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01년 10월 6~7일 1박 2일
(예전에 써 두었던 후기이지만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올려놓다.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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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의 기억 때문이런가.
또다시 여름만 되면 그 또렷한 기억들이 내 머리 속을 채우고 있겠지.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 싶다.
여름이 되기 전부터 회원들은 ‘아침가리’와 ‘구룡덕봉’을 입에 달고 산다.
거기에 가을의 기억까지 하나 더 얹었으니 욕심이 없어지기는커녕 이제 봄의 기억과 겨울의 기억을 더 얹었으면 하는 욕심이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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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태산 휴양림에 저녁 9시 반이 되어 도착을 해서 늦은 저녁을 먹고 정겨운 이야기속에 술을 한잔씩 나누니 그새 밤이 깊다.
적가리골 깊숙하게 자리잡은 방태산 휴양림은 캄캄한 밤에 보아도 그 경치가 수려하다.
이런 휴양림이 생겨 편하긴 하나 이것으로 인해 오염이 될 계곡을 생각하니 이러할수도 저러할수도 없는 상황이다.
휴양림 앞으로 흐르는 적가리골의 물살이 제법 큰 소리를 내며 흐른다.
산중의 밤은 한없이 깊은 듯 싶다.
새벽녘까지 술을 한잔씩 했으니 쉬이 일어나지 못할터인데 ridge님을 비롯한 몇 몇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어느 오지마을을 찾아 나섰다 오신다.
꿈결인 듯 그 부산한 소리를 들었으나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7시가 넘어가니 산중의 아침을 그냥 보낼 수가 없다.
그 맑은 공기를 어찌 가만 두랴.
뜬구름님이 일어나셔서 산책을 가시는 듯 싶다.
나도 따라 나서고 싶은데 술에 취하듯 잠에 취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옷을 단단히 껴입고 아침을 준비하신다는 왕언니에게 30분만 기다려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적가리골 계곡을 따라 산책을 나서본다.
벌써 계곡 사이 사이로 햇살이 비추어온다.
나뭇잎 사이로 살짝 찾아 드는 그 빛이 깨끗한 나뭇잎들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어 놓는다.
약속한 30분이 가는지 어쩌는지 느릿 느릿 걸음을 옮긴다.
파란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맑은 계곡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숨을 깊게 들이쉬어 나무 내음과 흙내음과 그 산내음들을 내 폐부 깊숙한 곳에 저장해두니 적가리골의 아침이 이제야 좀 느껴지는 듯 싶다.
느긋한 아침 산책길.
맑은 공기가 나를 앞서고 살랑살랑 바람이 뒤를 따르며 양 옆에 늘어선 나무들이 수줍은 듯 아침 햇살 속에 그 맵시를 뽐낸다.
붉은 듯 노랗고 노란듯 갈색이고 갈색인 듯 붉은.....
10여분 걸었을까....폭포가 하나 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그냥 2단 폭포라 하던데 집에 와 찾아보니,
이름하야....이 폭포 저 폭포.
여러 사진 작가들이 카메라에 커다란 망원 렌즈들을 달고 폭포수를 향해 서 있다.
떨어지는 물살이 제법 많아 하얀 포말을 그리면서 떨어진다.
그 분들은 폭포수 옆에 늘어선 단풍나무들로 빛이 살짝 스치기를 기다리신다.
햇빛이 살짝 살짝 스며들어 반짝이는 그 잎들이란......
나는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는데 그 옆에 하얀 폭포수는 매일 보는 풍경에 무심한 듯 아래로 아래로만 흐른다.
간간이 부는 바람은 어느 새 완연한 갈색이 되어버린 잎들을 폭포수 아래로 쏟아 놓는다.
30여분이 지난 듯 싶어 한가로이 올랐던 길을 이번엔 뛰다시피 내려왔다.
웬걸.
뜬구름님은 부지런도 하시지...
어느 새 산책 다녀오시고 밥도 해 놓으셨단다.
왕언니의 우렁 된장국은 언제 먹어도 별미다.
간밤의 술도 그 된장국에 모두 해독이 되어졌는지 아침이 참으로 상쾌하다.
예쁜 커피잔을 들고 통나무 앞마루에 서니 적가리골의 아침이 또한 새롭다.
이 나무 저 나무로 바람이 옮겨 다니며 나뭇잎을 간지럽히니 흔들리는 그 사이로 빛이 숨어든다.
바람과 나무와 아침햇살이 숨박꼭질이라도 하는 듯 싶다.
그들 사이로 나의 눈도 술래를 찾아 쉴 새가 없다.
참으로 느긋하고 멋진 아침이다.
11시가 다 되어 휴양림을 출발한다.
방동약수에 들러 김빠진 사이다 맛이 나는 약수를 한 모금 먹고 다시 아침가리를 향하여 재를 하나 넘는다.
작년 여름엔 이 길을 걸어 올랐었지.
저곳에 차를 세워 두었었는데.....
산딸기가 많았는데.....
우리는 무슨 얘기들을 그리 정답게 나누며 걸었었지.
고문님과 ridge님 차에는 몇 명이나 매달려 갔었지.
조경분교까지 그 터널을 이룬 길에서 옆에 매달린 사람들은 많이 긁히기도 했었는데.....
난 그때 ridge님 차 뒤에 매달려 그 사람들을 골리며 달렸었는데...
아침가리골.
조경동(朝耕洞).
아침 한나절 잠시 비치는 햇살도 소중한 땅.
높은 산봉우리들에 가려 아침 한나절에만 잠깐 비춰지는 햇살에 밭을 간다 하여 아침가리라지.
방태산 구룡덕봉 응복산 가칠봉 등 대부분이 1천 200여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 쌓여 산세가 높고 울창한 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곳.
그런 깊은 곳에 물과 공기가 맑아 전염병이 창궐하지 못하고 들어가는 입구가 험하고 좁아 전쟁의 세파를 피할 수 있고 입구는 좁되 들어가면 안락하게 들어앉은 형상이라 적당한 밭뙈기가 있으니 연명할 곡식을 만들 수 있는 곳.
그곳이 삼둔(살둔, 월든, 달둔) 사가리(적가리, 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이며 그 중 대표되는 곳이 조경동 아침가리라 했다 한다.
'둔'은 산기슭에 농사를 짓기에 알맞은 펑퍼짐한 땅을 의미하며,'가리'는 밭을 간다는 의미의 경(耕)자에서 유래되어 계곡 옆에 흙이 쌓여 이뤄진,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의 땅을 가리킨다고 한다.
조경분교 가기 전 집이 한 채 있었지.
분교 가기 전 넘어야 할 다리 앞쪽이 약간 유실되어 있다.
여전히 물은 맑고 햇빛에 반사되며 흐르는 물결이 눈이 부시다.
짙푸르고 한 길이 넘어갈 듯 보이는 다리 아래 물속이 바닥까지 훤하다.
작년엔 폐교된 조경분교에 들러 털보아저씨랑 얘기도 나누고 소시지 안주에 캔맥주도 했었는데......
그냥 지나쳐 간다.
길이 많이 유실되어 있다.
여름에 비가 많았는지.....
차가 7대나 되지만 거뜬하게 그 길을 간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다리를 건널수록 가을이 완연하고 계곡이 깊다.
여기에서 라면 끓여먹고 구룡덕봉까지 올랐었는데.....
작년 여름의 기억들이 새록 새록 되살아나고 사람들이 그립다.
지나는 길에 있었던 그 많던 벌통들은 이미 다른데로 옮겨지고 없다.
이미 걷이가 끝났겠지.
원시림과 어우러진 아침가리골의 청정한 계곡을 지나 명지가리로 올라서는 길에 물을 뜨기 위해 정지한 순간을 이용하여 나는 걸어 올라간다.
아침가리에서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홍천군 내면 월둔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명지가리.
우측은 구룡덕봉 오르는 길이고 좌측이 월둔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우리는 그 길을 그냥 Y자길이라 부르지만......,
이미 우측길로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지난 여름 길을 잃은 방개님의 전적(?)이 있기에 괜한 걱정을 끼치는게 아닐까 염려 되어 선두차가 올 때까지 쉬기로 했다.
한참을 앉아 작년처럼 나무와 돌로 화살표도 만들어보고 집 나갔던 방개님도 떠올려보고......
여기에서 여럿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ridge님의 선두차량이 보인다.
나도 일어나 다시 구룡덕봉을 향하여 걸어 올라간다.
길이 많이 유실되어 있고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으니 차로 오르는거나 내가 걷는거나 별반 차이가 없다.
아직도 뒷차가 남아 있으므로 여차하면 뒷차를 타기로 하고 선두 차량들을 앞서 보내며 한가로이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고봉의 산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데 점점이 박힌 붉은 단풍들이 온 산에 가득하여 일부러 붉은 물감을 군데 군데 흩뿌려 놓은 듯 싶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하얗고 산은 형형색색.
어느 화가가 자연의 화도를 따를 수 있으리오.
이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또 어찌하리오.
차를 타고 가면 아무래도 시야가 좁을텐데 이렇게 걷고 있으니 온 세상에 가을이 가득하다.
한참을 한가로이 걷다보니 고문님차가 올라온다.
마지막 차량이니 얻어 타야겠지.
차안에 앉아 있어도 결코 가을은 비켜가지 않는다.
그 투명한 나뭇잎들을 보며 감탄의 말을 쏟아놓지 않을 수가 없다.
붉은 색은 붉은 색대로 노란색은 노란색대로.....
갑자기 급커브다.
ridge님차에 매달렸던 봄날이 찍(?)소리도 못하고 땀 좀 흘린 곳이지.
ridge님께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핸들을 꺾으시리라곤 모두들 생각치 못했었지.
뒤에 매달린 봄날은 그 덩치에 회전 가속도도 붙었을터인데.....
생각할수록 즐거운 기억들만 가득한 곳이다.
바람이 제법 불고 역시 해발 1388m나 되니 춥다.
북동쪽으로는 설악산 주능선이 보이고 남서쪽으로도 고봉들이 가깝다.
어찌 그 꼭대기만 구름에 가렸는지....잘 보이지는 않지만 ridge님께서 저곳이 대청봉이라고 일러 주시고 멀리 동쪽에 보이는 풍경은 동해 바다라고 일러 주신다.
시간은 4시가 다 되었는데 점심을 아직 못했으니 배도 고프고.
작년 야영했던곳에 차들을 세우고 그 옆에 있던 콘크리트 건물속(군사시설이었던 곳)에서 라면을 끓여 바람을 피하며 점심을 들었다.
어젯밤 신 김치와 함께 구워먹다 남았던 삼겹살을 알뜰살뜰하게 챙겨오신 왕언니덕에 안주가 풍성하여 소주를 한 모금 했다.
아! 좋.....다.
오후 5시.
아까까지는 파랬던 하늘에 어느 새 구름이 잔뜩 몰려 들었다.
산중의 밤은 빨리 오지.
이제 돌아갈 길을 재촉한다.
내려가는 길도 차의 속도나 걷는 속도나 별반 차이가 없다.
선두 차량인 폴님차를 내려 나는 한가로이 걸었다.
차들이 줄줄이 내려오니 마음이 급해져서 뛰기도 하고....
중간쯤 주연이가 내려서 나랑 함께 걷다가 뛰다가 한다.
월둔으로 내려가는 Y자길을 코앞에 두고는 차에 올라탔다.
내려가니 고냉지 무우밭에 무우들이 싱싱하다.
걷이가 끝난 무우밭 한 켠에 상품가치가 없어 버려진 무우들이 널려 있다.
다들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양껏 차에 옮겨 싣는다.
나는 그 순간을 이용하여 다시 걷는다.
한가로운 시골길을 걷는게 참으로 행복하다.
혼자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면서......
걸으면 잡념이 사라져서 좋다.
머리 속이 비워지는 듯 싶다.
늦은 점심에 배들도 고프지 않고 밀리지 않은 길을 재촉하여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약간 넘었다.
정다운 사람들과 정다운 기억들이 있는 그곳에 다시 다녀와서 정말 행복하다.
언제나 봄의 기억과 겨울의 기억을 쌓으러 갈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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