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산에 들다

소백산 산행기 6 - 3월. '봄 눈' 속에 묻히다.

dreamykima 2007. 3. 13. 15:04

날 짜 : 2007년 3월 10일 with 경희
코 스 : 어의곡리 - 비로봉 - 연화봉 - 희방사
교 통 : 동서울 -> 단양 06:59 버스 11,900원 & 히치 & 히치

  

1. 기상청의 예보를 믿고 산으로 향하다.

 

곧 봄입니다. 먼데서 투명한 화적떼를 끌고 기어이 봄은 오고 있습니다....<윤대녕>

 

그래. 지난 며칠 차거운 꽃샘바람에 겨울 코트를 다시 꺼내입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어느 새 그 바람조차 한겨울 매서운 북서한풍과는 다르다는 걸...
지난 주 곱게 핀 진달래를 꿈속에서 본 것은 아닐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는 겨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하다.
남도로 이른 꽃마중을 갈까, 홍천강 캠핑을 따라나설까, 갈등하다가
토요일에 비가 온다는 기상청의 예보에(비록, 대부분 맞지 않는 기상청 예보일지라도)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련없이 둘 다 포기하고 산으로 눈을 돌린다.


가는 겨울을 잡으러...마지막 눈을 보러...


나도 경희도 소백에 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별다른 의견도 없이 소백으로 길을 잡는다.

 

7시. 단양 행 버스를 타고 한강을 벗어나려니 멀리 아파트군 사이로 붉은 해가 올라온다.
어라~오늘 비온다며?
버스는 이미 떠나고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3월의 날씨에 기대감을 품으며 잠을 청한다.
우리가 못 잔 잠을 늘어지게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버스는 매번 단양 즈음이다.

 


2.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어의곡리 코스를 오르다.

 

9시 10분. 단양터미널.
천동리 들어가는 버스가 9시 30분에 있는걸 확인하고 있자니 등산복 차림을 한 분들이 
어의곡리로 갈꺼라며 차에 자리가 빈다고 얻어타라 하신다.
그렇잖아도 버스에서 내리기 전 '어의곡리 코스는 어떨까?' 했다가
택시비가 너무 비싸 포기했던 참이었다.

 

총 7명인 그 팀은 연령대(20대~50대?)도 다양하고 
지역도 대구와 제천에서 오셨다는데 어떻게 연결지어진 팀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지 그 분들 덕분에 어의곡리 코스로 오를 수 있었다.

 

 

9시 40분. 어의곡리를 출발한다.
어의곡리 코스는 천동리 코스의 지루함은 없었지만 코스가 짧은 대신 치고 올라야 하는 경사가 있어
꾸준한 오르막이어서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았다.


천동리만큼 계곡이 크지 않았으나 며칠 전 비가 온 때문인지 물이 제법 흐르고 있었고,
고드름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릴 반긴다.
고드름을 하나 따다 경희랑 나눠 먹는다.

꿀맛이냐고.......? 그냥 얼음맛이다. 시원하긴 하다. ^^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는 코스 중에 나는 천동리 코스가 좋다.
일단 대중교통으로 근접하기가 편하고 가깝다.
또 다른 이유는, 야영장을 지나 샘터를 지나 급경사길을 헉헉대고 오르면 그걸 보상이라도 하듯
갑자기 숲이 탁 트이고 환해지는 그 순간이 참 좋기 때문이다.

 

 

어의곡리 코스는 그런 기분은 없었지만 처음 와 보는 코스라 호기심을 가지고 걸어본다.
응달진 곳곳에는 아직 눈이 쌓였지만 조금만 고개 숙여 내려다보면 파란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봄이 언제 오려나~~~하다 보면 어느 새 봄이 와 있다더니

봄은 이렇게 소리없이 가만 가만 우리 곁으로 오는 것 같다.
 

 <으~~~~계단. 계단, 계단.>

 

<저 파란 하늘이 그렇게 많은 봄 눈을 품고 있을줄이야....누가 알았으리...>

 

<비로봉 가는 길.

  좌측으로 꺾이는 곳은 국망봉 가는 길이지만 산불방지기간이라 등산로가 폐쇄되어 막혀 있었다.

  우측으로 보이는 바위에서 바람을 피해 점심을 먹었다.> 


12시 30분.
비로봉으로 오르기전 자리를 잡고 점심을 해결한다.
컵라면 국물에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한 삼각 김밥에...
1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린다.

 

<바람. 바람. 바람. 소백의 바람.>

 

<구름이 예뻐서 한 컷 더.>

 

 <저 멀리로 연화봉과 천문대가 보인다. 아직까진 우리가 가야 할 능선이 뚜렷하다.

   잠시 후엔 저 모든것이 하얀 봄눈 속에 묻혀버린다.>

 

1시 30분.
함께 오른 그 분들과는 점심을 먹고 비로봉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헤어진다.
그 분들은 차량때문에 원점회귀를 해야했고,

우리는 능선을 걸어 희방사로 하산 할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로봉엔 여전히 세찬 바람이 불고, 키작은 초목들은 그 바람을 견디며 산다.>

 

내가 산악회를 따라다니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단체 산행을 별로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로움이 없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시간을 원하는대로 조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길 위에서는 자유롭고 싶다.


물론, 오늘은 오지 않는 눈을 기다리느라 경희도 나도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산세가 드러난 겨울산의 모습이 아름답다.>

 


3. 3월. '봄 눈'속에 묻히다.

 

1시 40분. 비로봉을 출발한다.
오전 내내 파랬던 하늘에 구름이 조금씩 모이는 것 같다.
연화봉쯤에서 눈을 만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끌며 걷기로 한다.

 

<떠나오며 되돌아본 비로봉> 

 

하산 시간이 늦어질까 걱정도 되지만 자주 왔던 소백이고 길을 훤히 알고 있기때문에
괜찮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능선을 걷는 동안 구름은 더 많아지고 바람도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다.
정말 눈이 올 태세다.

 

<비로봉에서 내려서면서 바라 본 주목관리소 전경과 능선. 현재시각 오후 1시 37분>

 

오늘은 유난히 능선에 사람이 없다.
능선 초입에서 단체산행객을 만났을 뿐, 교행하는 산객이 거의 없고,
그나마 제 1연화봉 너머서는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우리처럼 비로봉에서 연화봉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없어 오후 내내
아주머니 두 분이 제 1연화봉 가기 전에 우리를 앞서 갔을뿐이었다.

 

<현재시각 2007년 3월 10일 오후 2시 43분 06초. 연화봉 가는 길>

 

제 1연화봉을 넘어 연화봉으로 가기 위해 내려서는 안부로 가는 계단에 섰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긴 했으나 과연 계속 이어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제 눈이 제법 날리기 시작한다.
아니 제법 날리기 시작하는게 아니라 저 멀리 보이던 천문대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하얀 눈이 앞을 가린다.
그 때까지도 환호성을 날리며 좋기만 했다.

 

<현재시각 2007년 3월 10일 오후 3시 04분 52초>

 

안부에 내려서 다시 연화봉 오르는 길은 능선 구간에서 제일 힘든 구간이다.
긴 코스를 걸어와 체력도 떨어지고 오르내리며 능선을 걷는 일이 만만치 않은데다

이곳은 제법 경사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시각 오후 3시 17분 27초>


앞을 분간할 수 없이 눈이 내린다.

 

연화봉으로 오르자니 이제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고 걷는 길이 얼마나 좋은지 아시는가.

 

 

눈은 계속 사정없이 몰아치는데 벌써 3시가 넘어 연화봉에는 3시 반쯤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울산은 누가 뭐래도 3시 이전에 하산을 고려해야 하는데 눈을 기다리느라 능선에서 어기적거려

오늘은 시간이 늦었다.
오늘 따라 경희의 걸음이 자꾸 늦어진다.
눈을 기다리며 온갖 해찰하면서 왔지만 갑자기 사람도 없는 능선에서 시간이 자꾸 늦어지니

약간은 겁도 난다.

 

드뎌, 힘든 구간을 올라 연화봉 바로 아래에 섰다.
반갑게도 교행하는 산객을 만난다.
젊은 커플이었는데 차림새로는 완벽해(?) 보이는데 어딘지 서툴어보인다.
아니나다를까. 현재 시간이 3시 30분이고 이렇듯 폭설이 내리는데 비로봉까지 가서

삼가리로 하산할 참이란다.
소백에 와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초행이란다.
위험하다고 말렸다.
그래도 망설이는 두 사람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노라고 말해주고 돌아서면서

강제로라도 잡아야 하지 않았을까. 휴대폰 번호라도 물어볼껄...하는 생각이 스친다.
불안하다.
천천히 걸으며 귀를 세우니 다행히 되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현명한 사람들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해주어도 듣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보았으니까 말이다.


그제서야 경희와 둘이서 젊은 사람 둘 살렸다고 농담하며 길을 재촉한다.

연화봉에 도달아 흐릿하게 보이는 연화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한 장 찍고

쉴새없이 몰아치는 눈보라에 피하듯 금새 희방사길로 들어선다.

 

 <현재시각 오후 3시 33분 09초>

 


4. 끊임없이 내리는 눈 속에 걸음을 재촉하여 안전하게 내려서다.

 

젊은 커플이 우리가 연화봉에서 얼쩡대는 사이 먼저 내려와 바람을 피하며 간식을 들다

반갑게 우릴 맞는다.
덕분에 간식도 얻어먹고 시간이 자꾸 늦어지니 길을 재촉한다.
경희말고도 무사히 함께 내려가야 할 사람들이 늘었다.
오늘따라 이 길에 산객이 왜 이리 없누...

 

물론, 누가 나더러 책임지라는 사람 없지만 그들이 나보다 어리고 경험이 적다는 이유 하나로

책임감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내 걸음이 빠르다.
다들 따라오질 못한다.
따라오는 걸 간간이 확인하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선두인 내가 느리면 한없이 늦어지고 눈이 내리는 속도로 보아 아무래도 빨리 내려서는게

안전할 듯 하다.

 

눈이 쌓이고 있는 자칫 위험한 하산길이었지만 다행히 안전하게 희방사 깔딱고개로 내려섰고,

눈쌓인 돌계단을 내려 희방사로 안전하게 내려선다.
희방사 깔딱고개 안부에 이르러서야 우리를 뒤따라오는 산객 몇 분을 만났다.

 

 

그 동안, 겨울 소백에도 여러 번 들었었지만 희방사 계곡의 설경은 처음이다.
희방폭포에도 제법 물이 흘러 멋진 풍경이다.
갈길 바쁜 시간이지만 잠시나마 설경을 즐기느라 사진을 찍으며 모두들 즐거워한다.

 

<위에서 내려다 본 희방폭포>

 

 

희방사 주차장에 내려 선 시각이 오후 5시.

 

 

5. 소백산 산신령님께 감사를, 우리가 가진 행운에 감사를...

 

눈은 여전히 날리고 있는데 도로 위를 보니 산 위쪽만큼 바람이 불지 않고 춥지 않아

녹으며 쌓이며 하고 있다.
미끄럽겠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커플은 신혼부부로 내가 생각한것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집이 용인이라며 가능하면 함께 가자고 한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있고 버스정류장까지 가려면 한참이 걸려 시간이 자꾸 늦어지던 차에

고맙게 얻어탔다.

주차장에서 출발 한 후에 속으로 걱정하던 일이 일어났지만 운전자의 침착한 대응으로

다행히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왔다.
승용차가 미끌리며 S자 고갯길에서 180도로 차가 빙그르르 돌았거든...

 

천천히 희방사길을 내려오는 동안,

두어시간여동안 무섭게 내리던 폭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 세상에 하얀 흔적만을 남기고

슬금 슬금 사라져 버리고 있다.


그래. 봄눈인게야...봄. 눈.


돌아오는 고속도로에는 저 멀리 붉게 지는 석양이 보였다.
우리는 마치 꿈속을 헤매다 온 듯 했다.

 

그 하얀 봄눈은 햇살이 비추면 춘몽처럼 일시에 사라져버리리...

봄은 기어이 기어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아~이제 겨울꽃 지고 봄꽃 찬란히 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