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 2002년 2월 23일 - 24일
우리들 중 대부분이 늘상 여행을 꿈꾸면서도
정작 떠나지 못하는것은
바로 여행의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버릇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계획은 성공을 가져다 줄 확률이 높지만,
충동은 성공은 보장못하고,
다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은 가져다 줍니다.
-------길위에서 버린 생각 / 김명렬 중---------
'덜컹'
남도행 밤기차가 느리고 육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느림과 육중함속에서 나는 갑자기 내 몸과 마음이 붕 떠오르는 가벼움을 느낀다.
'자유'
그래. 한없는 자유다.
기차에 탄 사람들은 제각기다.
단체 여행객들.
친구들로 보이는 젊은이들.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
손에 한짐을 들고 고향 찾아 가는 소박함이 묻어나오는 사람들까지.
나처럼 혼자인 사람도 있으나, 배낭을 멘 이는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서서히 도심의 불빛을 뒤로한 채 남으로 향한다.
알 수 없는 희열이 밀려온다.
요즘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다.
아! 나는 떠나고 있다.
점점이 불빛들이 멀리서 따라온다.
그 불빛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기차는 끊임없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캄캄한 시골 너른 들판을 지나다가 산모롱이를 돌고 희미하고 소박한 불빛들 점점이 박힌 작은 읍을 지나 남으로 남으로.........
이른 새벽녘. 6시.
밤새 제대로 펴지 못하고도 지난 밤 떠나기 전 한잔 들이킨 맥주의 위력덕분인지 한숨을 자고 일어나니 낯선 도시의 불빛이 나를 반긴다.
난 도시의 불빛을 피해 또 다른 도시로의 도피를 시도하였던가? ^^
이른 아침, 낯선 역의 화장실 한켠에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거울속의 나에게 다른 모습이 느껴진다.
낯설다.
아마도 오랜만에 떠난 길의 낯설음때문이리라.
여수역을 나와 오동도를 향해 새벽길을 걸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도시의 내음속에 바다의 짠 내음이 들어있다.
오동도 전망대에 도착하니 6시 반이 약간 넘었는데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때문이련지 제법 두툼한 옷을 꺼내 입고도
옷깃이 저절로 여며진다.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날고있다.
이른 새벽 고기잡이를 나가는지 불을 밝히고 물살을 가르며 바다로 나아가는 작은 통통배들의 소리가 정겹다.
부디 만선을 이루고 돌아오기를……
7시 5분이 되니 바다에서 해가 빠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전망대에 섰던 사람들의 탄성 소리가 들린다.
해는 금새 올라온다.
금새 동그라니 빠알간 모습으로 내 눈앞에 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을 언어로 풀어내기엔 내 언어의 짧음을 탓할 수 밖에......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섰을밖에......
오동도는 변한게 별로 없는 듯 싶다.
동백은 아직 1/3정도 밖엔 피지 않았고 성질 급한 몇 녀석들은 툭 툭 이미 바닥에 떨어져 그 붉은빛을 잃어간다.
느릿 느릿 걸음을 옮긴다.
2년만인가?
이렇게 홀로 떠나올 수 있었던것이......
순천으로 향했다.
선암사에 가기 위해서다.
여수터미널에서 순천까지는 40여분이 걸리고 순천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선암사행 시내버스가 있다.
약 50여분이 걸린다.
태.고.종.림.선.암.사.(사적 및 명승 제 8호)
전남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조계산 기슭에 자리잡은 ---------
선암사는 백제 성황 7년 (529년) 아동화상이 개산한 사찰로써,
통일 신라말 9세기 후반경 도선국사가 호남에 창건한 3암사 (영암 용암사, 광양 운암사, 순천 선암사)중의 하나이며,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으나 정유재란때 전소된 것을
그 후 인조 22년(1644년)과 현종 1년(1660년) 및 19세기 초에 중창하여 현재 40여동의 건물이 있다.
-------선암사 입장료 뒤에 붙은말에서............
반대편 조계산 북쪽 산 중턱에는 유명한 승보사찰 송광사가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에서 3시간여면 조계산 등산로를 따라 다녀올 수 있다. (선암사 -> 송광사 : 6.6KM)
혼자 하는 여행..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하여 송광사행은 다음 여행을 위해 남겨두고 선암사를 차분히 둘러 보았다.
선암사 강선루를 몇 십 미터 앞에 두고 승선교(보물 400호)가 있는데 아치형의 돌다리가 무척 정교하고 예쁘다.
중앙부의 용머리라고 하는 특이한 조각이 붙어 있는데 다른 곳에선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강선루는 일주문 대신인지 선암사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오랜 세월을 이겨낸 흔적을 알리 듯 단청들이 매우 퇴색하였고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선암사는 매우 오래 된 건물부터 새로 증축되어진 건물들. 새로 보수되고 있는 건물들이 뒤섞여 조금은 정리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두어 시간을 꼼꼼히 둘러 보았으나 불자도 아니고 선암사에 대해 그리 많은 지식이 없는 나에겐 산속에 들어앉은 고즈넉한 사찰은
그저 관광지일뿐이다.(여행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아는만큼 보이나니……정말 명언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을 견뎌 낸 흔적이 엿보이는 여러 건물들과
대웅전 옆쪽 스님들 선방앞에 있던 옆으로 누운 소나무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풍겨나왔다.
대웅전은 한창 보수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으며,
앞 좌우에 서 있는 삼층석탑들도 보물 이라 하여 유심히 보았으나
웬일인지 석탑 맨 꼭대기에 피뢰침같은 녹슨 철근이 삐죽하게 올라와있어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150여m 떨어져 있는 대각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각암은 공부하는 곳이라지.
양 옆이 막히고 앞뒤가 트인 특이한 2층 목조건물이 서 있고, 그 뒤에 작은 본 암자가 있는데
너무나 조용하고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보살님 몇 분이 몇 마디 얘기를 나누시던데 그 소리조차 너무 작아 그 적막함을 깨지 못하고
마당 옆 바위에 걸터앉아 따스한 햇볕을 느끼며 산중 암자의 조용함을 맘껏 즐기고 왔다.
내려오는 길에 따스한 양지밭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이미 꽃을 피워 이른 봄소식을 찾아 남도로 흘러 든 여행자의 발길을 잠시 묶어 두었다.
그 옆에는 봄나물이 이미 빵긋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대각암 가는 길에 바위에 음각된 마애불이 있다.
산을 돌아다니며 마애불을 여럿 보았으나, 이 마애불은 너무 긴 세월탓인지 너무 희미해져 내 눈을 오래도록 붙잡아두진 못했다.
(개인적으로 월악산 중턱에 있는 마애불을 좋아한다.)
오후 4시 31분 서울행 기차를 탔다.
남도엔 이미 파릇파릇 보리가 패었고 들판에 봄나물들도 기지개를 폈건만 북으로 올수록 아직 봄이 이름을 알려준다.
호기있게 떠난 여행인데......하루 24시간도 채 못 되어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 일상에도 조만간 봄소식이 날아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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