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28~3/1까지 여수 - 남해 - 사천 - 하동 - 구례를 여행했다.
1. 길을 나서다.
2004년 2월 28일 토요일.
비가 내리는 중에 밤 10시 10분 집을 나선다.
가로등 불빛아래 하늘을 올려다보니 빗방울이 점점히 뿌려지고 있다.
뿌우연 가로등 불빛, 비 그리고 나는 떠난다.
서울역은 11시가 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부산하다.
다들 어디를 향해 저리 보따리 보따리 짐을 싸들고 나선걸까?
배낭을 멘 이들도 많다.
늦은 밤 11시 20분 여수행 무궁화호 기차는 옛날 새마을호다.
오래된 흔적이 곳곳에 보여지는 낡은 기차.
좌석 가운데 분리대가 있어 좀 안정감이 있다.
적어도 옆사람으로 인해 잠을 설치진 않으리라.
오랜만에 홀로 떠나가 본다.
잠을 잘 수 있어야 할텐데.......
2. 첫째날..여수에서 사천까지.
2.1 여수항과 돌산대교
여수역에 새벽 5시 57분 도착.
잠을 좀 깨워 정신을 맑게 한 다음 여객선 터미널쪽을 향해 걸었다.
1.5km 쯤 되나보다.
수산시장에서 운좋게도 고깃배들이 들어와 아주머니들이 생선값을 흥정하는 걸 보았다.
난 이름도 모르는 생선들이 가득하다.
도다리, 놀래미, 숭어, 쭈꾸미, 반장게, 꼬드래기, 장어, 해삼, 장갱이, 굴등....
양동이에 숭어가 끊임없이 얹혀지는 광경을 보았는데 밤사이 비가와서 많이 잡혔다고 한다.
비와 고기잡이와의 상관관계는 잘 모르겠으나 바쁜 사람들 잡고 물어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숭어가 한가득 담길 걸 놓고 흥정이 한참이다.
20,000원은 받아야겠다. 15,000원만 하자..
매일 보는 얼굴들일진대 단돈 5,000원에 티격태격..급기야 얼굴을 붉히기까지 한다.
다른 흥미꺼리도 많아 구경하느라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보기에 사려는 아주머니가 조금 열세였던 듯 싶은데.... ^^
역시나 여수역에서 바로 향일암 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걸어오면서 푸른빛으로 스며드는 새벽녘의 고요함을 보았으며, 여기 와서는 그 푸른 새벽을 뚫고 하루를 깨우는 사람들을 만난것이다.
살아있는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여객선 터미널엔 어디론가 떠나가는 배들이 많다.
여행객들도 많이 보인다.
걔중엔 연휴가 아니면 쉽게 갈 수 없는 저 멀리 섬에 고향을 둔 이들도 있겠지.
그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양손에 가득 든 한 짐조차 가벼워 보인다.
고향이란 그런 곳이리라.
8시 30분. 돌산대교까지 가까운 거리이지만 버스로 이동하여 굳이 차가운 아침 바람을 맞으며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바람이 찼지만 옷이 든든하여 버틸만 했고 대교밑으로 고기잡이 나가는 어선들을 보며 나도 힘차게 걸었다.
2.2. 향일암
8시 45분.
향일암 가는 버스에 탑승.
해안도로를 따라 무술목과 방죽포를 지나 9시 20분경 임포마을에 도착하였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 안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보았고 밭에 심어져 있는 파릇 파릇한 갓들이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향일암은 전에 다녀갔을때보다 오르는 길이 많이 정비되었고 계단이 새로 생겼다.
사람이 많이 찾는곳이니 돈을 들이는 것이겠지.
썩 달갑지는 않은 모양새다.
연휴라서인지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많다.
바위틈을 돌아 돌아 향일암에 올랐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을 비우라 했다지.
향일암엔 일주문이 있지만 이 바위틈들이 진정한 일주문 같다.
대웅전을 돌아 먼저 관음전에 올랐다.
관음전에서 내려다 본 바다는 해무가 있어 멀리까지 보이진 않았지만 눈을 시원하게 하기에 넉넉했다.
그 옆 돌계단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즐기기도 했다.
용왕전과 산신각등을 두루 구경한 후 향일암을 내려와 전에 묵은적이 있었던 금오장에 가 보았다.
아저씨는 손님 모시고 향일암 올라가셨다 하시고 아주머니만 계신다.
수 많은 민박 손님중에 내 얼굴을 기억할리 없거니만 전에 다녀갔다는 그 이유만으로 반겨주신다.
커피도 얻어마시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차 시간에 맞춰 나왔다.
2.3 향일암에서 남해까지
향일암에서 11시 차를 타고 여수터미널로 다시 여수에서 순천으로 갔다.
원래는 여수여객터미널 옆에서 남해 서상가는 배를 타고자 했으나 먼바다에 풍랑주의보가 있어 오늘은 배가 뜨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그 먼바다 주의보때문에 배가 뜨지 않는다니 나로서는 황당하지만 배가 뜨질 않는다는걸 어쩌랴....
결국 서상까지 30여분이면 배를 타고 금새 갈 것을 순천을 거쳐 남해로 두어시간이나 걸려 가야했다.
시간과 돈이 훨씬 많이 들었지만, 산뜻하게 다시 채색된 남해대교를 건너던것과
조금 지나면 하얀 벚꽃이 난분분 흩날리게 될 멋진 길을 상상하면서 19번 국도를 가는것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처음에 순천까지 가서 한참을 망설였다.
남해로 가서 따로이 여행하고 있는 동호회 회원들을 만날까.....
아님 이대로 선암사로 들어가 하룻밤을 묵고 나올까....
어디를 가고 싶을지 생각 해 보았는데 딱히 가고 싶은곳도 없다.
정처없이 떠나온 길이기 때문이리라.
떠나는 그 순간까지 어느 역에서 내리게 될지도 결정하지 못할만큼 아무런 결정없이 그냥 떠난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마음 가는대로 발길 가는대로 가고자 하였다.
또한, 이곳은 한번쯤 거쳐간 길이어서도 그렇거니와 그저 이렇게 낯선곳에 내가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전화로 재촉하는 회원들 성화로 남해행을 결정했다.
2.4 콩죽과 상주해수욕장
남해에 가면 시장에 들러 작년에 먹었던 그 오래 오래 기억에 남았던 팥죽을 먹으리라 생각했다.
2시 10분.
남해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기사님 뒷자리에 앉아 지도를 보며 지명도 물어보고 여행이야기도 하면서 1시간 20분을 지루하지 않게 갔다.
처음엔 남해시장에 가서 팥죽을 맛나게 먹고 히치를 해서 지족으로 가 지족해협을 구경하면서
사천으로 가기위해 그 길을 지나게 될 동호회 사람들은 기다릴 참이었다.
시장에 가서 이쪽 저쪽 기웃거리며 그 집을 찾아 들어갔다.
'시장콩죽'
전엔 간판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오늘 보니 콩죽이 주 메뉴였던가 보다.
간판을 보지 말것을......에고.....오늘은 일요일이라 팥죽을 쑤지 않았다는 말.
결국 1,500원짜리 콩죽으로 팥죽을 대신했다.
작년에 맛 본 그 팥죽보단 덜했지만 콩을 갈아 죽을 만들고 그 속에 칼국수를 만들어 넣은 콩죽맛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팥죽 먹으려는 생각에 점심을 굶고 4시가 다 되어 먹은 콩죽은 허기를 메우기에 충분했다.
그때까지도 몇 몇의 동호회원은 금산 산행중이었고,
아이때문에 산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회원이 나를 데리러 기꺼이 남해터미널까지 와 주었다.
덕분에 편하게 상주까지 이동했고 일행들이 산에서 내려오는동안 우린 상주해수욕장에 들러보기로 하였다.
처음엔 보리암까지 차로 올라가 볼 생각이었으나 연휴인탓인지 차가 너무 밀려 중간에 되돌아 내려왔다.
철 이른 상주해수욕장은 따스한 날씨 덕에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많았고 추운줄도 모르고 모래 장난에 열심인 꼬맹이들도 많았다.
뒤로는 금산이 버티고 가까이는 아름드리 해송에 둘러쌓인 모래가 고운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세 번째 가보았는데 갈때마다 아늑하다는 느낌이 든다.
2.5 숙소
7시가 넘어서야 산에서 내려온 일행들과 합류했고 남해 해안도로를 따라 창선을 넘어 연륙교(창선 삼천포 대교)를 건너 사천으로 넘어왔다.
대교끝에서 우릴 기꺼이 재워주기로 하신 동호회원님과 합류하고 삼천포대교의 환상적인 야경을 구경한 다음
9시가 다 되어서야 저녁을 먹으러 갔다.
물론, 예까지 왔으니 회를 먹으러 가야지. ^^
적당한 주류에 내가 좋아하는 회.
11시가 다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주인이 기꺼이 내어주신 20년된 더덕술의 향기에 취해,
진한 보이차의 향기에 취해,
그리고 우리들의 화기애애한 대화에 취해 새벽 3시가 되도록 자리는 파할줄을 모르고 남도에서의 밤은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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