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 2007년 8월 6일
혼자서 여행을 다니다보면 밥을 못 찾아먹게 된다는데 내 경우엔 아니다.
아침과 저녁은 꼬박 꼬박 밥을 사먹는 편이고 점심은 어쩔 수 없이 거르게 될 때가 많은데
그것은 관광지가 아닌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니다보면 밥을 사먹을 식당이 없기 때문이지 절대루 굶고 싶어서가 아니다. ^^
특히, 작은 섬에 들어가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항상 배낭에 간단한 먹을꺼리를 챙겨둔다.
여행에 대한 설렘때문인지, 낯선 숙소에 대한 불편함 때문인지 몰라도 여행을 가면 항상 일찍 일어나곤 한다.
일찌감치 숙소를 나와 밥을 챙겨먹고(어디든 터미널 근처에는 밥 먹을곳이 있다.) 나라도행 버스를 탄다.
나라도의 어르신들은 나로도를 나라도라 했다.
찾아보니 군마나 관아에서 쓰이는 말들을 나라에 바치는 섬이라는 뜻에서 나라섬으로 불렸으나
일제시대에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음을 따서 나로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쨌든지...지도상으로는 그리 먼 길이 아닌데 버스비가 6,300원이다.
그래도 작은 터미널마다 들려가는 이 버스가 난 좋다.
벌교를 떠난 버스는 동강, 과역, 고흥, 포두를 지나간다.
포두의 동쪽으로 너른 해창만 간척지가 있다.
벌교에서 외나로도까지 1시간 40여분이 걸린다.
나로도는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로 나위어져 있고, 나로1대교, 나로2대교로 연결되어 있는 섬아닌 섬이다.
벌교에서 떠난 버스의 종점은 외나로도의 봉래면소재지이다.
외나로도는 동쪽으로 우주센터가 완공되고 있는 예내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외초리가 있는데
대부분의 마을들은 해안가를 따라 있다.
외나로도 중앙에는 봉래산(393m), 장포산(360m), 마치산(380.1m) 등 제법 높은 산들이 있어 마을이 섬 중앙에 위치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것 같다.
외나로도에는 섬을 한바퀴 도는 해안도로가 없다.
남쪽 해안가에 장포산이 있는 때문인지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길이 날 수 없는 지형이라 했다.
외초리에는 염포해수욕장이 있고 맨 끝 마을은 하촌이라는 곳이다.
지도상으로 보니 길이 구불 구불할것을 감안한다면 약 10여km 정도 되는 것 같다.
일단, 하촌까지 가보기로 하고 방향을 잡는다.
국도 15번이다.
이 국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길은 외초리(오른쪽)와 예내리(왼쪽)로 가는 길로 갈린다.
버스도 다닌다고는 하는데 시간을 보니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그냥 걷는다.
10km를 모두 걸을 생각은 안했지만 가능한 한 걸어가보기로 했다.
힘들면 중간에 버스를 타면 되므로...
동강 마을.
봉래면소재지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길 양 옆으로 작은 저수지가 있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가면 또 다른 마을들이 나오는데 그 곳도 동강마을이라 했다.
15번 국도는 길을 넓히는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도 우주센터 완공에 맞추어서인듯 싶다.
나중에 들어가보니 외초리는 시멘트 포장길인데 비해 예내리쪽은 이미 아스팔트 포장이 잘 되어 있다.
동강마을 저수지 끝에서 만난 풍경.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버려진 폐가의 담장에도 호박덩쿨은 돌담을 휘감으며 노오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역시나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풍경.
저수지가 있는 곳에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그 내리막 초입에 작은 마을이 있다.
여기도 동강마을이라 했다.
내 지도상에는 동강마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도무지 이상타...했더니 나중에 저 돌담 끝집에 올라 어르신께 여쭈니
이곳이 지도상에 나오는 조금나리라 했다.
조개가 많이 나와서 조금나리라고 했다 한다.
대개 해안가에서 '금'이란 지명은 '뻘'을 의미한다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두 사람 지나가면 딱 맞을 돌담길이 너무 예뻐서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끝집까지 올라가 보았다.
팔순이 다 되신 노부부가 사시는 집이었는데...
다행히 낯선 나를 반겨주셨다.
감자도 내어주시고 나중엔 귀하게 두었을 포도 한송이까지 냉장고에서 내어다 주셨다.
마루에 걸터앉아 이런 저런 옛날 얘기들과 살아가시는 얘기들을 들었다.
아프리카에는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큰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진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나도 그 말에 깊히 공감한다.
한참을 앉아 놀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
역시 동강마을의 모습이다.
들렀던 돌담집은 15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왼편에 있었고 오른편으로는 이렇게 바닷가 마을이다.
동강마을을 지나 2km정도를 더 가서 15번 국도가 끝나는 지점 즈음에서 하촌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만났다.
한 4km정도를 걷고 난 후라 슬슬 지쳐갈 즈음이었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섬안에 버스비는 1,000원이다.
버스는 곧장 하촌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상초마을을 들러간다.
염포해수욕장이 있는 염포는 제법 큰 마을을 이루고 있다.
몇 사람 타지 않은 버스는 저 멀리 바닷가가 보이는 하촌 마을 끝에 나를 내려두고 바로 돌아나간다.
마을의 수호신이라도 될 법한 나무.
만나는 어르신들께 무슨 나무냐고 여쭈고 온다는것이 깜빡 잊었네~
두 갈래 길을 만나면 항상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여지는데 나는 일단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곳으로 가본다.
왼쪽 길은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해송이 멋진곳이다.
오른쪽 길은 산쪽으로 이어져 있어 저 길 끝에 서면 탁 트인 곳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따라가본다.
따라간 길은 해안가에 붙어 있었으나 키 큰 나무들이 우거져 탁 트인 바다를 보기는 어려웠고,
올라가면 보이겠지...위안삼으며 힘들게 올라간 길 끝에는
군사상 출입을 금지하는 곳이니 일반인은 출입을 삼가하고 사진을 찍지 말라.......는 곳이었다.
힘들게 올라갔는데.....에효~~~
다시 되돌아나와 아까 보았던 왼쪽 길로 들어선다.
저 길 끝이 바다.
작은 솔숲이 있는 곳에는 바닥이 고르지 않고 돌로 이루어져 있어 썩 좋지는 않지만 캠핑을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그 앞에는 이런 바다가 보이는데 단점은 너무 쓰레기가 많다는 것이고, 장점은 사람이 없어 무척 조용하다는 것이다.
윗 사진의 방파제 끝에 서면 멀리 곡두여란 이름을 가진 섬이 보인다.
지도상으로 보니 직선거리 2km쯤 떨어진 곳이다.
오른쪽 갯바위에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은 솔숲에 텐트 2동이 있었는데 곡두여를 구경하고 오는 길에 인사를 나누어보니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셨다.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도 듣고 먹을꺼리도 얻어먹고 나중엔 커피까지 얻어마시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 중 한 분이 다음 블로거이셨는데 돌아와 방문해보니 아주 멋진 분이다.
바닷가에서 되돌아나오는 길에 아까 지나치면서 눈여겨보았던 집에 들렀다.
마루가 아주 정갈한 집이다.
예순 넷 되셨다는 주인은 공무원으로 오랜 세월 재직하시다 퇴직하시고 고향에 돌아와 사신다고 하셨다.
집 옆에 오골계를 키우고 계셨는데 내가 들어서자마자 몸에 좋은거라며 생계란을 하나 주신다.
물론, 비위 약한 나는 먹지는 못했지만 선뜻 내어주시는 그 마음에 얼마나 고맙던지...
가운데 있는 문이 너무 궁금해서 열어봐달라 부탁드리니 마루로 되어 있는데 예전엔 곡식들을 저장해두던 곳이라 하셨다.
현재는 싱크대를 놓아 부엌으로 사용하신다.
원래의 담장은 오른쪽 끝에 보이는것처럼 높았다고 한다.
섬에 있는 집들은 대개 돌담이 높게 둘러쳐져 있다.
바람을 막아내기 위함이리...
답답하셔서 허물어내고 저만큼만 남겼다고 하시는데...
365일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므로 탁 트인게 더 낫다시며 웃으셨다.
작지만 나름대로 멋을 낸 장독대도 인상적이다.
돌담을 휘감고 있는 담쟁이 줄기들...
솔직히, 돌담집에 흔히 볼 수 있는 담쟁이 넝쿨이 그냥 멋이려니...했는데...꼭 멋만은 아니란다.
저 줄기들이 돌과 돌 사이를 튼튼하게 옥죄어 준다고 한다.
마침 비도 부슬거리고 있어 탁 트인 마루에 앉아 어르신 얘기 듣다가 버스 시각에 임박해서야 부리나케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버스는 내가 정류장에 도착하여 헥헥거리고 있을 때 도착했다.
봉래면에서 하촌으로 오는 버스는 2시간마다 있는데 이곳까지 30여분이 걸리고 매 짝수 시 정각(12시, 14시)에 봉래면에서 떠난 버스가
매 짝수 시 30분(12시 30분, 14시 30분)에 이곳에서 되돌아나간다.
염포해수욕장에는 제법 사람이 있었다.
들러볼까도 생각했지만 사람 많은 곳은 별로여서 한참을 나와 예내리로 가는 갈림길에서 내렸다.
버스 기사님 말씀으로는 곧 예내리 버스가 들어올꺼라 하셨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우주센터로 일을 하러 가는 트럭을 얻어타서 예내리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갈림길에서 예내리 가는 길은 하촌보다는 가까운데 고개를 넘어가야 해서 길이 구불 구불하다.
예내 마을 앞에 있는 우주센터 홍보관이다.
아직 개장은 하지 않았다.
나는 지도상의 하반이라는 마을까지 갈 예정이었는데,
나중에 동네 어르신께 여쭈니 그 마을은 우주센터를 건설하면서 주민들이 모두 이주하고 이제는 사라졌다고 한다.
우주센터는 여러개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고 너른 면적에 분포되어 있는 것 같은데
이 홍보관 건물 너머로는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통제를 하고 있었다.
우주센터 홍보관 앞에는 작은 공원이 있고, 그 공원 너머에 이런 멋진 자갈 해수욕장이 있다.
저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길이 우주센터로 연결되는 길이다.
홍보관 앞에서 보면 저 길 왼쪽 끝에 발사대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날씨가 궂어서인지....이 곳이 원래 이렇게 조용한곳인지....참 깨끗하고 좋은 해수욕장인데 사람이 거의 없다.
바닷물이 밀려왔다 밀려나가면
촤르르~~~~~~
작은 돌들이 밀려가는 소리가 참 정겨웠다.
해수욕장에서 할아버지와 놀던 예내에 사는 초등학생 꼬맹이 오누이를 만났는데 친구가 없다고 한다.
학교도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고...
그럼에도 친척 누나보다는 자기들이 나은거라고 어른스럽게 말한다.
예전에 하반 마을 안쪽에 사는 친척 누나가 있었는데 버스 시각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 학교를 다녔다면서...
오누이의 할아버지께서는 나보고 보이는 봉래산에 들어가봐야한다고 말씀하신다.
멀리서만 봐도 일제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울창한 나무숲이 멋진 곳이다.
물론, 가보진 못했다.
시간도 없어 가 볼 엄두를 못 냈지만 스트랩 샌들을 신고 어딜~~~^^
언젠가 다시오게 되면 봉래산 산행을 꼭 해보고 싶다.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순천에서 왔다는 가족의 차를 얻어탔다.
우주센터 구경을 왔다는데 아직 개장전이라 그냥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고흥에서 우주체험전이란 축제를 하고 있던데 그걸 여기서 하는줄로 잘 못 알고 왔단다.
남편되는 사람은 경찰관인데 이 나로도가 첫 부임지였다고 했다.
덕분에 이런 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놀라운 사실 한가지~!
이 작은 섬에 땅군이 두 사람이나 있고 까치독사가 많았다고 한다.
에고~~살아돌아온걸 감사해야지...
Z자 스트랩 샌들만 신고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서기 위해 풀숲을 헤집고 다녔는데...
나로도에서 나올 때 비가 내렸는데 고흥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어 얼마나 고맙던지...
원래는 내나로도쯤에서 내려 어디 해안가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 들어가 민박을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으니 금산에 꼭 가봐야한다고 해서 고흥으로 나갈 결정을 한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소록도 밑에 있는 거금도를 금산이라 부른다.
한편으로는 식사문제도 컸다.
잠이야 어느 집이든 들어가 청하면 가능하다 생각했으나,
시장도 먼 이곳에서 노인 혼자 사시는 집의 식사라는게 어떻다는걸 이미 잘 알고 있는 나는
식사까지 청하기가 죄송스럽고 한편으로 부담스러웠다.
나야 찬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대접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쨌든지, 친절한 가족덕에 고흥터미널까지 안전하게 잘 왔고, 터미널 뒤에 조용한 숙소를 구한 후에 시장 구경을 나섰다.
고흥 시장은 규모는 있었으나, 여름이라 생선들을 내어놓지 않아 약간 휑했다.
시장을 한바퀴 돌고 내일의 간식꺼리까지 사들고, 따뜻한 국물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일찍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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