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서다/길에 서다

걷기 여행 - 피덕령, 안반덕을 넘어...

dreamykima 2008. 2. 26. 08:31

날 짜 : 2008년 2월 23~24일 / with 걷기 모임 회원들.

코 스 : 횡계버스터미널 - 비치힐골프장 - 피덕령(안반덕) - 강릉, 고단 갈림길 - 강릉, 정선, 고단 삼거리 410번 -

          배나드리교 - 한터교 - 종량동 - 오장폭포 - 구절리 - 아우라지 : 약 40km

교 통 : 동서울 -> 횡계 : 오전 7:10분, 12,300원, 2시간 40분 소요

          정선 -> 동서울 : 오후 3:00 정각 16,400원 4시간 15분 소요.

 

2005년 3월 강원도에 폭설이 내린 어느 날.

내 좋은 사람들과 대관령자연휴양림부터 강릉저수지, 닭목령, 대기리, 송천계곡을 거쳐 아우라지까지의 길을 갔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송천계곡길이 포장이 되어있지 않았던 때여서 폭설속에 그 길을 통과하느라 온갖 이벤트 다 했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걷기 모임의 정기도보 코스가 그 쪽으로 잡혔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 무척 고민하다 마지막날에서야 꼬리를 잡고 함께 가보기로 한다.

 

이미 예견했던것처럼 길은 많이 변하였으나, 그 풍광들은 여전히 그 곳에 한 편의 수묵화처럼, 동양화처럼 서 있었다.

눈길에 피덕령 고개를 넘느라 쉽지는 않았지만 즐거운 걸음이었다.

 

 2008년 2월 23일 오전 9시 52분. 횡계버스터미널.

 이른 새벽부터 서두른 길이었다.

 버스안에서 수면안대와 귀마개, 목베개까지 동원하여 모자란 잠을 채웠다.

 그 덕인지 버스에서 내렸을 때 생각보다 컨디션이 괜찮았다.

 

 대장님께서 길을 인도하셔야 했으나, 많은 짐으로 인하여 차량 운행을 자처하신터라

 지도를 가지고 있던 내가 졸지에 안내자가 되었다.

 

 횡계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면소재지를 거쳐 길을 잡는다.

 용평리조트로 가는 너른 길이 있지만 차가 다니는 길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는 지도를 보고 샛길을 찾아든다.

  

 황당하게도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는 길이 골프장으로 인하여 끊겨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며 간다.고 했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있을터이니 걸으면 그 뿐~!!

 

 뒤로보이는 저 둔덕 너머 바로 아래서 끊겼던 길이 둔덕을 넘어 내려오니 바로 골프장으로 이어진다.

 인적없는 골프장에 하얀 눈만이 우릴 반긴다.

 

 덕분에 출입금지라는 너른 골프장을 우리가 온통 차지하고 유유히 걸었다.

 

 

 나중에 내려가서 보니 비치힐 골프장이란다.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커다랗게 서 있던데~~~무슨 상관이랴~~~~누가 지도에 있는 길을 막으래??

 

 날도 좋고 경치는 차~암 좋네~

 

 골프장을 가로지르니 다시 용평리조트로 가는 차도와 만난다.

 쌩~쌩 달리는 차들을 조심스레 피하며 100여m를 걸으니 용평리조트와 도암호, 피덕령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우리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피덕령 가는 길로 송천을 따라 걷는다.

 이 곳 지명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

 

 아름다운 송천 물길을 따라~~~~

 도암호로 흘러들어가는 송천의 아름다운 모습.

 그래.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모습이지.

 언젠가 어느 기사를 보니 작은 도암댐 하나가 아름다운 동강의 주 오염원이 되고 있다고 했다.

 호수는 바다로 내달리는 강물의 숨가뿜을 잠시 붙들어매는 여유로움을 지닌 곳이라 했는데,

 도암호는 그런 여유로움을 지닌 곳이 아닌 기나 긴 강물의 주 오염원이 되고 있다니 한심할 뿐이다.

 

 송천은 이 도암호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흘러 흘러 아우라지에서 골지천과 만나 조양강이 되고

 정선을 지나면서 오대천과 어천과 동남천 등과 만나 동강이 되어 흐른다.

 동강은 영월에서 서강과 합강이 되어 더욱 더 큰 물줄기를 이루며 남한강이 되어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이 먼 곳의 오염된 강물이 흘러 흘러 우리가 사는 서울까지 흘러 우리의 주 식수원이 되고 있으니,

 이제는 가게에서 파는 생수가 이상하지 않은 시대인 것이다.

 

 강은 누군가와 만나면 에둘러 돌고 타협하면서 쌈박질하지 않고도 흘러 흘러 목적지인 바다로 나아간다.

 나는 그런 강의 외유내강을 배우고 싶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인가.

 이걸 지켜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출발한지 약 7~8km 되는 지점이다.

 시원스레 뻗어올라간 노송아래 맛난 점심을 들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김밥과 라면과 그리고 커피까지...

 바람 피할 곳도 없이 길 위에서 먹는 점심은 처량해보일만도 하지만 얼마나 꿀맛인지 먹어 본 사람만이 안다. 

 

 점심을 먹고 약 1km나 걸었을까...

 피덕령과 안반덕으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안반덕까지는 2.7km.

 

 점심 먹은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굽이 굽이 눈이 있어 미끄러운 산길을 오르고 있어 모두들 쉬운길은 아니었으나

 서로 격려하며 낙오자 없이 잘 오를 수 있었다.

 

 안반덕. 아름다운가?

 그래. 하얀 눈속에 갇힌 그 곳은 아름다웠다.

 

 온 산을 깎아 밭을 일군 곳이다.

 고냉지 채소밭으로 유명하고, 겨울철이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덕에 찾는이들도 많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마음아프고

 한심한 곳이기도 하다.

 60여만평이라고....

 

 변변히 땅을 지탱 할 나무 한 그루없이 온 산을 깎아 밭을 일구었으니 비가 내리면 각종 비료와 농약 등을 함유했을 토사가 흘러내리고,

 그 너른 밭을 가꾸느라 뿌려진 농약과 비료 등의 성분들은 이곳 저곳 작은 천을 따라 흘러내려 도암호로, 대기천으로 흘러들었다가

 송천을 따라 동강으로 내려간다.

 그 동강은 다시 남한강이 되어 흐르고 우리 국토의 거대한 젖줄기 하나가 그렇게 오염되어가고 있는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도 이 풍광이 아름다울까.

   

 피덕령 정상의 거대한 풍력발전기 하나만이 이 혼돈의 세상을 따라 말없이 돌고 또 돈다.

 

 나무가 울창했던 고갯마루였을게다.

 우리의 산하, 특히 강원도의 산들이 그러하듯이 하늘로 쭉쭉 뻗은 노송들이 오손 도손 다른 나무들을 거느리며 살아갔던 곳이었을게다.

 

 지척에 백두대간이 지나는 이 고갯마루를 이렇게 훼손할 수 밖에 없던 사람들도

 또한, 그리하도록 부추겼거나 혹은 방관했던 사람들에게도 연민이 느껴진다.

 

 자연은 우리에게 꼭 그만큼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되갚아줄 것이다.

 무서운줄 알아야 하는것인데...

 

 피덕령과 안반덕을 지나면 이제 평창군이 아닌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이다.

 안반덕에서 강원도 감자원종장이 있는 삼거리까지는 4.6km.

 

 굽이 굽이 산길을 올랐던만큼 굽이 굽이 산길을 돌아 내려간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이 길 끝에는 삼거리가 있고 좌측은 마을 앞 도로를 따라 닭목령을 넘어 강릉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고단으로 가는 길이다.

 지도를 든 내가 사진찍느라 뒤에서 잠시 주춤거린 사이 선두에 선 사람들이 무작정 닭목령을 향해 걸었고, 강릉으로 가고 있었다.

 

 그 덕에 나머지 사람들은 삼거리에 있는 감자원종장 사무실에 들어가 잠시나마 추위에 얼어붙은 뺨도 녹이고 화장실도 해결했다.

 감자원종장은 연구소에서 개발한 씨감자의 양을 늘려 농부들에게 새로 개발한 씨감자들을 제공하는 곳이라 한다.

 원래 횡계쪽에 있었는데 동계올림픽으로 인한 부지로 편입되는 바람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했다.

 

 건물 앞에 서 있는 차량에 있는 전화번호로 무작정 전화를 걸어 잠시 쉬어갈 수 있느냐고 여쭈었더니

 당직하시던 분이 기꺼이 문을 열어주셨다.

 낯선 우리에게 잠시나마 따뜻한 곳을 열어주신 그 분께 감사드린다.

 

 닭목령까지 갔던 사람들이 되돌아오고 우린 다시 대기리로 길을 잡는다.

 해는 어느 새 서산으로 넘어 갈 태세이고 우린 걸음을 빨리한다.