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북한산 산행기 4 - 11살 재윤이와 바윗길을 넘어...

dreamykima 2007. 1. 29. 13:43

날 짜 : 2007년 1월 28일 일요일
인 원 : ridge님과 마님, ridge님 동료분과 아들 재윤이.
코 스 : 탕춘대능선 - 향로봉 - 비봉 - 비봉능선 - 문수봉 - 대남문 - 구기계곡 - 구기동

 

고관절염으로 한동안 고생하시더니 이제 살만하신가보다.
ridge님께서 북한산 산행에 나서자 하셔서 흔쾌히 따라나선다.

 

구기터널에서 탕춘대능선으로 올라본적은 있으나 상명대입구에서부터는 초행이다.
광명에서 오는 재윤이네를 기다려 10시 30분 늦은 산행에 나선다.

상명대 교정을 가로질러 주차장을 지나면 바로 탕춘산성이 나온다.
향로봉까지 완만한 오름길이어서 힘들이지 않고 능선을 걷는맛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멀리 좌측으로 족두리봉과 그 능선이 보인다.

 

 

향로봉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우회하지 않고 오랜만에 바윗길을 택해본다.


향로봉에 도달하기 전 잠깐 잠깐 바위맛을 들인 11살 재윤이의 의견을 물으니

요 녀석 겁을 상실했는지 바윗길로 가보겠단다.


보조자일도 있고 슬링과 카라비너도 충분하여 11살 꼬마녀석 하나쯤 두레박으로 올리면 된다

싶으셨는지 ridge님께서도 별 걱정없이 바윗길로 오르신다.

 

사람들이 그다지 많이 다니지는 않는지 아님 겨울이어서 그런지

바위는 차갑고 날이 서 있어 장갑을 벗고 오랜만에 손을 대보니 생채기가 난다.

비록 초보릿지코스이긴 하지만 무척 오랜만인지라 어떨까 싶었는데
ridge님이 계시다는 든든함 때문인지 자일의 도움없이도 쉽게 쉽게 올라서게 되었다.

 

 

ridge님께서는 버벅(?^^)거리시는 마님 챙기시느라 재윤이에게 많은 신경을 쓰실 수 없어

졸지에 재윤이는 내 차지가 되었다.

허리에 슬링을 매어주고 나도 슬링을 하나 들고 위험한 코스마다 재윤이를 잡아주니

요 녀석 곧잘 올라온다.
 

 

향로봉 오르는 길.

재윤이가 가장 무서워 한 구간이다.

이 구간을 통과하더니 요 녀석 자신감이 붙어 곧잘 따라붙는다.

그래도 요번 산행에 요 구간이 제일 재밌었다고 하는 재윤이.

 

향로봉 바윗길은 나와 같은 사람에겐 초보 릿지 코스지만

바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문가와 함께 하고

자일같은 안전 장비를 꼼꼼히 챙기지 않는 한 다니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올라오고 50대 후반으로 보이시는 어르신들이 몇 몇 따라오셨는데

그 분들은 우리의 자일이 없었으면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바윗길은 오름길보다 내림길이 더 무서운 법이다.

바위 중간에 서서 오도가도 못하고 서서 무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

아무리 스릴을 즐겨도 내 목숨값보다 즐겁지는 않은 법이다.

 

재윤이를 올려보내느라 여러 사람을 앞서 보냈는데 밑에서 보고 있자니 그 중 몇 몇은

바윗길로 오면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안전장비도 없이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문제고 문제없다고 큰소리치며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문제다.

 

북한산에서 사고가 많이 나는 이유도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듯 하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가자.

내 목숨보다 귀한게 어디있다고...

북한산의 릿지코스를 두루 섭렵한 나이지만 나는 아직도 바위가 무섭다.

 

 

우측으로 우뚝 선 보현봉과 사자능선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응봉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응봉능선으로 오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향로봉 바로 아래 비봉 가는 길.

사람은 많고 바위 구간이라 길이 밀렸다.

 

 

하늘 색 가방을 멘 꼬마가 재윤이.

 

길이 밀려 있어 오른쪽으로 바위를 탄다.

직벽인데다 바로 아래가 벼랑이라 무서울법도 한데, 향로봉을 오르며 자신감이 생긴 재윤이는

제법 힘을 쓰며 오르고 있다.

 

향로봉을 함께 오르던 아저씨들 몇 분이 문수봉까지 가는 내내 재윤이를 알아보시고 아는체를 하시니

요 녀석 말은 안해도 기분이 으쓱했을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지 않는가.

 

 

우측으로 바로 앞에 응봉능선, 그 뒤로 의상능선, 그리고 멀리 백운대와 인수봉 등이 보인다.

비록 개스가 조금 있지만 오늘은 날씨가 좋아 능선의 조망이 시원스러운 편이다.

 

 

좌측의 능선들도 시원스럽다.

 

 

진흥왕 순수비.

 

이 비석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박물관에 있다하니 재윤이 녀석 복제품과는 사진을 안찍는댄다.

녀석도 참...

결국은 세워놓고 사진 한 장 기어이 찍어 주었지만...

 

예전에는 비봉 오르는 길이 이렇듯 쉽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턴가 누군가 비봉 오르는 길에 홈을 파서 계단을 만들어 놓아

이제는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사모 바위를 배경으로 선 ridge님과 마님.

8년 째 뵙고 있지만 한결 같으신 분들이시다.

 

ridge님은 마님과 재윤이때문에 자일과 카라비너를 둘러 매셨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산행은 안전해야 한다.

 

 

 

 

내가 사모바위쪽으로 올라가는 걸 보고 쪼르르 따라나서는 녀석.

슬랩코스는 오를때는 쉬워보이지만 내려갈때는 약간 겁이 나는데도

뒤에서 내가 잡아주고 있다는 믿음때문인지 요 녀석 바위에서 날아(?^^)다닌다.

올라와서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무척 흐뭇해 하던 재윤이.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긴다.

재윤이는 사진 찍히는걸 무척 좋아한다.

 

뒤로 비봉이 우뚝하다.

 

 

사모바위를 옆으로 찍으니 마치 큰바위얼굴같다.  

 

 

김신조 바위로 유명한 사모바위.

 

 

사모바위 뒤로 노적봉과 만경대가 가깝고 그 뒤로 조그많게 백운대와 인수가 보인다.

앞에 보이는 것은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능선이다.

 

 

위험구간이었던 비봉에서 문수봉 오르는 능선에 이렇듯 철 난간들이 세워졌다.

얼마전까지 없었는데 언제 생겼담 ~

덕분에 조금 덜 위험해졌고 나 같은 사람들에겐 재미가 덜해졌다. ^^

그래도 안전이 최고다.

함께 오르던 아저씨들 몇은 불평하셨지만 난 잘한일이라 생각한다.

 

 

철 난간을 따라가면 좌측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우린 우측 바윗길을 택해본다.

아래가 까마득한 절벽이라 처음엔 무서워하더니만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 이렇듯 포즈를 취해준다.

포즈는 아주 좋은데 무서워서 얼굴 근육이 굳어 제대로 미소가 안나오는 재윤이.

귀여운 녀석. ㅋㅋ

 

 

좌측으로 대남문에서 대성문으로 가는 북한산성이 보이고 보현봉 뒷쪽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보인다.

 

 

우뚝 선 문수봉과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의 조화가 멋스럽다.

 

 

역광인 덕에 사진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한 눈에 보인다.

 

재윤이는 문수봉까지 오더니 자신감은 100%인데 체력은 0%란다.

처음 오르는 바윗길과 탕춘대능선부터 비봉능선까지 제법 긴 능선을 걸어왔으니 힘이 들기도 했으리라.

 

그래도 자신감은 100%란다.

오늘의 바윗길이 재윤이에게 꽤 흥미진진한 일이 되었던 것 같다.

처음엔 무서워 했지만 곧잘 슬랩을 따라오르는 재윤이는 곧 바위에 재미를 붙이게 될 것 같다.

재윤이의 목표는 이제는 숨은벽 대슬랩이 되었다.

 

 

대남문에 위로 걸린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다.

 

대성문까지 갔다가 형제봉 능선으로 내려 설 계획이었지만 재윤이도 힘들어하고

ridge님께서도 오랜만에 나선 산행이어서 무리하지 않으시도록 그냥 구기계곡으로 내려 선다.

 

따뜻한 생두부 안주에 소주 한 잔씩을 나눠마시고 오늘의 산행을 마친다.

 

그 동안 ridge님께서 아프셔서 혼자서는 릿지나 암벽산행을 하지 못해 아쉬웠던차에

잠깐이나마 바윗길을 타서 재밌는 하루였다.

 

눈이 온다는 예보에 잔뜩 기대를 했었지만 예보는 보기좋게 빗나가버리고

마른 등로에 먼지 풀풀 나는 북한산이었지만 이만한 산이 또 있을까.

 

난 북한산이 좋다.

 

내가 오늘 재윤이에게 좋은 선생이 되었던지 재윤이가 나에게 반했다.

ㅋㅋ 요녀석. 우리집에 가서 자고 가겠단다.

 

재윤이와 나는 멋지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