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길에 서다

주말 사진 몇 장 3 - 정다운 모임.

dreamykima 2006. 10. 31. 08:57

날 짜 : 2006년 10월 28~29일

장 소 : 갑사유스호스텔

  

1년에 두어 번씩 하는 대학 동아리 선후배 전체 모임이 있어 갑사에 다녀왔다.


기수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아예 처음 보는 윗 기수 선배님들도 계셨고,
학교다닐때는 얼굴 마주하고 살았으나 졸업하고는 처음 보는 바로 몇 기수 위인 선배들도 있었고,
그런가하면 기수 가리지 않고 매 번 만나는 얼굴들도 있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반가웠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들은 특히나 더 반가웠다.
조금 변한 모습도 있고 세월이 흘러도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들도 있고...

 

이 사람들은 만나면 다시 학교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모임 장소가 갑사유스호스텔이었는데
마당에서 통돼지 바베큐 파티도 하고
가운데에 모닥불 피워놓고 기타치며 노래도 하고
예전처럼 선 후배 어울려 게임도 하고...
덕분에 쥐 정말 많이 잡았다. ㅎㅎ

 

오고 가는 길 많이 막혔으나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만인가?

모닥불 피워놓고 저렇게 둘러앉아 기타 튕기며 놀던 시간들이...

다들 삐져나오는 배꼽 집어넣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 

 

 

정겨운 사람들. 정겨운 모닥불.

 

 

올해는 어디서나 단풍이 그리 곱지 않은 것 같다.

유스호스텔 앞에서...

 

 

아침을 먹고 갑사까지 산책을 나섰다.

  

 

(음..드뎌...내 카메라가 맛이 가기 시작하는구나. 저 보라색 가로줄은 무엇이란 말인가...흑)

 

갑사 대웅전의 모습.

대웅전 앞마당은 오후에 있을 음악회 준비에 한창이었다. 

  

 

날렵한 지붕선들..

 

 

난 절집의 이 지붕선들을 좋아한다.

 

 

부도. 보물 제 257호란다.

 

<갑사 뒤편 계룡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17년 대적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을 대담하게 조각하였으며,

거의 원에 가까운 가운데받침에는 각 귀퉁이마다 꽃 모양의 장식이 튀어나와 있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을 새겨 놓았다.

탑신을 받치는 두툼한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둘러 새겼다.

탑 몸돌 4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새겨 놓았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기왓골을 표현하는 등 지붕 모양을 정교하게 모방하고 있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으며, 후에 새로 만든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있다.>

 

- 갑사 홈피에서 퍼옴 -  

 

 

가을이 깊어가는 길.

갑사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샛길이 있다.

산책길로 아주 그만인 길이다.

이 계단을 오르면 부도가 있는 요사채쪽으로 가는 길이다.

 

 

걷고 싶은 길.

 

 

철당간지주. 보물 제 256호란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진짜로 세어보니 24개였다. ^^)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 갑사 홈피에서 퍼옴 ->

 

오른쪽 옆에 사람이 서 있으니 그 높이를 가늠해 보시라.  

 

 

갑사 산책을 마치고 간단한 놀이를 위하여 찾아갔던 시골의 작은 분교.

23번 국도에서 벗어나 갑사로 가다보면 좌측으로 유성 대전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가면 작은 초등학교가 서 있다.

왕흥초등교(분교?)라는데 현재는 폐교가 되어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관리하시는 분이 아주 친절하셔서 우리에게 네트까지 내어주셨다.

 

작은 운동장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고 운동장을 에두르며 은행나무들이 서 있는데 

노랗게 물들어 얼마나 이쁘던지...

언니들은 은행줍느라 여념이 없었고 남자 선배님들은 기수별로 나누어 족구를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네를 타거나 철봉에서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일부는 가고 일부는 남아 이 환한 가을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