울도 그치고 해도 나지 않고 바람도 안불고 오늘은 우리팀도 적은 인원에 인수봉에도 사람이 많지 않다.
연습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하강 연습.
하강기에 자일을 걸고 확보줄을 떼어내고 왼손은 앞쪽에 오른손은 뒷쪽에 양손으로 자일을 잡고 하강을 시작한다.
옛날에 보니 남들은 잘도 내려가던데....
무게(?)때문에 더 잘 내려갈 줄 알았는데.....
어랍쇼...와 이리 안 내려간대니....
나중에 알고 보니 겁이 나니까 몸을 움추리게 되고 그러니 몸이 뒤쪽으로 젖혀지질 않고 앞으로 쏠려있어 제대로 내려가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들 하강을 하고 즐거운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내들고 맛있게도 얌얌.
ridge님께서 가지고 오신 쌈과 고추장은 정말 맛있었다.
밥을 먹고 나니 한 번 더 올라가도 거뜬할 것 같다.
빗방울은 얄밉게도 한방울 두방울씩 오락 가락이다.
그래도 밉살스럽게 쏟아지지 않으니 다행이다.
깍두기님이 춥다는 핑계(?)로 짐을 지키는 짐지기가 되기로 하고 ridge님께서 올라가시기로 한다.
아까 첫번째 슬랩보다 약 4-5m 더 높은곳에 약간 평평한 바위가 있다.
우리가 설수 있을 정도의....
거기까지 1차 슬랩을 올랐다.
한 번 올라 온 길이기에 잘도 올라온다.
두번째 슬랩.
summit님이 선두를 서신다.
10여m 이상의 크랙을 지나 경사가 꽤 가파른(창준이말로는 70도 정도라고 했는데 어제 바위중 제일 무서운 곳이었다.) 10여m 슬랩을 올라야 두번째 확보장소다.
그곳은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창준이가 크랙쪽으로 기어올라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기로 하고 하나 둘씩 오르기 시작한다.
역시 10m 두번째 마지막 슬랩이 위태로워 보인다.
정재룡님이 올라가서 다른 한쪽에서 확보를 본다.
작은 은주가 올라간다.
역시 스승을 잘 둔(?) 덕인지 잘 올라간다.
기럭지가 길으니 그것 또한 메리트가 크다.
다음에는 폴님.
몇 번 하지도 않고서도 잘도 간다.
몸매(?^^)도 받쳐주고....
다음은 내 차례다.
에구...
크랙은 잡을곳이 많아서 쉽다.
'창준아 사진 찍어' 하는 여유까지 보이며 오른다.
경사진 슬랩을 오를 차례다.
오른발을 거의 가슴높이까지 쭉 뻗어 올리고 양손바닥으로 바위를 누르며 왼발을 떼면서 내 몸을 올려야 한다.
더 위에는 잡을곳이 한군데도 없다.
적어도 이 초보에게는..
내 이럴줄 알았지..
평소에 다이어트 하라 그랬지....
속으로 나 자신을 수도없이 탓하며.....
왼손바닥으로 바위를 누르고 오른발로 바위를 의지하며 몸을 들었다.
어라....
한 번에 거뜬히 올라버렸네....
누가 나보고 숏다리라 했노?
우헤헤헤....
한템포 쉬자.
조금 몸을 의지할데가 생겼다.
그러나, 이제부터다.
얼마나 경사가 심한지 몸이 떨린다.
잡을데가 하나도 없다.
프로들이 보면이야 잡을데가 널렸겠지만 이 초보의 눈에는 아무것도 뵈는게 없다.
손끝을 이용하여 바위를 잡는다.
내 발을 믿으라지만 미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직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다.
그래도 위에서 summit님, 정재룡님, 폴님 모두들 내 자일을 단단히 잡고 있으니 안심이 되고 든든하다.
그래 올라가자.
예가지 왔는데 다시 되돌아갈수도 없는 일...
엉금 엉금 기어 오른다.
위에서 어디 어디를 잡으라고 하지만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드뎌 확보줄을 걸고 자일을 몸에서 떼어낸다.
완. 료.
다음은 은언니가 올라온다.
숨은벽 대슬랩에서 은언니를 본 사람들은 익히 알겠지만 은언니의 바위타기는 심봉사 개울건너기 같다. ^^
은언니는 절대로 위를 바라보지 못한다.
약간은 위를 봐야만 손댈곳을 잡고 발 디딜곳도 수월하게 찾겠지만 은언니는 그것을 못한다.
그러니....눈을 놔두고 손으로 더듬더듬...
위에서 보고 있자니...심봉사가 따로 없다.
크랙을 지나 올라와서는.....
은언니 왈 : XX야. 여기 어떻게 올라가.........
나 왈 : 자~~알~
모두들 웃음을 터트린다.
언니야! 놀릴려고 그런거 아니었다.
언니는 속이 탈테지만 어차피 거기서 걱정해야 소용없는 거 아닌감.
웃어서 초긴장이 조금 수그러지면 그것도 좋을 일.
그러나, 우리만 웃었지. 은언니는 아무말도 들리지 않는다.
또 다시 더듬더듬..
어떻해 어떻해를 연발하면서도 은언니는 차분하게 한 발 한 발 올라온다.
드뎌 완. 료.
(언니야!
이렇게 말은 해도 언니가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며 거기까지 올라온 것은 대단한 것인줄 잘 알어.
앞으로도 계속 화이팅이다.)
오중렬님이 올라온다.
역시나 거침이 없이 올라오신다.
다음은 창준이 차례다.
크랙을 오르고 모두들 헤맨 곳에서 다리 긴 창준인줄 알았건만 숏다리였던가베.
한 번에 오르질 못한다.
드뎌...... 끌어올려 주세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들 두레박이요...하고 한바탕 웃는다.
그러나, 끌어올리지 않았다.
확보를 조금 더 팽팽하게 잡고 창준이를 응원한다.
중간에 있었던 퀵드로우를 빼 가지고 오라는 말에 창준이는 사색이 된다.
그래도 응원탓인지 자신이 생겼음인지 한 발 한 발 올라서서 드디어 완. 료.
마지막을 ridge님께서 정리를 하시며 올라오신다.
사진도 찰카닥.
이미 선등자이신 summit님께서는 중간에 퀵드로우를 걸면서 오아시스까지 올라가셨다.
다음으로 정재룡님이 퀵드로우를 수거하면서 올라갔다.
작은 은주와 폴님도 질세라 잘 올라간다.
다들 중간 확보줄에 매달려 있는지라 허리도 아프고....힘도 빠지고......
나는 조금 덜 힘든곳에 자리를 잡은 탓에 은언니가 먼저 올라간다.
힘들어하면서도 은언니는 차분하게 오른다.
내 차례다.
두번째 슬랩보다 오히려 쉽다.
어쩌면 일어설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과욕은 금물임을 잘 알고 있다.
한 발 한 발 금새 올라간다.
창준이도 아까보다 쉽게 올라온다.
오중렬님과 ridge님은 함께 오르신다.
말할것도 없이 금새 올라오셨다.
오아시스는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인수봉 1/3쯤 되는 지점에 있다.
바위산치고는 나무들이 제법 있는 곳이다.
안가보신 분들은 왜 오아시스인지 상상을 하시라....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나?
그럴수도 있겠다.
물 얻을곳이 마땅치 않으니 그곳에서 목을 축이고 나머지 2/3를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창준이가 작은 오아시스 하나를 만들어 놓고 왔음을 밝혀둔다. 히히
우리는 그 바위위에서 마음껏 경치를 즐겼다.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 자랑도 맘껏 하고....
이제 하강이다.
약 50m정도를 하강한다.
우리가 올라왔던 길은 100여m가 넘는다고 하시지만 하강코스는 오른쪽 옆으로 비껴난 피바위(? 핏자국이 군데 군데 많았단다. 난 다행인지 불행인지 보지 못했지만....왜 그런지는 아실꺼라 생각.)를 지나서이다.
ridge님이 먼저 가시고 작은은주, 나, 창준, 은 등의 순서로 하강을 한다.
아까보다 요령이 생겼음인지 조금 쉬워진 듯 싶다.
하강을 하니 5시가 가까워진 시각이다.
이제 하산.
다시 통나무집.
파전과 묵등을 안주삼아 쭈욱 들이킨 막걸리 한사발은 정말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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