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태백산 산행기 3 - 내 안의 새벽을 깨우며 산을 오르다.

dreamykima 2007. 1. 8. 13:12

아! 눈에 보이는 건 눈부신 하얀 겨울. 그 뿐!

 

날 짜 : 2007년 1월 6일 with 버디
코 스 : 유일사매표소 - 쉼터 - 망경사 갈림길 - 장군봉 - 천제단 - 망경사 - 반재 - 당골
교 통 : 1월 5일 : 청량리 - 태백 23:00 무궁화호 15,200원, 유일사입구까지 둘이서 7,000원
           (택시비는 15,000원인데 7,000원만 주고 관광버스를 얻어탔다.)
          1월 6일 : 당골 - 터미널 시내버스 : 1,100원, 
                       태백 - 청량리 : 12:53 무궁화호 15,200원 
식 대 : 아침 해장국(한솔식당) 각 5,000원씩
          점심(양지기사식당) 순두부와 청국장 그리고 소주 한 병. 13,500원

  

버려야 채울 수 있다.
내 안의 불성실함과 탐욕과 게으름 등을 버리고

부지런함과 성실함과 희망 같은 것들을 채우고 싶었다.
산으로 향했고, 여느때처럼 내 좋은 산행 동무인 버디가 따라나섰다.

 

청량리에서 늦은 밤 기차를 탔고

심신의 피곤함에도 아직 온전히 비워낼 수 없는 심경탓인지 예민함이 더해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3시 10분경 태백에 도착했다.

 

생각보다는 새벽 공기가 차지 않은 태백역은 그 이른 시각에도 등산객들로 북적거린다.
눈을 뜨고 있는 자만이 새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알아도 눈을 뜨지 않으면 여전히 깊은 밤중일뿐이라고...
이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한없는 존경을 보낸다.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하다.
해돋이를 볼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친다.

 

근 3년 만에 오는 태백역사는 깨끗하게 더 단장이 된 것 같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화장실에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같은 사람들을 배려한 때문이리...
세상을 살면서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타인의 배려속에 살아가는지...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역 앞에 있는 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따뜻한 물을 얻어 보온병을 채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택시를 타고 유일사(태백역 - 유일사 택시비 : 15,000원)로 향한다.
우리가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얼쩡거리는 사이 썰물처럼 등산객들이 빠져나가고

태백역은 금새 한산해졌다.

그러다보니 택시를 나눠 타고 갈 동행이 없다.

 

흐미~택시비 15,000원을 온전하게 다 내야하는감? 쩝~

 

밥을 먹고 있는 사이 눈이 내린다.
그냥 하나 둘 내리는게 아니라 펑~펑~내린다.

 

이궁~해돋이는 글렀구나. 
둘이서 꾸물 꾸물 시간을 보내다 눈꽃열차를 타고온 사람들이 타는 관광버스를 7,000원에 얻어탔다.^^

 

오전 5시.
버스를 타고 유일사에 도착하니, 이른 시각인데도 사람들로 북적댄다.
눈이 이렇게 내려서일까...기온은 영하 2도로 춥지 않다.

 

눈이 펑펑 내리니 다들 아이젠과 스패츠를 하느라 난리법석이다.
눈을 밟아보니 자박자박거리는데 그다지 미끄럽지 않고 오름길은 완만한 경사인데다,
우리는 스틱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일사 쉼터까지는 스패츠만 하고 그냥 오르기로 한다.

 

오전 5시 20분.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선두그룹에 끼어 걷기 시작한다.
컴컴한 산길에 램프 불빛들만이 춤을 춘다.

 

저벅 저벅...한 발 한 발 하얀 눈길을 걸으며 내 안의 새벽을 깨운다.
희망을 품고 찾아 올 푸른 이 새벽에 내 안의 희망을 깨운다.

 

월든에서 대충 이런 구절을 보았던 것 같다

 

...하루 하루가 그 이전에 죄를 짓고 살았던 시간보다 더 이르고 더 성스러운 새벽이 온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절망한 사람이며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늘의 새벽이 어제의 그것보다 더 성스러울것을...내일의 새벽은 더욱 그러할 것을...
또한 그 성스러운 새벽은 또한 그 무게만큼의 희망을 가져다 줄것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있는 많은 잡념들을 하나씩 꺼내어 버리며 내 몸을 가볍게 하고 한 발 한 발 산을 오른다.

 

  

산은 제 그림자를 안고 묵묵하게 앉았지만 곧이어 감람빛으로 빛나는 새벽이 찾아올 것이고
그 시간조차 순식간에 사라지며 곧 아침이 올 것이다.

 

순식간에 사라지기는 새벽이나 희망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나는 눈을 뜨고 이 새벽을 맞이하는 것처럼 나에게 오는 희망의 손을 꽉 잡을 것이다.
또한, 또 다른 하루의 새벽을 믿고 기다리는것처럼 또 다른 희망 또한 믿고 기다릴 것이다.

 

이 산과 더불어 새벽을 맞고 그 아침을 함께 호홉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근래의 컨디션으로 피곤함을 이겨내고 밤기차를 타고 새벽산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었지만
산에 드는 순간 모든것이 기우였음을 안다.
내 안의 피곤함도 아픔도 모두 사라지고 나는 지금 오로지 산과 호홉하며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새 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금새 쉼터까지 올랐다.
이젠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어야하니 안전을 고려하여 아이젠을 착용하고 능선을 향한다.
눈이 끊임없이 내려 얼굴쪽으로 달려들긴 하지만 쉬엄 쉬엄 오르니 힘들지도 않고

무엇보다 춥지 않아 좋다.

 

오전 7시.
유일사(3.3km)와 망경사(0.6km), 천제단(0.7km)으로 가는 갈림길에 섰다.
이젠 램프를 꺼도 될만큼이지만 아직도 사위는 흐릿하고 온 사방천지가 흰색으로 몽환적이다.

 

여기서부터는 주목 군락지이다.
멋진 자태의 주목들이 눈을 허옇게 이고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한참을 오르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이른 시각 능선에 서면 세찬 바람에 추위를 피할길도 없고
제대로 된 경치 구경도 못하고 그냥 하산하게 될 것 같다.
한템포 쉬어갈 요량으로 멋진 주목아래서 따뜻한 커피와 간식을 들었다.

 

<얼어죽을까봐 싸매긴....ㅎㅎ>

 

버디야~우리 다시 내려갈래?
아까 그 갈림길까지 가면 날이 밝을 것 같아. 그럼 올라오면서 멋진 경치를 다시보자.

 

우린 한참 오르던 길을 돌아내려갔다.
예상처럼 슬금 슬금 어둠의 정령들이 물러가기 시작하고 그 그림자속에 숨었던 산이
우리앞에 우뚝 서기 시작한다.
비록 눈이 펄펄 내리고 있어 멀리까지 시야가 트이지는 않지만...

 

어쩌면 인생에서도 이렇게 과감하게 U턴을 해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필요한 때가 오면 오늘처럼 과감하게 돌아서 보리라.
내가 감내할 수 있을만큼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데도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보이는 경치가 얼마나 좋았는지는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부족하다.

 

이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자! 그대! 행복할지어다!

 

 

 <멋진 제 산행동무를 소개합니다.^^> 

 

 <어느 부부산객에게 사진을 부탁하였더니 이렇듯 멋지게 찍어주셨다.> 

 

 

장군봉 능선에 서니 역시 바람은 불고 있었으나

얼굴조차 들 수 없었던 몇 년 전의 그런 바람은 아니었다.


<장군봉에서 천제단 가는 길.>

 

능선을 걸어 천제단에 이르니 그 안은 제를 올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바깥에 서서 빌었다.

 

부지런하고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게 해 주세요.

 

<꿈꾸리 ^^. 얼어죽지 않을 정도로 꽁꽁 싸맨 모습. ㅎㅎ>

 

문수봉쪽은 아예 보이지를 않는다.
자작나무숲이 그리워 문수봉 가는 길이 기웃거려졌으나 오궁썰매를 탈 요량으로 반재쪽으로 하산한다.

 

 <문수봉 가는 붉은 표지기>

 <망경사 경내가 흐릿하게 보인다.>

 

망경사 경내에는 라면을 끓여 아침을 해결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우린 멀리 흐릿한 산정을 보며
가만 가만 그러나 펑 펑 내리는 눈을 즐기다 내림길로 들어선다.

 

등산로 곳곳에 '눈썰매타기 금지'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서 있음인지 사람들이 오궁썰매 탈 생각을

안하다 반재가 가까워 코스가 나오니 몇 몇이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이민다.

 

물론, 우리도 신나게~~~~

 

눈은 그칠 기미가 없었다.
그다지 미끄럽지 않은 눈을 밟으며 안전하게 당골광장으로 하산하니 오전 10시 20분.
왼갖 해찰 다하며 걸었는데 정확히 다섯 시간만에 하산했다.
눈 털어내고 짐 정리하고 버스정류장에 오니 마침 10시 40분 버스가 있어 터미널로 오니 11시다.

 

 

기차표가 오후 4시 11분이어서 12시 53분 기차로 운좋게 좌석변경하고
택시기사님께 맛난 식당을 물어 터미널 건너편 양지기사식당으로 가
순두부와 청국장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시켜 즐거운 시간을 마무리한다.

 

간밤에 잠도 자지 못했고 둘이서 소주 한 병을 낮술로 다 마셨음에도 얼굴만 발그레할 뿐
전혀 피곤하지도 취하지도 않는다.
산행에 기분이 고조된 탓이리라.

 

 

금새 잠들겠지...했지만 펑 펑 내리는 눈에 보이는 곳마다
한 편의 수묵화와 산수화가 따로 없어 선뜻 눈을 떼지 못하고 창 밖을 응시한다.

 

눈 내리는 날엔 기차를 타고 강원도로 함 향해보라...고 강추하고 싶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서울로 돌아오니 기차가 연착하여 5시 25분쯤 되었다.
2007년을 시작하는 신년 산행이 멋지게 마무리되어졌다.

 

부지런하게 하루를 시작했던 것처럼 2007년의 시간들이 성실하게 채워지길 빈다.

함께 해 준 버디.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